빠르고 정확한 ‘AI 도서관’이 놓치는 것들
박미숙의 그림책 세상 취향 바깥에서 기웃거릴 틈은 어디서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기능도 눈길을
[고양신문] 광주에서 제63회 전국도서관대회가 열렸다. 행사장 한쪽에 전시장이 있었다. 부스를 하나씩 지나는데 같은 말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AI. 로봇이 있었고, 이용자에게 맞는 책을 골라 준다는 도구가 있었다. 독서동아리를 관리해 준다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부스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우리는 왜 빨라야 할까. 정확하다는 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말일까.
『잃어버린 영혼』(올가 토카르추크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사계절)의 남자는 아주 열심히, 아주 빠르게 일한다. 그러다 영혼을 한참 뒤에 두고 온다. 영혼이 없어도 그럭저럭 산다. 먹고, 자고, 일하고, 운전도 한다. 다만 가끔 세상이 모눈종이처럼 평평하게 느껴진다. 남자는 익숙한 곳을 떠나 한곳에 머물며 영혼을 기다리기로 한다. 빨리 달려가서 데려올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윤희의 『걷다 보면』(글로연)에서 아이는 바람을 따라 길을 걷다 사슴 한 마리를 만난다. 진짜 사슴은 아니다. 닳고 금이 간 보도블록이 우연히 만들어 낸 모양이다. 그 사슴을 알아본 뒤로 늘 다니던 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여우에게 꽃을 건네는 생쥐가 있고, 빗물에 쓸려 모인 꽃잎은 악어가 된다. 연필로만 그린 흑백 그림이라 읽는 사람도 걸음을 늦추고 한 장면씩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는 늘 빠르게 지나치던 출퇴근길을 어느 날 천천히 걷다가, 깨지고 제멋대로 끼워진 보도블록 속에서 사슴과 여우를 만났다고 한다. 블록이 반듯하게 맞춰져 있었다면 사슴은 없었을 것이다.
도서관에도 속도는 필요하다. 반납된 책을 제자리에 꽂고, 예약한 책을 찾아 두고, 프로그램 신청을 받는 일. 되풀이되는 일을 기계가 덜어 준다면 반가운 일이다. 다만 그렇게 아낀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는 묻고 싶다. 사서가 이용자와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는 데 쓰일까. 아니면 더 적은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하는 데 쓰일까.
도서관은 오래 숫자로 평가받아 왔다. 대출 권수, 이용자 수, 프로그램 횟수. 도구가 좋아지면 이런 숫자를 모으고 살피는 일도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서가 사이를 거닐다 찾은 책을 한참 들여다본 시간은 실적으로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책을 빌리지 않고 창가에 가만히 앉아 있다 간 누군가의 오후도 그렇다. 도서관이 한 일을 설명할 때 이런 시간은 늘 빠진다.
정확함은 더 어렵다.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 주면 편하고 반가울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는 좋아할 줄 몰랐던 책을 만나기도 한다. 찾던 책 옆의 책에 손이 가는 일. 제목만 보고 집어 든 책이 내 인생으로 훅 들어오는 순간. 취향에 꼭 맞는 책만 건네받다 보면, 취향 바깥을 기웃거릴 틈은 어디서 생길까.
이번 대회의 주제는 '대전환의 시대, 도서관의 힘'이었다. 전환은 방향이 바뀐다는 말인데, 전시장에서 본 것은 대부분 도구가 바뀌는 일이었다. 책을 찾고 권하는 일, 모임을 꾸리고 챙기는 일을 돕는 기술들이었다. 그 도구를 들여온 뒤 도서관에서 무엇이 달라질지는 부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알기 어려웠다. 일을 빨리 마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지금처럼 숫자를 늘리는 데 더 힘을 쏟는다면, 방향은 그대로 둔 채 걸음만 빨라지는 건 아닐까.
처음 도서관에 온 아이가 무엇을 찾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다. 곁에 서서 말을 걸어 보기도 하고, 아이가 먼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책보다 사람이 그리워 들른 이웃과 안부를 나누다 보면 하려던 일이 늦어지기도 한다. 이런 시간도 도서관의 일이다. 기계가 일을 덜어 준 덕에 사서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사람에게 가 볼 수 있다면, 그런 변화라면 반갑다.
『걷다 보면』의 사슴은 금 간 보도블록 틈에 있었다. 그 틈을 알아보는 눈이 도서관에도 있었으면 한다. 『잃어버린 영혼』의 남자는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남자에게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도서관이 빠르게 앞서가는 동안, 뒤에 두고 온 것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