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1동 - 일산역·일산중고·일산시장 오랜 역사 자랑

2005-03-19     고양신문

흔히 구 일산이라 잘못 부르고 있는 원 일산 , 일산1동 지역의 역사와 지나온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곳의 본래 이름은 와야촌 마을이다. 고양군지를 보면 와야촌은 중면 저전일패리에 속한 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와야촌이 속한 저전일패리에는 총84호(戶)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일산3동 후곡마을도 이 마을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와야촌이란 이름은 흙으로 기와 등을 구워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며 신도시 개발 이전까지 이 부근에 연와(기와)공장이 남아 있고 또한 옹기를 굽던 곳이 있어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와야촌으로 불리던 작은 농촌 마을이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은 1900년대 초반에 개통된 경의선 철로의 개설부터이다.  이 철로는 용산에서 개성, 평양, 신의주로 연결되어 당시 교통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한강의 조운선에 의존하던 전통의 장시와 수로 교통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고양지역의 장시들도 모두 망하고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 부근으로 상권이 옮겨왔는데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장이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일산장이다. 이 일산이란 이름은 경의선 부설 당시 철도역의 이름을 일산(一山)으로 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일산1동 지역에 대한 1990년대 이전 지도를 보면 독정이라는 지명과 삼정이란 이름이 보인다. 먼저 삼정은 삼정천(三井川)이 마을 뒤로 흘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지금의 일산중, 고교에서 덕이동 부근에 있는 마을이고 독정 마을은 삼정 마을의 길 건너편으로 후곡마을 방향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는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이곳에서는 항아리나, 옹기, 독을 구웠던 흔적을 쉽게 찿아 볼 수 있었다. 독정이란 이름은 독(옹기)을 굽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 일산1동 지역은 일제시대에 고양시 최대 규모의 일본인 관사가 있던 지역이다. 주로 -자형의 나무건물로 철도와 야산에 집단으로 거주하며 경의선 철도와 관련된 일을 하였다.
이 관사 건물들은 해방후 일본인들이 본토로 돌아간 후에도 줄곧 남아 있다가 80년대 이후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에 독정 마을에 남아 있던 이 일본식 집은 나무 목판을 이어 지은 조립식으로 부엌과 방이 각1개씩의 작은 규모였다. 일산 1동 지역은 일산역과 일산장 이외에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산 성당, 일산지역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일산중고교가 위치해 있다.

 또한 최근에 그 자리를 덕이동으로 옮긴 고양여중, 고교도 일산지역 인재의 요람으로 많은 동문을 배출한 곳이다. 성당 뒷편에 있던 산을 마을 주민들은 정산(井山) 또는 달맞이산이라 불렀다. 이곳은 고봉산 자락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며 달맞이를 하던 곳이라 하는데 1년에 한번씩 산제사를 올리곤 했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곳 일산1동은 원 일산의 중심마을에 해당한다. 비록 옛 역사의 중심지 마을을 대신하여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외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 마을이 일산의 모체임은 분명하다. 마을의 어귀 어딘가에  일산의 역사 중심지로서 더 이상 구(舊) 일산으로 부르지 않토록 안내문을 세워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양시청 전문직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