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사장 6년 역임, 문화에 애착이 큰 고양시민

기획력과 경험이 큰 자산, 화려한 경력, 지역과 공유해
공연영상화사업 등 성과 내고 퇴임후에도 유튜버 활동하는 ‘아이디어뱅크’

백석동 벨라시타 초록 잔디밭 위로 따사로운 가을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환한 햇살을 배경 삼아 깃 세운 롱코트에 은빛 머리 휘날리며 노신사가 등장했다. 베토벤의 환생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 그는 고학찬 전(前) 예술의전당 사장(이하 고학찬 전 사장)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예술의 전당에서 은퇴한 후에도 유튜버와 쇼핑몰 피팅 모델, 행사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하는 영원한 ‘현역’이었다. 13년째 고양시민이기도 한 고학찬 전 사장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양방송 피디(PD), 뉴욕 한인방송 편성국장, 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총괄국장, 대학교수, 윤당아트홀 관장, 예술의전당 사장 등 평생 그가 가졌던 직업은 25가지나 된다. 한 곳에 오래 있지 않았고 여러 가지 호기심 가는 일을 많이 했다. 다양한 경험이 예의전당 경영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3년 임기의 사장을 연임해 예술의전당 30년 역사상 유일하게 6년 사장의 타이틀을 달게 된 것도 많은 경험이 원천이 됐다. 

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은 인스타그램에서 ‘압구정꼰대’라는 쇼핑몰에서 모델도 하는 패셔니스타다.
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은 인스타그램에서 ‘압구정꼰대’라는 쇼핑몰에서 모델도 하는 패셔니스타다.

잘나가던 피디 홀연히 미국행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던 1970년. 그는 연극영화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사 피디에 합격해 동양방송(TBC) 피디가 된다. 라디오드라마 ‘손오공’, 코미디 프로 ‘좋았군 좋았어’, 명 사회자 황인용 씨가 진행을 맡았던 ‘장수만세’ 등 인기작을 만든 능력 있는 피디였다. 1973년 같은 동양방송 아나운서였던 안정희 씨와 결혼해 슬하에 딸 셋을 둔다. 하지만 1980년 언론사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해체되고 홀연히 누나가 있는 미국으로 향했고, LA에서 식당 매니저로 일을 시작한다.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갑자기 아내가 딸 셋을 데리고 미국으로 나오겠다고 전한다. 식구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기위해 바텐더로 직업을 정하고 자격증을 땄다. 바텐더스쿨을 졸업하던 날 중국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출근한다. 하지만 막상 실전으로 가니 학교에서는 척척 만들던 칵테일 제조는 온데간데 없고 머릿속이 하얘지며, 레시피고 뭐고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나를 도와준 사람이 매일 바에 붙어 앉아 술을 마시는 알콜중독자였습니다. 구걸로 술값을 모아 술을 사먹는 그들은 나를 척 보더니 ‘이거 저거 섞어’ 하며 레시피를 코치해줬어요. 덕분에 첫날 고비를 잘 넘겼고, 영업 마감 후 매니저가 ‘잘 만든다. 정식으로 채용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때 힘을 얻었습니다. 알콜중독자들이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살게 도와준 은인이었습니다”라며 그때를 웃으며 기억했다. 그날 이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모두 내려놓았다고 한다.

천천히 걸으며 새로운 것 발견
고 전 사장의 별명은 ‘아이디어 뱅크’다. 예술의전당 사장을 하는 6년 동안 공연영상화사업을 시작해 좋은 공연을 기록으로 남겼고, ‘예술의 전당 가곡의 밤’을 기획해 직접 사회를 보며 64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문화로 통일을 앞당기자는 취지로 100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어린이예술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디어는 호기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세상을 새로운 시선과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예술의전당 은퇴 후에는 자가용 없는 삶을 선택해 ‘뚜벅이’로 살고 있다. 백석역에서 압구정동을 갈 때면 지하철을 바로 타지 않고 1000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서 내려 종로 3가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탄다. 운동 삼아 천천히 걷다보면 안 보이던 것,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평균 1만 5천 보를 걷는다.
“종로3가 도로에는 노숙자가 많아요. 우리는 그들을 안쓰럽게만 바라보잖아요. 한번은 노숙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되레 그 노숙자 나에게 묻더군요.‘왜 그렇게 바쁘게 쫓기듯 사느냐’라고. 그 말에 무릎이 저절로 탁 쳐졌어요. 인생은 그렇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구나”라며 그때의 깨우침을 전했다.

예술의전당에서 그가 보여 준 6년 간의 기획력과 경험, 예술적 발상이 고양시에서도 귀하게 쓰여지기를 바란다.  그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역 유튜버 이기도 하다.
예술의전당에서 그가 보여 준 6년 간의 기획력과 경험, 예술적 발상이 고양시에서도 귀하게 쓰여지기를 바란다.  그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역 유튜버 이기도 하다.

영원한 현역의 끊임없는 도전
예술의전당 사장을 그만 둘 때쯤 일이었다. 예술대학 총장 공모가 있어 서류를 제출했고, 합격 후 최후의 2인까지 올라갔다. 추천서를 받아오라고 해 예술의전당 사장 6년 동안 내 뒷모습을 지켜본 경비원에게 그대로를 추천해달라고 했고 그 것을 제출했다. 결과적으로는 총장이 되지 못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때 바로 그 상황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린시절 갈망했던 꿈을 찾아간다. 가슴에 품었던 가수의 꿈이다. 유튜브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그의 채널 ‘고학찬의 비긴어게인’은 시청시간 6000시간, 조회수 12만, 구독자 1500명을 넘기며 광고가 붙는 유튜버가 됐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위 사람들이 “하다말겠지” 하는 등의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이제는 광고까지 붙으며, 그들도 즐겨보는 채널이 됐다. 재미도 더 붙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압구정꼰대’라는 쇼핑몰에서 피팅모델도 한다. 젊은 사람들이 “아빠 선물 뭐하지?” 고민할 때 찾아보라는 쇼핑몰이다. 후드 티셔츠나 트레이닝바지 등 다양한 옷을 입고 포즈 취해 사진 찍는 것이 즐겁다. 

지난 10월 9일에는 고양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가곡에 살리라’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얼마 전 부터는 통일의 염원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가만히 있지 않는 살아있는 무한의 생명체처럼 그는 늘 움직이고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며 끊임없는 활동으로 그가 보여 준 6년 간의 기획력과 경험, 예술적 발상이 고양시에서도 귀하게 쓰여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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