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의 발랑까진]
[고양신문]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여성 청소년이 지내는 시설에서 교육을 한다. 6월에는 사회적 권리에 대한 교육을 준비했다. 교육을 시작하며 "살면서 제일 필요한 것"을 물어봤다. 나는 돈, 핸드폰, 집이 많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가장 많이 나온 건 “가족”이었다.
교육을 했던 시설에 거주하는 여성 청소년들은 대부분 가족 내에서 갈등을 겪고, 탈가정을 반복했을 이들이었다. 집도, 거리도 안전하지 않아서 방황했을 이들에게 다시금 ‘가족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생경했다. “가족은 내 편이 되어주니까” 필요하다는 이들에게 “당신의 가족도 그러하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그제야 이들에게 돈이나 집 같은 물질적 필요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지역 사회 같은 사회적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가족이 필요하다”는 말이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폭력과 통제를 견뎌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서도 청소년이 돈과 집,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누군가의 자녀 혹은 모범생으로만 여겨지고, 한 명의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청소년의 삶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사회에서 시설에서 지내는 여성 청소년은 투명인간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삶을 지속할, 폭력을 감내하지 않고도, 어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도 돈이 필요하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은 돈이 필요하지 않고, 어른의 도움을 받아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가 돈이 많다는 것이 곧, 자녀가 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많은 청소년은 어른의 눈치를 보면서 소득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사회문화적 욕구를 어른으로부터 검열당한다. 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력이 없다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 공간, 관계가 없다는 말과 같다. 즉, “청소년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어른의 허락을 받아야만 자율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돌봄 격차, 교육 격차는 그간 아동청소년이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자원을 보장하는 일을 개별 가정의 몫으로 돌려왔음을 보여준다. 개별 가정의 소득 수준이 격차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이 일상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소득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도 돈이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통해 아동수당 등 양육 중심의 정책을 넘어, 청소년의 권리에 기반을 둔 소득 보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본소득은 정치공동체가 모두에게 조건 없이 개별적이고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우리 사회에 축적되는 부는 토지, 천연자원, 생태환경부터 기술, 데이터, 지식까지, 개인의 노력이 아닌 인류 전체의 공동 재산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공유부에서 나온 수익을 일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돌려주는 분배 정책을 기본소득 제도라고 한다.
청소년에게 기본소득 30만원을 매월 지급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여성 청소년들은 놀라면서도 좋아하는 듯 보였다. "청소년에게 돈을 주면 막 쓸 거"라고 하는 분도 계시고, "그건 고정관념"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 "청소년이 부모님 없이 살면 위험하지 않을까요?"라는 이야기 뒤에는 "오히려 부모님과 살고 싶지 않을 때 마땅한 선택지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청소년에게 돈이 필요하다면 그건 스스로 결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돈, 실질적인 시민권을 보장하는 돈, 청소년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돈, 그리고 오늘 말했던 내 삶의 필요들을 기꺼이 삶 안으로 들여올 여유가 되는 돈이겠다.
물론 청소년은 경제생활에 있어 어른에 비해 더 취약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이 미성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청소년이 경제생활을 합법적이고 안전한 경로로 경험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많은 경우,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소득을 획득하거나,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착취를 경험한다. 합법적이고 제대로 된 소득을 보장할 때, 청소년이 자신의 소득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건 스스로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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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otion.so/basicincomeparty/36ae626a173a49b9b31a5934ee6cacd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