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고양신문]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결정을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국무·국방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각각 ‘2+2 회담’을 가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일본과 한국에서의 발언을 요약하면 “동맹과 함께 중국 견제”가 미국 외교정책의 최우선이고, 대북정책은 한·일과 협력하여 완전한 조율 하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 주민들의 삶 개선을 목표로 압박과 외교적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와 대북 정책

블링컨 장관은 중국에 대해 동·남중국해는 물론 홍콩과 대만, 신장위구르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국가로 지목해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미·일·한 3국간 협력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 번영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빠르게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것은 다자외교의 일환으로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동맹국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동맹의 명분으로 한국을 중국 견제의 첨병으로 내모는 것은 곤란하다. 미·일·한이 스크럼을 짜 중국을 견제할 때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첨병으로서 총알받이 역할을 하게 된다. 사드(THAAD) 배치 과정에서 중국의 집중 보복을 받았던 나라는 한국이지 않았던가?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기에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싸워서는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중국의 협조가 긴요하다.

더욱이 미중 관계는 대결만 있는 게 아니라 협력할 분야도 많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그렇고 기후변화, 전염병, 대량살상무기 등에서 미국은 중국과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사활적 이해관계를 도외시한 채 대결 분야에서만 동맹을 명분으로 한국을 몰아세우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대북정책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핵, 미사일 프로그램 그리고 인권침해 문제와 관련해 대응에 나설 생각”이라며 “여러 압력수단 혹은 완고한 수단 등이 모두 재검토 중”으로서 “동맹국들과 함께 이 작업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일 간 협력을 주문하며 대북정책 추진 시 일본을 한국과 동열에 배치해 일본과도 긴밀히 조율하겠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일본과 한국은 대북정책의 방향이 정반대로서 공존하기 어렵다. 일본의 스가 정부는 전임자 아베의 정책을 이어받아 평화 헌법을 바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함으로써 메이지유신 시대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위협론이 필요하고 한반도가 분단된 채 남북한의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어야 한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한과 교류협력을 거쳐 통일로 나아가겠다는 한국 정부의 정책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는가?

블링컨을 비롯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관료들은 한국의 정책이 평화와 번영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주변국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한국이야말로 대북 정책의 직접 당사자로서 북한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고, 북한의 행동 패턴과 의도를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나라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한국과 동열에서 일본과 조율해 입안하고 집행하겠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약 주고 병 준 나라, 미국

한국민들에게 미국은 “병 주고 약 준 나라”이다.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한반도를 소련과 함께 분할 점령함으로서 한국을 분단시켰다. 한편 6.25 전쟁에서는 자국 병사 3만6000여 명의 희생을 치르면서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하였고, 한국이 경제력 세계 11위, 군사력 6위의 중견국으로 발전하도록 도왔다.

미국민 대다수는 한국에 대해 병을 주었다는 사실은 잊은 채, 약을 준 기억만 갖고 있다. 냉전 시기 소련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는 긍지를 갖고 있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한국은 모범적인 성공 사례다. 미국의 후원 아래 한국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식민지로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중 OECD에 가입한 국가가 한국 밖에 없다는 점도 미국인들의 자부심이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이제 살만큼 됐으니 주한미군 주둔비용 등 안보 비용도 부담하고 미국의 대외 전략에 충실히 협조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미국이 한국에 병을 주었던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1905년 7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태프트 육군장관을 도쿄로 파견해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과 비밀회담을 하게 했다. 거기서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데, 이는 영일동맹과 포츠머스 조약 등의 국제적 승인을 거쳐 그 해 11월 을사늑약으로 치닫는 주춧돌이 되었다.

또한 1945년 태평양 전쟁 승리 후 미국은 일본을 온전히 차지한 대신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한 대가로 38선 이북의 한국 땅을 내주게 된다. 이후 1000년 이상 통일국가로 존재했던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분단돼 지금까지 70년 넘도록 대치하면서 한민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다. 한반도를 잃으면 일본이 위험해지고 미국은 태평양에서의 패권 상실로 북미 대륙의 고립 국가로 쇠락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미국이 동북아에서의 균형자로서 필요하다. 이는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대해 말로만 동맹이라고 하면서 대상화시키고 있는 미국 외교당국자들의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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