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가 부른 '깜깜이 인허가'
“AI 성장동력” “환경위협” 팽팽
주거지 잇단 건립 주민반대 확산
[고양신문] 작년부터 고양시 전역은 데이터센터 건립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6월 기준 고양시 내에서 가동 중이거나 건축을 추진 중인 데이터센터는 총 9곳에 달한다. 이 중 오금동 1개소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며 향동, 사리현, 덕이동의 3개소는 건축 허가를 완료했고, 문봉동과 식사동의 2개소는 아직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특히 2002년 설립된 장항동 시설을 제외하면 나머지 8곳이 불과 최근 2~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AI 산업이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전력 공급이 원활하고 서울과 인접한 고양시가 최적의 입지 대상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센터 집중 현상을 두고 정반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산업적 시너지와 고부가가치 창출을 강조하는 긍정론과, 수자원 고갈 및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비판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새롭게 출범할 민선 9기 고양시는 맹목적인 데이터센터 유치 관행에서 벗어나, 상반된 두 시각을 아우르면서 지속 가능한 행정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갈등의 씨앗이 된 규제 완화
과거 민선 7기부터 고양시는 세수 확보와 고용 창출이라는 명분 아래 데이터센터 건립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2022년 4월 당시 고양시는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IT 업체들과 직접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행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무엇보다 타 지자체와 차별화된 조례 완화가 결정적이었다. 경기도 내 17개 지자체가 부설주차장 설치 기준을 시설 면적 200제곱미터당 1대로 제한할 때, 고양시는 상주 인력이 적은 데이터센터의 특성을 명분 삼아 600제곱미터당 1대로 대폭 완화해주었다. 이는 사업자들의 진입 장벽과 건축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민선 8기 들어 주거지와 학교 인근에 데이터센터가 잇달아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덕이동, 식사동, 문봉동 일대 주민들의 반대투쟁이 촉발됐다. 행정의 안일한 대응은 최근 제9대 고양시의회 마지막 일정으로 진행된 행정사무조사 결과보고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의회는 식사동 데이터센터 인허가 과정의 난맥상을 지적하며, 이를 주민과의 소통이 철저히 배제된 전형적인 '깜깜이 인허가'로 규정했다.
조사특위는 특히 "건축법 등 관련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편법적인 쪼개기 식 건축 허가가 이루어진 의혹이 있다"고 명시하며, 기업 유치라는 프레임에 갇혀 주거지 한복판에 들어서는 거대 시설의 파장을 행정이 사전에 전혀 통제하지 못했음을 질타했다. 과거의 우호적인 행정과 규제 완화가 오늘날 걷잡을 수 없는 지역 사회 갈등의 씨앗으로 돌아온 셈이다.
고양연구원 “상암 인접, 전력망 우수”
지역 사회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지난달 20일 고양연구원은 '고양특례시 데이터센터산업 입지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이슈리포트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주로 거시적인 산업 진흥과 경제적 파급효과에 방점을 두고 고양시가 데이터센터 입지로서 지닌 장점을 분석하고 있다.
고양연구원은 고양시로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이유에 대해 "서울 서북부 지역과 근접하여 높은 접근성을 확보하면서도 합리적인 부지 비용과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인프라 측면에서도 "상암 인터넷 교환 노드(IX) 근접성과 안정적인 전력망으로 통신 및 전력 인프라가 우수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고양시는 100킬로미터당 4.9개의 변전소가 분포해 있어 대규모 전력 수요 대응과 이중화 구성에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산업적 연계성 측면에서 "국립암센터의 국가암데이터센터, 빅데이터 플랫폼 등 실질적 데이터 수요 기반이 구축되어 시너지 효과 극대화가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고양시가 바이오 메디컬 및 스마트시티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지역 사회 갈등의 핵심인 전력계통 파괴, 전자파 우려, 열섬 현상 등에 대한 분석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보고서는 주거지 인접에 따른 민원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이를 "주민들의 민감도에 따른 불확실성"이나 "실질적인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해결해야 할 장애 요인" 정도로만 치부했다. 철저히 산업 논리에 기반해 부작용을 개발 과정의 부수적인 민원 현상으로 해석하는 한계를 노출한 것이다.
시민단체 “수자원 고갈 열섬현상”
반면 비슷한 시기, 녹색전환연구소와 참여연대, 환경정의가 공동 발간한 팩트북 '우리가 꼭 알아야 할 AI 데이터센터의 진실'은 기존 데이터센터와 최신 AI 데이터센터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짚으며 환경적 재앙의 가능성을 구체적인 수치로 경고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의 핵심은 현재 고양시에 짓고 있거나 지어질 시설들이 단순한 저장용 서버가 아니라 막대한 자원을 소모하는 'AI 데이터센터'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AI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는 기존 중앙처리장치(CPU) 대비 전력을 4~7배나 소비하며, 단위 면적당 전력 밀도가 매우 커 필연적으로 엄청난 발열을 동반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막대한 물 소비와 열 배출이다. AI 데이터센터의 경우 발열을 식히기 위해 공랭식 대신 대규모 수랭식 냉각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엄청난 수자원이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투자 계획이 발표된 데이터센터 중 상위 10곳에서만 냉각을 위해 하루 최소 1억2604만 리터의 용수를 사용할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일반 가정 기준 약 64만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가뭄 시기나 수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또한 열 배출로 인한 국지적 기후 변화 우려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해외 최신 연구를 인용하여 "데이터센터 가동 시 외부로 배출되는 대규모 열기가 주변 지표면 온도를 평균 2도, 최대 9도까지 상승시키는 열섬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초등학교와 불과 수십, 수백 미터 떨어진 고양시의 입지 여건을 고려할 때, 이는 단순한 시각적 위화감이나 소음 민원을 넘어 시민의 생존 환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라는 분석이다.
가이드라인과 상생 거버넌스 과제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환경적 경고, 그리고 시의회가 지적한 깜깜이 행정의 민낯은 현행 데이터센터 정책이 근본적인 한계에 다다랐음을 시사한다. 때문에 새롭게 출범할 민선 9기 고양시에서는 데이터센터를 '무조건적 유치 대상'이 아닌 '엄격한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제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시민단체들이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4대 기본 원칙(재생에너지, 분산에너지, 에너지효율 규제, 공공주도 관리)'은 고양시 행정에 구체적인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첫째, 건축법에만 의존하는 현행 인허가 구조를 깨고 고양시 자체적인 '데이터센터 건립 및 운영 가이드라인' 조례 제정이 시급하다. 이미 완화됐던 부설주차장 기준을 정상화하는 것을 넘어, 주거 및 교육 정화 구역으로부터의 명확한 이격 거리를 법제화해야 한다. 아울러 단일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면제되고 있는 '사전 유해성 평가'를 지자체 차원에서 의무화해, 냉각수 사용량과 폐열 배출이 주변 미세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인허가 단계에서부터 검증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엄격한 에너지 효율 규제 도입이다. 신규 인허가 사업자에게 전력사용효율(PUE) 1.2 이하 달성 의무화, 물사용효율(WUE) 최소 기준 충족, 그리고 장기적인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사용 계획서 제출을 요구해야 한다. 독일이 이미 법제화를 통해 2026년부터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사용효율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상생 거버넌스 구축이다. 행정의 밀실에서 인허가를 끝내고 뒤늦게 갈등을 수습하는 관행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입지 선정 초기 단계부터 사업 계획, 예상 전력 및 수자원 사용량, 유해성 평가 결과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첨단 AI 산업의 외형적 성장이 시민의 일상과 쾌적한 주거 환경을 담보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엄격한 행정 통제와 지속가능성 기준이 고양시에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