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당장애아 관현악단 지휘
완벽하지 않아 멋진 앙상블
극복 아닌 즐기는 ‘홀트식’교육
졸업생, 대학진학·기업체 입사 

“10년을 함께한 아이들이 올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번 봄은 지금까지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며, 아이들의 시작을 응원하는 계절이 되겠군요.” 

지난 28일 개학 준비로 한적한 홀트학교 교정에서 박에스더(52세) 교사가 입을 열었다. 헐레벌떡 달려온 그의 첫마디에 텅 빈 교정을 가득 채운 어색함이 녹기 시작했다. 기대감 가득한 그의 눈은 봄을 맞아 운동장을 찾은 아이들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그는 현재 담당하는 예그리나 오케스트라의 새단장과 개학 준비로 정신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예그리나 오케스트라는 2012년 홀트학교 발달장애 학생들로 결성된 관현악단이다. 오케스트라를 거쳐간 아이들은 올해 졸업을 하고 사회 곳곳으로 진출했다. 그동안 연마한 음악성을 인정받아 관련 대학에 진학하는가 하면, 음악을 소재로 공공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체에 취직하기도 했다. 연주로 쌓은 예술적 영감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 국제 미술 전시에 초대받은 학생도 있다. 

“음악 교육은 당장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교육과정에서 축적된 배움이 긴 시간 후 사회에 나올 때쯤에서야 발현되죠.”

대다수가 아이들의 ‘한계’를 꼬집을 때, 박 교사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발달장애 아동은 언어표현에는 서투를 수 있지만 ‘선율 속에 정서를 담아내는 것’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이 점에 착안해 언어소통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느낌을 음악으로 풀어내기 위해 앙클룽 동아리를 시작했죠.” 

2018년 9사단과의 송년음악회를 위해 단원들과 연습중인 박에스더 교사. 사진제공=박에스더 교사.
2018년 9사단과의 송년음악회를 위해 단원들과 연습중인 박에스더 교사. 사진제공=박에스더 교사.

자신있게 시작했지만, 박 교사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첫 도전이기에 모든 것이 어려웠다. 각기 다른 세계와 톡톡 튀는 생명력을 가진 아이들을 당장 ‘동아리’라는 공동체로 묶는 것부터가 큰 고난이었다. 박 교사는 우선 아이들과 여러 감정을 즐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음악 속 메시지, 분위기 등을 감정과 연관시켜 아이들에게서 공감을 끌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고독, 추억 등 감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감정 속에서 서로를 느낄 수 있게 된 아이들은 비로소 ‘함께’ 걷기 시작했다.

청아한 대나무 소리에 빠져 아이들이 앙클룽과 친해지기 시작한 2010년, 동아리는 개교 35주년 행사에서 연주를 맡게 되었다. 합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감정을 조절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갔다. 

“합주가 아이들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바로 ‘사회성’입니다. 합주는 압축된 사회와 같아요. 각자가 역할을 담당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죠. 물론 작은 사회인만큼 마찰도 발생합니다. 이를 언어표현이 아닌 음악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은 일종의 훈련을 하는 것이죠.” 

연주회 당일, 모든 단원이 온 힘을 다해 호흡에 집중하여, 손끝으로 감정을 전달했다. 과장하지 않고 평소처럼 연주한 그날의 공연은 교직원과 학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아이들의 앙클룽에 적응한 지 몇 년이 지날 즈음 박 교사는 건반악기 교육을 시작했다. ‘건반악기를 발달장애 학생들이 더 편하게 연주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숫자악보이다. 숫자악보를 시작으로 점점 악기가 추가되고,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선율이 다채로워지며 현재의 예그리나 오케스트라로 발전했다고 박 교사는 회고했다.

2018 고양시민합창단과의 협연 현장모습. 사진제공 = 박애스더 교사.
2018 고양시민합창단과의 협연 현장모습. 사진제공 = 박애스더 교사.

“지금까지 오케스트라를 운영해오며 좌절도 많았지만, 짜릿함도 많았어요.” 지난 2019년 고양학생예술한마당을 회고하며 박 교사는 눈물을 보였다. “우리 학교에서 주도적으로 고양시 학교 10곳을 초대해서 진행했습니다. 일반 학생들과 발달장애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우리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의 우려와는 달리 연주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몇몇 일반 학생들로부터 공연에 대한 감사 인사까지 들었다. “그날 체험한 감탄의 박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와 학생들 모두 큰 감동을 받았어요. 특히 연주가 끝나고 받은 축하는 학생들이 평생 간직할 소중한 감정일 겁니다.”

지금의 예그리나가 겪은 소중한 경험과 추억에는 홀트학교의 도움도 컸다. 오케스트라가 결성된 지 1년이 지난 2013년, 학교 측은 오케스트라 실을 4배 정도 확장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외에도 홀트학교는 발달장애 학생의예술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연주회와 함께하는 음악조회, 감상회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개학 후 북적일 오케스트라실을 나서며 박 교사는 “긴 시간 기다려 주신 분들 덕에 비로소 오늘 미소지을 수 있었다”라며 ‘장애 학생의 교육을 넘어 사회로의 진출, 평생교육·평생직업으로의 확장을 위해선 대중과 교육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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