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작품 전시·수료식
[고양신문] 한 땀 한 땀 가죽 위를 지나간 바늘 끝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시간이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조심스러웠던 손길이 어느새 단단해졌고, 몇 번이고 다시 풀어야 했던 실 끝에서는 포기하지 않은 마음이 작품으로 완성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방과 지갑, 파우치에는 참가자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해 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8일 주엽커뮤니티센터에는 이처럼 특별한 사연을 품은 가죽공예 작품들이 한자리에 놓였다. 작품마다 중도시각장애인들이 40차례의 교육을 거치면서 쌓은 노력과 성취가 배어 있었다.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고양시지회는 지난 4월 7일부터 중도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재활을 돕는 ‘손끝으로 만드는 내일, 가죽공예’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보건복지부가 후원하고 중도시각장애인재활지원센터가 주최한 교육은 가죽공예 기술을 익히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회 참여와 자립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총 40회에 걸친 전문가 과정은 참가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전이었다. 시각에 의존하기 어려운 만큼 가죽의 질감과 형태를 손끝으로 익혀야 했고,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낸 뒤 바늘과 실을 움직이는 작업에도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실을 풀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도 반복됐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속도에 맞춰 한 땀씩 작품을 완성했고, 처음에는 낯설었던 가죽과 도구도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졌다.
40차례의 수업 끝에 완성된 작품들은 기술 습득 이상의 의미를 품었다. 시력 상실 뒤 다시 배움에 나서 자신의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경험은 참가자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교육을 맡은 최경란 작가는 참가자들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처음에는 가죽을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던 참가자들이 점차 촉감을 스스로 확인하고 작업 순서를 익혔고, 어려운 부분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 작가는 “처음에는 제가 무언가를 가르쳐드려야 한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웠다. 서툴게 시작한 작업을 끝까지 완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가자들이 가진 힘과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담당한 최정임 국장도 긴 교육과정을 끝까지 마친 참가자들의 성취에 의미를 뒀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작품을 완성한 경험이 앞으로 또 다른 배움과 도전에 나설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수료식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수료증을 전달하고 그동안의 성과를 함께 축하했다. 가족과 활동보조사, 지회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해 수료생들을 응원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작품을 살펴보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고, 가족·활동보조사들과 가죽 동물 키링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 하나하나에는 가죽의 촉감을 익히고 바늘을 잡으며 수없이 다시 시도했던 40회의 시간이 담겼다. 수료증을 받아든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성취감과 아쉬움이 함께 묻어났다.
교육은 마무리됐지만, 참가자들이 확인한 가능성은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도전은 작품으로 남았고, 그 작품을 완성한 경험은 스스로의 삶을 다시 세워가는 힘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