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현WHAT수다]
[고양신문] “아들, 내일 복지관 가서 체육 프로그램 신청 좀 해줘.”
어머니 부탁으로 덕양노인종합복지관에 간 적이 있다.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니 조용하겠거니 했는데 웬걸.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어르신들, 탁구채를 든 채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어르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식당과 카페 주변은 장터처럼 시끌벅적했다.
어머니는 이른바 '복세권'에 사신다. 집에서 걸어서 5분이면 이 복지관이다. 일주일에 세 번 탁구와 라인댄스를 하시고 교육도 받으신다. 상담 프로그램도 여럿이고, 부담 없는 가격에 건강한 식단으로 차린 점심도 매일 여기서 드신다. 복지관 친구도 생겼고 행사가 있으면 빠지는 법이 없다.
요즘은 노인일자리 사업인 '노노케어'도 하신다. 이웃 노인들 안부를 살피고 받는 활동비는 생활비에 보태신다. 돌봄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남을 돌보는 일에 보람도 느끼신다. 복세권에 사는 행운을 얻었다며 너스레를 떠실 정도다. 요즘은 혼자 사는 노인이 늘면서 나이 들면 복지관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어머니가 그런 동네에 사신다는 게 자식으로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걸 행운으로만 둘 일은 아니다. 2012년 9.68%였던 고양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올해 6월 19.4%로 두 배가 됐다. 이제 시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어르신이다. 이분들 누구나 어디에 살든 복세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두 가지를 같이 했으면 한다.
하나는 도보 15분 안에 닿는 복세권을 늘리는 일이다. 도서관과 행정복지센터, 구청사를 쓸 수 있다. 좀 더 욕심을 내면 빈 교실이 늘어나는 학교를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복합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경기도의원 시절, 학교 안에 방치된 축구부 합숙소 건물을 주민 공간으로 살려 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학교와 교육청, 고양시, 주민이 머리를 맞대고 위탁 방식과 예산, 운영 방안까지 만들었다. 해 보니 안 될 일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이 인근 학교의 문화복합공간에서 문화와 건강, 학습, 식사를 누리고, 노노케어 같은 돌봄 일자리로 활동비도 벌 수 있다면 더 많은 노인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 하나는 아파도 그 동네를 떠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올해 3월 시행된 돌봄통합지원법이 ‘살던 곳에서’를 내건 것도 결국 이 얘기다. 그런데 통합돌봄 현장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사람이 방문진료 의료진이다. 나이가 들면 병원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병세권’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의료진이 같은 동네에 산다면 어떨까. 은퇴한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에게 동네에 살 집을 마련해 드리고, 대신 방문진료와 건강관리를 맡기는 것이다. 처우만 제대로 해준다면 이웃 어르신과 장애인이 사는 곳에서 진료받고 회복할 수 있다.
고양시에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동마다 복세권 거점을 하나씩 만드는 일이다. 물론 사정은 안다. 올해 통합돌봄 서비스 예산은 시군구당 평균 3억원도 안 되고, 전담인력 인건비 지원은 6개월짜리다. 그래도 고양시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통합돌봄 인력을 미리 길러 두고, 이들과 함께 움직일 주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고양시의회도 돌봄 주거 조항을 조례에 담아 주었으면 한다. 국가에는 재원을 당당히 요구하되, 할 수 있는 것부터는 미루지 말고 시작하자.
어머니도 언젠가 탁구채를 내려놓으실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노노케어로 어머니가 돌보시던 이웃노인이 이번엔 어머니 안부를 물어 주는 동네였으면 좋겠다. 고양시민 누구나 복세권에 살고, 아파도 그곳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 고양시가 그 길을 먼저 열어 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