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음식 함께 나누는 공동 냉장고

나눔냉장고는 서인영 정발산동 주민자치위원장<사진>이 처음 제안했다.

남는 음식 함께 나누는 공동 냉장고
정발산동 직능단체 회원들 동참

각종 통조림과 김치, 채소, 과일, 빵 등으로 가득 차 있는 냉장고. 어느새 사람들이 한두 명씩 냉장고에 찾아와 용기에 담긴 음식들을 1~2개씩 가지고 자리를 뜬다.

작년 8월부터 정발산동 주민센터 후문에는 커다란 냉장고 두 개가 놓여있다. 매장에서 쓰는 유리문 달린 ‘누드 냉장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밖에서도 금방 확인이 가능하다.

이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들은 주인이 따로 없다. 음식(식재료)을 넣어두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음식이 남는 사람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부족한 사람은 가져가면 된다. 돈을 낼 필요도 없고, 돈을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매일 이 같은 일이 자연스레 반복된 것이 벌써 반년이 넘었다.

나눔 냉장고의 시작은 서인영 정발산동 주민자치위원장의 제안 덕분이었다.

“가정에서 남은 음식, 식당에서 남은 식재료와 반찬, 빵집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음식, 먹을 수 있는데 시들해졌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마트의 식재료들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할 거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스페인의 음식나눔 냉장고가 모델
서 위원장이 오랜 전부터 막연히 생각만 했던 이 모델은 세상 어딘가에서는 이미 화제가 돼 있었다. 인구 3만 명 스페인의 소도시(갈다카오)에는 모든 시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나눔 냉장고’가 있다. 그 내용을 영상으로 접한 서 위원장은 작년 8월 위원장직에 취임한 직후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인구 2만8000의 정발산동이 스페인 소도시와 비슷한 인구이고 아파트 없이 주택이 많은 정발산동의 특성상 얼마든지 잘 운영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이 인근 식당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어 하루 100kg 정도나 되는 음식이 냉장고를 거쳐 주민들에게 나간다고 한다. 정발산동의 고양식당, 정원식당, 장보고 야채가게와 청소년쉼터 둥지에서 매번 음식을 보내오고, 멀리 웨스턴돔의 오대산뷔페에서도 반찬을 보내오고 있다.

정발산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자체적으로 작은 텃밭을 이용해 감자, 고구마, 채소 등을 키워 냉장고에 넣고 있다. 다른 동에 비해 유난히 직능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한 정발산동은 부녀회, 바르게살기위원회, 새마을회, 체육회, 통장협의회, 청소년지도협의회 등에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집에 있는 음식들을 나눔 냉장고를 통해 이웃들과 나누고 있다.

식당 음식을 작은 용기에 담는 것도 주민자치위원회의 큰 일 중 하나다.

외제차 타고 와 음식 가져가기도
음식이 들어오는 시간은 주로 저녁시간이고 가져가는 시간은 주로 아침이다. 그런데 운영해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됐지만 초기 운영에는 애를 먹었다.

“음식을 가져오는 사람보다 가져가려는 사람이 더 많아요. 어렵게 모아 놓으면 2시간이면 냉장고가 텅텅 비어요. 독거노인과 같은 어려운 분들만 가져가게 하면 오히려 낯을 가려 못 오실까봐 음식 가져가는 기준을 공식적으로는 걸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음식이 꼭 필요한 분들이 우선적으로 가져가시면 좋겠어요.”

요즘에도 외제차를 타고 와 음식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고, 가져가는 양을 제한한다고 쓰여 있지만 장바구니에 싹쓸이 하다시피 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서 위원장이 한탄을 한다.

주택가는 음식물 쓰레기통 전쟁
사실 냉장고는 나눔의 의미도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데도 목적이 있다. 주택가 특성상 아파트단지보다 쓰레기처리 관리가 안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골목마다 놓여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밤이 되면 귀신처럼 이리저리 이동을 한다고 하니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서 위원장은 “쓰레기통에서 냄새가 날뿐만 아니라, 주변에 무단투기도 하다 보니 자기 집에서 먼 곳으로 밀쳐놓기 때문에 낮에 가보면 어디 갔나 찾아다니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음식물 종량제봉투에 담아서 버리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 악취의 한 원이이기도 하다.

“10명 중에 8명은 종량제 봉투를 안 써요. 공무원이랑 암행 단속 나가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냥 버리는데 나한테만 그러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 보통이에요. 나눔 냉장고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도 좋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무단 투기하지 않는 높은 시민의식도 중요합니다. 나눔 냉장고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런 것들이 개선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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