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신간 『지역순환경제란 무엇인가』

[고양신문] 고양시의 낮은 재정자립도와 양질의 일자리 부재, 심화되는 서울 종속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기 신도시 개발 이후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수없이 쏟아져 나온 지역 발전 공약과 정책들은 왜 번번이 실패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국내 지역순환경제 담론을 꾸준히 이끌어온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신간 『지역순환경제란 무엇인가』는 인구 100만 특례시 고양조차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지역경제 피폐화와 서울 종속의 굴레에 맞서 명쾌한 원인 진단과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동안 고양시가 마주했던 좌절들을 돌아보자. 백석동 출판단지 예정지가 초고층 주상복합단지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토지주택공사(LH)가 아닌 고양시와 시민들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난항을 겪다 멈춰 선 CJ라이브시티 사업이 경기도나 대자본의 시혜적 투자에만 목매지 않고 고양시 주도로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추진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간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 아래 추진된 수많은 외생적 개발 사업들이 외부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실수요와 시민들 삶의 필요에 맞춰 진행될 수 있었다면 고양시의 오늘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 책의 핵심 열쇠말은 단연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이다. 고양시가 직면한 만성적 위기의 원인 역시 여기에 있다. 그동안 지역은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기업을 끌어오는 데에만 매몰됐을 뿐, 스스로 자기 경제의 주체가 되려는 시도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진정한 자족도시란 단순히 일자리의 총량만 늘어난 도시를 뜻하지 않는다. 그곳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경제적으로 다시 소유하고, 조정하며, 계획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족이라 부를 수 있다.

지역순환경제는 바로 지역사회가 이러한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이자 기획이다. 책은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지역화폐와 지역재투자, 본사이전제 및 지역본사제, 공공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민주주의’, 지역공동체 부 구축(CWB), 지역공동체 토지신탁(CLT), 시민적 계획경제 등을 상세한 사례와 함께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역순환경제는 이 같은 정책들을 단순히 나열해 놓은 패키지 묶음이 아니다. 가치의 귀환, 부의 누수 가시화, 지역 내 재투자, 민주적 결정, 개방적 상호성이라는 확고한 원칙 위에서만 비로소 작동한다. 이러한 원칙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지역순환경제는 고양시가 오랜 시간 안고 온 베드타운이라는 ‘공간적 타율성’을 깨뜨리고 ‘제도적 대항 회로’를 촘촘히 엮어낼 수 있게 된다.

책은 지역순환경제를 둘러싼 세간의 오해와 통념에도 반론을 편다. 가령 지역이기주의나 소지역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저자는 “오히려 모든 지역이 자기 삶의 물질적 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정당한 요구”라고 일축한다. 폐쇄적 자급자족론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외부와의 연결을 끊자는 고립주의가 아니라, 지역의 부와 사람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역을 비우지 않는 연결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답한다. 지역재투자나 금융민주주의 같은 정책에 으레 따라붙는 ‘반시장주의’라는 낡은 딱지에 대해서도 탄탄한 논리로 맞선다.

나아가 책은 주류 경제학의 일반적 통념을 밑바닥부터 뒤흔든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할 시장 경제 영역에 왜 지역의 자기결정권이 개입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시장은 사회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연물이 아니다. 시장은 제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정치적으로 보호되며, 사회적 규칙 속에서만 작동한다. 따라서 지역사회는 자기 삶을 파괴하는 시장의 일방적 흐름에 맞서 다시 규칙을 세울 권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주민을 경제의 단순한 수혜자나 객체가 아닌 당당한 주체로 호명하는 이유이며, 책 후반부에서 강조하는 ‘시민적 계획경제’의 논리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묻는다. 과연 ‘경제란 무엇인가’. 경제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떠나 추상적인 성장률과 수익률의 숫자로만 소비될 때, 지역은 언제나 중앙과 자본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경제를 ‘삶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지역은 주변부가 아니라 가장 첫머리에 놓이는 출발점이 된다.

외부 요인이나 쫓겨남 없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동네, 일터와 삶터가 배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터전, 그리고 내가 살아갈 장소의 경제적 운명에 대해 주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도시. 이것이 바로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품은 지역순환경제가 낡은 토건 중심의 ‘지역경제 활성화론’과 근본적으로 결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과거 고양시는 ‘주민자치 모델’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제도적 참여의 외형은 넓어졌을지언정, 지역의 부와 자원을 스스로 다스리는 ‘경제적 결정권’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정치적 자치를 넘어 삶의 토대를 일구는 경제적 자치로의 도약, 그 해답이 바로 양준호 교수가 펼쳐 보인 지역순환경제의 경로에 오롯이 담겨 있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