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혜 기자의 에코로그(5)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이 보내는 경고
남쪽의 나비 어느새 중부지방 이웃으로
[고양신문] 여러분은 올해 어떤 나비를 만나셨나요?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가면 들판의 나비들도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한여름에 보이던 나비와 가을에 보이는 나비는 종류가 다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노랑나비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올가을은 노랑나비 풍년이네” 하고 무심코 지나치려다, 카메라를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 그냥 노랑나비가 아니라 ‘남방노랑나비’였다.
날개를 접고 앉았을 때 일반 노랑나비는 뒷날개 중앙에 주홍색 점무늬가 있다. 반면, 남방노랑나비는 날개 뒷면에 작은 갈색 점무늬와 물결무늬가 은은하게 수놓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름에서부터 남쪽의 따스한 기운이 풍기는 이 나비는 본래 남방계 곤충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북쪽으로 터전을 넓혀온 아이다.
10여 년 전, 환경교육 현장에서 지구온난화를 설명할 때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 사과의 주산지가 대구가 아니란다. 사과나무가 자꾸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어. 이대로 가면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태백산 꼭대기에서나 사과를 재배해야 할지도 몰라.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가 차례상에 올리는 과일도 싹 바뀔 수 있단다.”
그 시절의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요즘은 강원도 철원이나 파주에서도 아삭하고 단단한 사과가 쑥쑥 자란다.
자연의 변화는 사과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인기투표를 하면 단연 1위를 차지하는 사마귀 세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몇 년 전부터 애벌레 시절 엉덩이를 번쩍 들고 다니는 사마귀가 자주 보인다. 바로 배가 넓적하고 앞날개 가장자리에 흰 점이 하나씩 콕 찍혀 있는 ‘넓적배사마귀’이다.
한반도에는 사마귀, 왕사마귀, 좀사마귀, 민무늬좀사마귀, 항라사마귀, 넓적배사마귀, 붉은긴가슴넓적배사마귀, 좁쌀사마귀, 애기사마귀 등 9종이 살아가고 있다. 예전 중부지방에서는 주로 왕사마귀나 좀사마귀를 쉽게 만날 수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남방계인 넓적배사마귀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생태강사들 사이에서는 “요즘 왕사마귀와 사마귀가 좀 덜 보이는 것 같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곤충이 어디 나비와 사마귀뿐일까. 바람을 타고 먼바다를 건너오는 ‘된장잠자리’도 있다. 작년에는 제주도 일대에 된장잠자리 떼가 몰려들어 조업이 힘들 정도라는 뉴스까지 나왔지만, 올해는 어쩐 일인지 된장잠자리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된장잠자리는 거센 태풍에 날개가 찢기기도 하지만, 태풍이 끌어올리는 따뜻한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들어오곤 한다. 올해 한반도에 태풍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된장잠자리가 덜 왔다는 이야기다. 해마다 달라지는 바람과 기온에 따라 잠자리떼의 풍경마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물이 발견되는 위치와 시기의 변화는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깊숙이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2010년부터 구상나무, 남방노랑나비 등 100종을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지정했다. 이어 2017년에는 국민이 쉽게 관찰할 수 있고 기후변화 예측에 유리한 이동성이 큰 곤충과 생물계절이 뚜렷한 종을 반영하여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100종과 후보종 30종을 새롭게 정비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한번 일어나면 돌이키기 어려운 ‘불가역적 피해’를 남기기에, 이들을 지속해서 기록하고 감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활동하는 (사)에코코리아 회원들은 K-BON(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시민모니터링단) 활동에 참여하며 기후변화지표종과 생태계교란생물을 기록하고 있다. 봄철 개나리 개화시기 조사부터 시작해 해마다 미션을 수행하며 수년째 고양, 파주 지역의 생태계를 눈여겨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25년, 우리 단체 회원들은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남방노랑나비를 공식 기록했다. 본래 2010년부터 지표종으로 지정됐지만 고양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종이다. 올해 시민들의 조사 사진을 살펴보니 고양, 파주뿐만 아니라 서울, 포천, 강화도, 강원도 원주 등 중부지방 전역에서 남방노랑나비의 관찰기록이 수두룩하게 올라오고 있다. 남쪽의 나비가 어느새 우리의 이웃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편리한 문명 속에서 살아가며 길가의 작은 풀꽃이나 날아다니는 벌레를 유심히 보지 않곤 한다.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처럼 생활에 불편을 주는 곤충이 무리로 창궐해야 비로소 자연을 돌아보며 뉴스가 된다. 지구가 더워진다고 하면 “에어컨을 켜면 되지” 하고 무심히 넘겨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문명의 편리함에 기대기 전에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 주변의 들판과 숲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은 이미 온몸으로 수많은 변화를 말하고 있다. 그 작은 생물이 보여주는 경고를 마주하면 두려움과 함께 생태를 향한 미안함이 밀려온다.
자연을 꾸준히 살펴보는 일, 그것이 기후위기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생태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