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수의 창조적 오독]
위기감과 함께 창작 활용방안 고민
도움받더라도 주도권 잃지 말아야
[고양신문] 내가 속해 있는 두 업계, 음악계와 문학계의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는다면 단연 AI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예상보다 AI는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또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조금만 고민해서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시나 소설 한 편이 뚝딱 하고 나오고 복잡한 악기 구성을 갖춘 노래 한 곡도 그야말로 ‘뿅’하고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그렇게 나온 생산물이 아직은 질적으로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안도의 한숨 한번 내쉬는 동안에도 AI는 무섭게 성장해서 이제는 흠결을 발견하기 어려운 정교한 결과물들을 너무나도 쉽게 뽑아낸다.
AI 발전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일단 아주 높은 비율의 아티스트들은 생계 위협을 느낀다. 다양한 행사의 백그라운드 뮤직, TV프로그램 삽입곡들이 AI로 제작되곤 한다. 예전 같았으면 어떤 작곡가가 발주를 받아 작업비를 받고 만들었을 노래들이다. 작곡가는 가창자와 연주자에게 돈을 지급했을 것이고 녹음 스튜디오도 약간의 수입을 올렸을 것이다. 아니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기성곡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저작권료도 그 곡의 저작권자들이 다음 작업을 이어가는 데 큰 보탬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이제는 굳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외주를 맡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공무원도,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도, 방송국 PD도 약간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조금만 툴을 만지작거리면 충분히 나쁘지 않은 음악을 생산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기존에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의 일거리는 줄어드는 것이다.
이제는 작품의 생산 방식이 바뀌었음을 빠르게 인정하고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AI를 통해 작품을 생산하더라도 결국 프롬프트 작성과 생산물의 검수는 사람이 해야 한다. 아무래도 창작 경험이 없는 일반 대중들보다는 현업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생산해 본 사람이 그런 일을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효율적인 툴이 존재하는데 굳이 한 문장 한 장을 직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좋은 어휘를 고르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런 작업을 AI에게 맡겨 생산 시간을 대폭 줄이고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어 그것으로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생각 역시 일리가 있다. 출판시장에는 그런 식으로 출간되는 책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인쇄비나 물류비가 전혀 들지 않는 전자책 시장에서는 이미 너무나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많은 음악가들이 신속하게 트렌드를 반영해서 AI 작업물을 만들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같은 것으로 구성해서 업로드 한다. 그것으로 채널을 키우고 소득을 벌어들이는 일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나는 다소 절충적인 입장이다. AI 생산물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느끼고 있고, 창작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AI로 생산된 것들이 아티스트들이 직접 작업한 작품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AI는 기존에 세상에 나와 있는 것들을 학습하고 분석하여 그것을 토대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러나 아티스트들은 독창적인 이야기나 정서, 표현 방식을 바탕으로 창작을 해낸다.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들에 영향을 받고 그것들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면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신의 정서나 사고체계를 통해 재해석하는 과정은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과는 엄연히 다른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 단순히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일과 동일한 가치를 지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AI 생산물이 상업적으로 활용될 때 그 출처를 밝히는 것을 의무화하고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앞서 말한 창작과정에 있어 AI를 활용하는 부분은 얼마든지 허용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미 AI를 내 창작의 훌륭한 도구 혹은 조력자 정도로 여기고 있다. 음악 작업을 할 때 몇 가지 악기소리를 AI를 통해 생성해내기도 한다. 곡의 중추가 되는 중요한 악기는 직접 녹음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비용을 절감하고 부족한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AI에 맡기곤 한다. 실제로 몇몇 곡은 드럼 비트나 신디사이저 소리 같은 것을 그런 식으로 뽑아내어 사용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도움을 받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 쓴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단 원고를 다 작성한 다음에 AI에게 읽히고 평가하도록 지시한다. 그러면 AI는 그간 읽어왔던 나의 많은 글들을 토대로 그 글의 장단점을 분석해준다. 가끔은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잘못 쓰인 문장과 맥락 면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고쳐야 할 부분을 찾아 직접 고치는 방식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AI의 조력을 받을 때 절대적으로 중요한 점은 내가 창작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는 아주 유능하고 충직하며 과묵한 어시스턴트다. 그런 어시스턴트가 있다면 어떤 창작자건 점점 더 많은 영역을 맡기고 싶은 유혹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을 맡겨도 잘 해내는데다가 자신이 작품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의존도를 높이다 보면 결국 작품의 주도권은 AI에게 넘어가고 내가 AI를 보조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좋든 싫든 AI는 이미 세상에 나타났고 그 발전도 보급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갑자기 우리가 그 옛날처럼 러다이트 운동 같은 걸 벌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 절망하기보다는 그 흐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조금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AI의 도움을 활용해 창작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정말 창작을 한 것인지, AI를 보조하며 단순히 생산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온라인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심지어 신춘문예 응모작 수도 AI 등장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창작자가 많아지는 것은 기성 창작자인 내 입장에서는 두렵기만 한 일이 아니다. 브라질 축구선수들이 돈을 많이 벌고 중국의 탁구선수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이유는 그들의 실력이 출중해서도 있지만 그만큼 그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많고 시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다행히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아직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