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동구 338곳 급감 '도내 최대'
과밀억제 규제, 택지 개발에 발목
도심형 제조업체 외곽으로 떠밀려
파주‧김포는 폭발적 증가 대조적
[고양신문] 수도권 제조업의 생산 기반이 서울 도심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동안 고양시의 제조업 기반은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항 출판인쇄단지 등 고양시 제조업이 밀집한 일산동구의 경우 지난 15년간 수도권 전체 시·군·구 가운데 두 번째로 등록공장이 많이 감소해 경기도 내 최대 감소지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수도권 공장 확산 진단: 제조업 일자리의 기반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5년까지 15년간 수도권 등록공장은 7만4539개에서 10만4498개로 40.2%(2만9959개) 증가했다. 이 증가분의 83.0%(2만4879개)가 경기도에 집중됐다. 하지만 이 같은 경기도의 제조업 성장세와 달리, 고양시는 규제와 개발 압력에 밀려 기업과 일자리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실이 통계 수치로 확인됐다.
수도권 공장 40% 늘 때 일산동구는 338곳 급감
보고서는 행정안전부 도로명주소와 한국산업단지공단 팩토리온(FactoryOn) 등록공장 전수 데이터를 공간 좌표로 변환해 지난 15년간의 공장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분석 결과, 서울시청 기준 10km 이내 도심권 공장은 645개 줄어든 반면, 30~50km 외곽 구간은 1만9205개(62.0%)나 급증했다. 수도권 생산기능의 무게중심이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급격히 이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양시의 제조업 기반은 직격탄을 맞았다. 시·군·구별 증감 현황을 보면 고양시 일산동구의 공장은 지난 15년간 무려 338개가 줄었다. 이는 준공업지역이 주거·업무지구로 재개발된 서울 성동구(-364개)에 이어 수도권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감소폭이다. 서울 구로구(-260개), 수원시 영통구(-162개), 성남시 분당구(-119개)보다 공장 이탈이 더 심각했다. 같은 기간 인접한 화성시(+6,181개), 김포시(+3,546개), 파주시(+1,982개), 시흥시(+1,945개), 양주시(+1,225개) 등이 서울에서 밀려난 공장 수요를 흡수하며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과 정반대 흐름이다.
이들 감소 지역의 공통점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공장 신·증설이 꽁꽁 묶인 ‘과밀억제권역’이자, 대규모 택지 개발과 지가 상승으로 공장이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이다. 일산동구 역시 과거 출판·인쇄·정밀가공 등 도심형 제조 기능을 담당하던 공장과 영세 제조업체들이 치솟는 임대료와 촘촘한 입지 규제를 견디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문을 닫았다. 공장이 떠난 자리에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단순 상업시설이 들어섰고, 고양시가 줄곧 외쳐온 ‘자족도시’ 구호와 달리 제조업 일자리의 뿌리는 더욱 취약해졌다.
과밀억제권역 족쇄와 택지 개발에 밀려난 생산기지
고양시 제조업 기반이 이처럼 무너진 일차적 원인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 규제다. 고양시는 시 전역이 과밀억제권역으로 묶여 있어 공장의 신설이나 증설이 원천적으로 억제돼 있다. 반면 대규모로 공장이 늘어난 파주·김포·양주·화성 등은 공장 신·증설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성장관리권역’에 속한다. 결국 규제의 벽에 막힌 공장들이 경계선을 넘어 파주와 김포 등 인근 도시로 짐을 싼 셈이다.
여기에 도시개발 압력과 급격한 땅값 상승이 기름을 부었다. 일산동구를 비롯한 고양시 전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업시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기존 공장 부지는 주거·상업용지로 빠르게 전환됐다. 지가를 감당하지 못한 영세 제조업체들은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폐업을 선택했다.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지식산업센터가 우후죽순 들어섰으나 이마저도 한계를 드러냈다. 지식산업센터는 분양형 부동산 개발에 치중돼 실질적인 제조업 공정을 담아내지 못했고, 최근 경기 침체와 맞물려 높은 공실률을 기록하며 자족기능 확충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남부는 반도체·자동차, 북부는 가구·인쇄… 격차 심화
경기연구원의 이번 분석은 경기 남부와 북부의 뿌리 깊은 산업 격차도 명확한 데이터로 보여준다. 2025년 기준 경기 남부의 공장은 6만1968개로 북부(1만6980개)의 3.6배에 달했다. 15년간 경기도 전체 공장 증가분의 81.6%가 남부에 집중됐다. 북부의 증가분(4578개)마저도 파주와 양주 두 시·군이 70%를 차지해, 고양 등 서북부 중심권역의 산업 공동화는 한층 도드라졌다.
업종 구조의 양극화는 더 치명적이다. 남부에서는 반도체, 자동차 부품, 전자부품, 배전반 등 국가 핵심 제조업과 중간재 산업이 대규모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집적됐다. 반면 북부는 가구(1334개), 인쇄(687개), 편조제품(섬유) 등 전통적인 영세 경공업이 주를 이뤘다. 군사시설보호구역과 수도권 규제가 겹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지 못한 결과,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을 담을 그릇 자체가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북부에 늘어난 공장 대다수는 도로와 오폐수 처리시설이 없는 개별입지 난개발 형태로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전체 신규 확인 공장의 34.3%가 기존 공장에서 100m 이상 떨어진 곳에 '나홀로' 들어섰고, 공장당 평균 제조시설 면적은 1009㎡에서 965㎡로 줄어드는 등 소형화·영세화 경향이 짙어졌다. 고양시 외곽인 덕양구 관산·고양동이나 일산동구 지영·문봉동 일대에 산재한 개별입지 공장들 역시 열악한 인프라와 주거지 혼재로 인한 갈등 속에 방치돼 있다.
외부자본 유치 앞서 '풀뿌리 제조기반' 재정비해야
보고서는 무조건적인 공장 억제가 능사가 아니며, 무질서한 개별입지 난립을 막는 대신 산업단지와 지식산업센터 등 '계획입지'로 기업을 흡수하는 투트랙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실제로 수도권 전체에서 계획입지 공장은 지난 15년간 67.8% 증가해 개별입지 증가율(28.4%)을 두 배 이상 앞질렀으며, 계획입지 증가분의 62.2%를 지식산업센터가 흡수했다.
때문에 고양시가 추진 중인 일산테크노밸리와 고양방송영상밸리,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의 대형 사업도 이 같은 맥락에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거창한 첨단 산업 유치 청사진만 내걸 것이 아니라, 흩어지고 밀려나는 도심형 정밀가공, IT 부품, 지식기반 제조업체들이 합법적이고 쾌적하게 입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산업용지와 도시형 공장을 적기에 공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진정규 경기의정연구센터 연구위원은 “공장 확산을 무조건 막기보다는 계획적인 산업공간을 공급해 기업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며 “특히 기존 공장 밀집지역은 준산업단지 등으로 묶어 도로와 기반시설을 갖춘 계획입지로 정비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