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경북행복재단 대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경북행복재단 대표
정재훈 경북행복재단 대표

[고양신문]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는 말이 있다. 궁여지책을 의미한다. 역대 정부가 내놓는 돌봄 대책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부모의 일·가정 양립이다. 이때 일은 여차하면 해야 하는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의미하지 않는다. 초등 저학년 나이까지는 부모가 오후 4~5시쯤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의미한다. 주말에는 당연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의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도록 국가가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현실 복지국가의 모습이다. 복지국가는 부모를 대체하지 않는다. 부모의 돌봄 책임을 가능케 하는 지원을 최대한 하는 노력을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노동시장 개혁의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는 기업 핑계를 대고, 기업은 국가의 눈치만 본다. 툭하면 머리띠를 두르는 노동운동 아저씨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요구를 할 상상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친화 근무 환경 관련 노동시장 개혁이 지체되는 가운데 “걱정말고 일하세요. 아이는 국가가 돌볼게요”라는 정책이 확대됐다. ‘잇몸’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온종일 돌봄’, 윤석열 정부의 ‘늘봄학교’, 이재명 정부의 '돌봄 국가책임 강화'까지 정책 명칭은 달라도 방향은 비슷하다.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늘리고 부모의 취업 활동으로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아예 길러드리겠다는 ‘길러드림’이라는 사업도 있다. 시장님이 아이를 길러주신다면 청년들이 신나서 아이를 낳을까?

지금 이러한 사업이 필요하긴 하다.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에게는 절실한 지원이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찾아오는 돌봄 절벽을 해소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저출산 대책의 중심이 되는 순간 일·가정 양립에 대한 희망은 사라진다. 주말에도 일해야 하지만 아이를 맡길 곳이 있으니 결혼하고 아이 낳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 저녁 8시까지 아이를 돌봐준다니 안심하고 출산하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은 청년이 할까?

돌봄 공백을 해소하는 정책과 결혼·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만드는 정책은 다르다. 전자는 이미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당면한 어려움을 덜어준다. 후자는 아직 부모가 되지 않은 청년에게 미래의 가족생활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국가가 전자에 집중하는 동안 후자는 뒷전으로 밀렸다.

“길러드리겠다”는 사업은 성과 지표를 보여주기 쉽다. 돌봄시설 수, 이용 아동 수, 운영시간을 늘리면 된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저녁이 있는 가족생활이 가능해졌는지 평가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정치적 홍보 수단으로서도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국가 돌봄의 확대가 장시간 노동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를 만드는 대신 ‘잇몸’을 강화하는 셈이다.
지금 상황에서 무턱대고 부모 돌봄만 강조할 수도 없다. 성평등한 돌봄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부모 돌봄은 다시 엄마 돌봄이 되고, 여성의 경력단절과 독박육아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 유연근무, 육아휴직의 실질적 보장과 함께 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주어야 한다. 정치의 몫이다. 

일·가정 양립을 둘러싼 동상이몽의 실체를 벗기자. 부모가 아등바등 일하는 동안 국가가 아이를 돌봐주면서 가능케 하는 일·가정 양립이 있다. 아이와 저녁 5~6시 전에는 집에 들어와서 일찍 저녁 먹고 놀아주며 9~10시에는 재울 수 있는 일·가정 양립이 있다. 국가는 전자를 꿈꾸고 청년들은 후자를 꿈꾼다. 어디에 맞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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