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채를 600채로, 축소 분양 위주 재개발
펜드레히트의 재개발 “당신들은 어떤 집 도시를 원하나”

▲ 펜드레히트의 도시
로테르담의 펜드레히트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에 조성된 도시다. 로테르담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다시피 했다. 정부와 시민들은 복구에 힘을 쏟았다. 1947년 로테르담시는 도시건축가를 고용해 지역에 1만2000여명 규모의 도시 재건을 계획했다. 어려운 시절, 인구 수용과 복지를 충족하는 도시가 만들어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곳에서 아이들이 자라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기’를 희망했다. 아파트 형태의 집합주택과 노인요양지, 다양한 모습의 단독주택지들이 섞여 건설됐다. 당시에는 ‘다중적인 복합개발’이라는 것만으로도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작은 평수의 임대아파트에는 터키 등 다문화이민자들이 대거 살게 됐다. 낡은 주택에는 저소득층들만이 남게 됐고, 도시는 쇠락해갔다. 펜드레히트 재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3년 2월 거리에서 놀던 아이들이 지나가는 차에 눈을 던졌는데 운전자가 차에서 총을 꺼내 발사해 한 아이가 죽었다.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펜드레히트는 우범지역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한번 도시에 낙인이 찍히니 벗어나기 힘들었다.”

우범지역 낙인보도에 언론보이콧
펜드레히트의 중간지원조직이라 할 수 있는 바이탈펜드레히트의 활동가 라익스 베스트릭씨(Rieks Westrik)는 재개발과 시민참여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바이탈펜드레히트를 중심으로 시민들은 ‘미디어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범죄 현장으로만 펜드레히트를 비추는 것에 항의하는 뜻에서 미디어를 거부하고, 대신 지역에 사는 건강한 시민들과 그의 메시지를 포스터에 담아 지하철에 붙였다.

1955년부터 이곳에 살았던 클라씬 클래머(clasien kramer)씨도 자신이 평소 이야기하는 ‘여성 친화적 주택건설’ 메시지와 함께 포스터에 주인공이 됐다. 6개월 이후 언론들도 점차 펜드레히트를 다시 보고 시민참여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5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낡아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게 되자 펜드레히트는 네덜란드 정부차원에서 첫 번째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주변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펜드레히트는 구도시가 됐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실업자들도 늘어나게 됐다. 시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 바이탈펜드레히트의 포스터 캠페인
시민들에 “임대에서 분양 바꿔라”
로테르담시는 2002년 구 도심부터 시작해 광장에 큰 텐트를 쳐놓고 시민들에게 어떻게 도시를 재생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시와 주택협회, 시의회가 함께 주도했다. 네덜란드는 당시 90% 이상의 집들이 주택협회 소속으로 대부분 임대 형태로 지원을 받아 살고 있었다. 시민들은 재생사업을 통해 자신의 집을 갖고, 보다 도시에 애착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게 되기를 희망했다.

기존 임대 소형 중심의 아파트를 분양, 중형으로 바꾸는 축소 재건축으로 가닥이 잡혔다. 우선 1200채의 아파트를 허물어 600채, 가족형 주택으로 바꾸기로 했다. 도시계획과 재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였다.

“4층짜리 아파트가 있었는데 40~50년 동안 유지될만큼 건물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가족들이 살기에 너무 좁아 두 집을 털어 가족들이 살도록 고쳤다.” 클래머씨는 그렇게 주택협회와 건축가들이 새 건물을 지을 때마다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다고 말했다. 클래머씨는 젊은 시절 주택협회 디렉터로 일 했다. 그의 역할이 바로 집에 살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의견을 들어 주택협회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 활동가들 단체사진
“이곳에 터키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터키는 네덜란드 사람들과 다른 전통을 갖고 있다. 우선 터키 여성들을 모아 의견을 들었다. 그들은 전통 네덜란드의 확 트인 부엌이 불편하다고 했다. 음식냄새가 밖으로 나가면 안되는 터키 전통 때문이었다. 또한 화장실이 부엌옆에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의견을 주택협회에 전달했고, 협회는 터키인들이 원하는 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

터키식 부엌 만들어달라는 의견도
클래머씨가 자랑스런 표정을 지었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의견 수렴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도입됐다. 그중 ‘펜드레히트 대학’이라는 방식이 있다. 시민들이 강사로 나서고, 주택협회나 공무원들이 학생이 되는 수업이다. 시민들은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다. 피터 드럽스 교수가 제안한 방식으로 “그 사람들이 말하게 하라”는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지역의 교회, 스포츠센터, 5개 초등학교가 필요할 때마다 대학으로 변했다.

축소재개발로 인해 지역을 떠나는 사람은 없을까. “논란도 있었다. 우리 바이탈 단체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하지 않냐는 지적도. 우리는 이곳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보다는 듣는 역할을 주로 한다. 또한 주택협회가 주거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질문지를 가지고 빚 문제, 아이들 양육문제가 있는지 조사한다. 그리고 최대한 연결과 해결을 돕고 있다.” 활동가 베스트릭씨의 설명이다. 

젊은 중산층 유입에 성공
펜드레히트의 현재 도시재생은 진행중이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네덜란드도 세계 경제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덜란드도 선분양 방식으로 개발을 하는데 현재 60%를 넘지 못했다고. 결국 규모를 더 작게 해서 진행하는 방식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집합주택들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클래머씨는 신축 고소득 임대아파트에 산다. 당초 소형 임대였으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중산층 이상이 살 수 있는 비교적 넓은 임대아파트로 지어졌다. 최근이 신축, 재건축되는 집합주택들은 대부분 분양 방식의 중형으로 교체되고 있다고 한다. 600채 중 300채 정도가 지어졌다. 현재의 과제는 젊은 세대의 유입이다. 2001년 1만2000명이던 펜드레히트 인구는 조금씩 줄고 있다. 그러나 다세대와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펜드레히트의 재개발은 아직 성공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광장에서부터 도시계획을 시작하며 ‘살 사람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은 우리 눈에 부럽기만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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