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약받고 대자동에 묻혀

대자동에 있는 숙정옹주 묘.

사약받고 대자동에 묻혀
다산쿱 ‘공주길’ 걷기행사 성황

지난 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간통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우리나라 형법에 있는 간통죄는 62년 만에 사문화 됐다.

조선 500년 동안  공주나 옹주 중에 사약을 받고 돌아가신 분이 딱 한 분 있다. 그 분이 바로 고양시 대자동에 묻혀 있다. 말 많은 간통죄 때문에 사약을 받고 돌아가신 중종의 따님 숙정옹주(淑靜翁主)이다.

숙정옹주는 10살에 한 살 더 많은 능창위(綾昌尉) 구한(具澣)에게 시집갔다. 구한은 시문에 능했으며 문인화에도 뛰어났다. 성품이 온화하고 용모가 단아했으며 효도와 우애가 깊었다. 그런데 35세에 요절했다.

34살에 과부가 된 옹주는 40살에 모후인 문정왕후로부터 사약을 받고 죽는다. 사위와 간통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왕실에서 숨기고 싶어했을 이런 일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은 의외다.

옹주가 죽은 지 2년 뒤, 그리고 문정왕후가 죽은 지 1년 뒤 옹주의 배다른 동생 명종이 옹주의 큰아들 구사근에게 벼슬을 내린다. 당시 사관은 이러한 임금의 처사가 매우 못마땅했나 보다. 그래서 사초에 기록했고, 이는 결국 실록에도 실리게 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간통죄는 죽을 죄였나? 그건 아닌 거 같다. 조선시대 간통의 대명사하면 어우동이 떠오른다. 그런 어우동을 죽인 죄목은 간통죄일까? 아니다. 명나라 법률인 ‘대명률(大明律)’의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해 바로 개가(改嫁)한 것’에 견줘서 죽인다.

당시 임금인 성종이 어우동을 죽이려고 할 때 영의정 정창손뿐만 아니라 예절을 관장하는 예조의 부장관인 예조참판 김순명도 사형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성종은 어우동의 사형을 강행 이 처사 때문에 성종이 어우동과 은밀한 스캔들이 있었다는 구설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암튼 어우동에게 사형을 내렸을 때 실록에는 어우동 엄마의 발언을 실었다.
“사람이 누군들 성욕이 없겠는가? 다만 내 딸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유난히 심할 뿐인데.”
어떤가? 어우동 엄마나 명종임금보다 고루한 현대인을 대하는 마음이? 암튼 나는 간통죄로 죽임을 당한 숙정옹주에게 위로의 술 한 잔을 올린다.

글·사진 최경순(고양들메길 창립자, 고려공양왕고릉제 제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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