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선유동 · 벽제역 · 이호철 문학의 숲

'고양 속살 도보여행' 참가자들과 여행 안내자 이성한 대표가 벽제역으로 가는 철길 위 터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양신문]  아침저녁으로 초겨울 느낌이 드는 11월, 샛노랗고 빨간 단풍이 아직은 절정을 이루고 있는 가을의 끝에 한양문고에서 진행하는 ‘스토리가 있는 고양의 속살 도보여행’을 함께 했다. 이날은 선유동 불미지마을 입구에서 출발해 폐역이 된 벽제역을 걸었다. 정혜옹주의 묘가 있는 용복원을 거쳐 메조산 숲길과 중국사신길을 지나 이호철 작가 문학의 숲을 돌아보고 안장고개를 넘었다.

나들이를 함께 한 이들은 “고양시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을 만나는 ‘속살’ 도보여행이라 더 특별했다”고 말했다. 이성한 도보여행가(한양문고 테마여행 대표 진행자)의 길안내는 나들이의 의미를 더해줬다.

신선이 놀다 가는 선유동 불미지

이번 걷기 여행의 출발지는 선유동 불미지 마을이다. 선유동은 ‘신선이 놀다 하늘로 올라갈 정도로 아름다운 동네’라는 의미다. 예전 선학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 또한 ‘신선과 두루미가 어울려 노는 동네’라는 뜻으로 그 아름다움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미륵불이 있는 큰 절과 연못이 있어서 불미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주변이 산으로 오목하게 갇혀 있고 마을 앞으로 공릉천이 흐르는 조용한 동네다.

마을을 걷다 보니 길게 이어진 철길이 나온다. 철길을 밟으며 뒤를 돌아보면 북한산 주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벽제 화장장이라 부르는 승화원이 자리하고 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을 따라 말없이 걷다보면 감성과 생각이 깊어진다. 영화 ‘박하사탕’이 떠올라 작은 터널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는다. 철도는 지금은 폐역이 된 벽제역까지 이어진다.

 

선유동에서 시작된 철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면 멀리 북한산 주봉들이 보인다

추억이 깃든 교외선 벽제역

교외선은 서울에 살았던 50대 전후 세대에게는 많은 추억이 있는 기찻길이다. 신촌역에서 일영이나 장흥, 송추로 MT를 떠날 때, 혹은 연인과 함께 교외로 여행을 할 때 이용했기 때문이다. 1961년 개통 당시 고양의 능곡역에서 의정부 가능역까지 총 32km를 운행했다. 이후 수지가 맞지 않아 2004년에 운행이 중단됐다. 현재는 두 세 달에 한 번 비정기적으로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용도로만 사용된다. 덕분에 걷기에는 안전하다.

벽제 간이역사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창고로 쓰이고 있다. 간이역의 정취를 느낄 수 있지만 관리가 안 돼 다소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적절한 활용 방안이나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폐간이역 철로에 앉아 그리스 가수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떠올리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겨본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폐간이역 벽제역의 모습이 쓸쓸함을 자아낸다


‘용의 배’ 처럼 푸근한 용복원

벽제역에서 큰 길을 건너 용복교(용의 배 다리)를 지나 완만한 숲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용의 배’를 뜻하는 용복원이 나온다. 왕과 왕족의 무덤은 용의 머리를 뜻하는 용두동(서오릉)에 있고, 용복원에는 공주나 옹주, 장군이나 큰 벼슬아치의 무덤이 자리한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오목한 곳에 위치해 있어 아늑하다.

이곳에는 청주 한씨의 친족 묘역이 있다. 앞 쪽에 성종의 열 번째 서녀인 정혜옹주의 시아버지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청백리 한윤형’의 신도비가 자리 잡고 있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한기와 합장되어 누워있는 정혜옹주의 묘가 있다. 멀리 북한산의 의상능선과 비봉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산세와 지세, 수세를 반영했던 풍수지리학상 길지임에 틀림없다.

정혜옹주 묘역 건너편으로는 흔히 보기 힘든 계단식의 논(다랑논)이 펼쳐진다. 초록의 벼가 물결치는 봄에 온다면 또 다른 느낌의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으리라.
 

용복원 안에 위치한 한씨 문중 묘역


낙옆 수북한 메조산 숲길과 중국사신길

용복원을 나와 낙엽이 수북이 쌓인 메조산 숲길을 걷다보니 단단하고 매끄러운 까만색 서어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아주 좋다.

메조산을 내려와 이름도 예쁜 휘파람재를 지나 빈정동(손님을 맞이하는 정자가 있는 동네)쪽으로 향한다. 작은 어수정 낚시터를 끼고 한참을 걸어 찻길을 건넌다. 노란 은행잎이 쌓인 민가를 지나니 중국사신길이라는 작은 언덕이 나온다. 둘레길 표시 리본이 군데군데 보이고 글씨가 지워진 작은 표지판이 보일 뿐 인적이 거의 없는 호젓한 길이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중국사신이 다녔던 길' 위에 선 참가자들과 이성한 대표


분단문학 대표작가 이호철 문학의 숲

중국사신길을 내려와 길을 건너니 지난해 타계하신 분단문학 대표 작가 이호철 작가의 집필실이다. 살아생전 주거지는 은평구였지만 이곳에서 쉬면서 글을 쓰시던 공간 내부가 고스란히 보인다. 이곳 숲에서는 매년 초가을에 여러 문인들이 참석하는 ‘단편소설 페스티벌’이 풍성하게 치러지곤 했지만, 지금은 모든 행사가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고양시는 이곳을 ‘이호철 통일문학관’으로 유치하고자 노력했지만 무산됐다. 현재 이 작가의 부인 조민자 여사가 살고 있는 은평구 불광동에 문학관이 지어지고 있다. 은평구는 지난해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도 지정해 1회 행사를 이미 치렀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이 작가는 한국전쟁과 분단을 고스란히 겪었다. 전쟁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강제 징집됐고 인민군 포로로 잡힌다. 부산 군부대에서 염상섭 소설가를 만나 “글에 싹수가 보인다”는 칭찬을 듣고 글을 계속 쓴다. 이후 황순원 작가를 만나 그의 추천으로 1955년에 『탈향』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한다. 남북 간의 이념갈등과 분단체제를 겪고 있던 그는 평소 자신을 “남과 북의 경계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글도 분단을 주제로 한 작품을 계속 썼다. 1961년에 쓴 『판문점』이라는 소설이 대표작이다. “벽과 달리 문은 닫혀있지만 언젠가는 열릴 잠재성이 있다. 언젠가는 남과 북 사이의 문이 열려 통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분단작가 이호철 문학의 숲에 남아 있는 이 작가의 쉼터 겸 집필실

 

이제는 인적이 끊기고 낙엽만 수북이 쌓여 있는 이 작가의 쓸쓸한 숲이 안타까움을 전했다. 앞으로 그의 흔적이 고양시에서 지워질 것이라는 사실도 무척 아쉬웠다. 가을의 끝자락, 영원히 기억에 남을 고양의 속살 걷기 여행도 마무리 됐다.

올 9월에 시작된 ‘스토리가 있는 도시의 속살 골목여행’은 올 12월 첫 주 여행을 마지막으로 종강하고 내년 4월부터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2018년 1월 중순부터는 ‘앉아서 걷는 골목 인문학 여행’을 실내 강좌로 5회 진행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내년 1월 중순에 ‘고양지명설화 해설사 양성과정’ 제2기 강좌도 예정돼 있다.
 

■ 나들이 코스 : 선유동 불미지 입구-벽제역-용복원-메조산 숲길-중국사신길-이호철 작가 문학의 숲-안장고개(총7km, 4시간 소요)

■ 도움말 : 이성한 도보여행가(한양문고 테마여행 대표 진행자)

※ 한양문고 테마여행 문의 : 031-919-6144

 

이호철 문학의 숲 속 모습

 

낙엽이 켜켜이 쌓인 이호철 문학의 숲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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