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철학하는 날들』이라는 이성민의 글을 읽다가, 기분 좋은 전도(顚倒)를 만난다. 그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뒤집어, ‘한 마을을 키우려면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없는 마을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을의 소멸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아이는 마을 생존에 필요조건이다. 마을의 구성원이 아이들을 낳고 전심전력으로 보살펴야할 이유다.

그렇다면 마을이 아니라, 나라라면 어떻겠는가? 온 나라가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청년이다. 청년을 키우려면 온 나라가 필요하다. 청년이 없는 나라를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라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것도 청년이다.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정의의 깃발을 드는 것도 청년이다. 낡아가는 삶의 방식에 새로운 길을 터온 것도 청년이다. 혁명은 항상 청년들의 몫이었다. 청년이 위대해서가 아니다. 그 모두가 청년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기성세대는 청년의 무모함을 의심하고, 게으름을 탄식하고, 건방짐을 손가락질하지만, 청년이기에 무모하게 도전하고, 쓸데없이 거부하고, 건방지게 항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젊음 하나만으로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모험정신이 생겨나고,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개그의 영역이 아니라 청년의 영역이다. 연예인들이 안전지대에서 제비뽑기나 하고, 술래잡기나 하고, 물벼락이나 맞는 것들을 보며 희희낙락하지 말고, 청년들이 위험지역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응원해야한다. 고작 청년수당이나 지불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으로 청년문제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 안정성을 갖게 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청년을 경제동물로 만드는 것 말고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혁명의 시기다. 과거의 혁명이 정권을 창출하는 사건이었다면, 현대의 혁명은 삶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낡은 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만들려면, 제도의 변화도 있어야겠지만 구성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혁명의 시기에는 청년이 나서야 한다. 정치로 말하자면, 노회한 정치가도 필요하지만 패기 있는 청년들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 가진 것을 챙기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가질 것을 따지는 청년 혁명가들이 대거 정치판에 들어가야 한다.

현 정부는 국민의 촛불혁명으로 권력을 잡았다. 이제 현 정부의 책무는 그 촛불을 거대한 횃불로 키우는 것이다. 그것은 당리당략의 문제를 벗어난 것이다. 나라의 향방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적폐를 청산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민주주의의 물결을 만들려면, 각계각층의 청년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젊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도록 청년 정치인을 양성해야 한다.

지방분권이 시대적 요청이라면, 청년집권은 세계적 추세다. 4차 산업혁명을 외치고 AI를 말하는 21세기에 유독 우리나라만 기성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소식으로 매스컴을 더럽히고 있다. 분당과 합당의 정치공학이야 낡은 것들에게 맡기고, 제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자. 오래된 정치적 관행을 낙후시키는 새로운 정치를 상상하자.

청년이여 단결하라. 기성세대가 주는 떡고물에 영혼을 팔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 권리를 찾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좌절이요, 얻을 것은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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