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나는 늙어가고 차는 낡아갑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대표적 성인병에 해당하는 것들을 달고 산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내 차도 처음 구입했을 때에는 너무도 조용해서 시동을 걸었는지를 계기판을 보고 확인했는데, 이제 엔진소리도 크게 들리고, 온갖 중요부품들을 여러 차례 교환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용도 많이 듭니다. 얼마 전에는 차가 자꾸 덜컹거려서 카센터에 갔더니 바퀴 축을 지탱하는 부분이 녹이 슬고 훼손이 많이 돼서 조금만 늦었더라도 큰 일날뻔 했다길래 당장 교체를 부탁했습니다. 교체 후 해체된 낡은 부품을 보며 마치 내 다리의 아픈 관절을 보는 것 같더군요. 너도 참 고생이 많았다. 기분 같아서도 쪼그리고 앉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러더니 며칠 지나 브레이크가 예전보다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각 차마다 이격이 차이가 나지만, 나는 내 차를 20년 넘게 몰았으니 내 몸과 내 차는 거의 동기화되어 있는 셈입니다. 브레이크 페달도 닳아서 기능이 저하된 것이 분명합니다. 빨리 다시 카센터로 가야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브레이크 고장은 정말 치명적이니까요.

사실 자동차의 핵심적 기능은 가고 서는 겁니다. 가속페달과 감속페달이 그 기능을 하지요. 방향을 정하는 것은 핸들이지만, 그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가속페달과 감속페달입니다. 자동차를 몰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속도를 줄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면 위험해서 탈 수가 없으니까요. 

잦은 자동차 고장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비용이 들었습니다만, 얻은 게 없지만은 않습니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는데요. 특히 이번 고장으로 운전과 인생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새차를 샀을 때는 기분내느라 고속도로를 맘껏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거침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스피드를 만끽했었지요. 마치 젊은 시절 멋모르고 질주했던 나날처럼 말입니다. 그러다가 운전경력도 늘고 크고 작은 사고도 겪으면서 속도를 줄여 안전운전을 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내 차만 보였는데, 이제는 남의 차의 상태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방어운전도 배웁니다. 안전운전 방어운전의 핵심이 브레이크의 사용입니다. 미리미리 속도를 줄이는 운전법을 배워야 합니다. 급발진만큼이나 급제동도 위험합니다.

이제 나이 환갑이 다 되어가니 좀 더 브레이크를 많이 쓰게 됩니다. 과욕을 부리거나 무리하게 일하지 않게 됩니다. 조금 덜 벌고 조금 덜 쓰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불필요한 일정을 줄이고, 너무 많은 만남은 자제합니다.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넙죽넙죽 받지 않습니다. 마음은 따르겠지만 몸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 아니어도 얼마든지 많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굳이 내가 해야한다면 부득이할 경우에만 하자고 다짐합니다. 내 삶의 가속을 멈추고 감속을 시전합니다.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 가다가 편안하게 멈추고 싶습니다.

아마 지역 공동체 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무한성장의 환상에 사로잡혀 무한속도로 달리려 했던 환상특급열차에서 내릴 때입니다. 환경지표나 경제지표나 노동지표는 전세계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계가 추락하고 있는 중입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에는 고도를 서서히 낮추면서 속도도 서서히 낮추어야 합니다.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가속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감속의 시대입니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공동체든 브레이크를 점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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