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슬기로운 고양생활(3)
용적률 높여도 건축비 조달 어려워
분담금 때문에 입주 포기도 속출
재건축보다 '리노베이션'이 뉴노멀
[고양신문]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린 시절 모래집을 지으며 불렀던 전래동요다. 그랬다. 헌집을 주면 새집을 공짜로 줬던 시절이 있었다. 아파트 재개발 이야기다. 이제 그런 시절은 끝났다.
1기 신도시인 일산 지역도 최근 재개발이 화두다. 선도지구에 우선 선정되기 위한 아파트 단지 간 경쟁도 치열했다. 그 열기에 비해 진척은 더디다. 핵심 이유는 사업성이다. 용적률을 높여줘서 더 높게 지어 더 많은 가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지만, 더 지은 가구를 분양해도 건축비 전체를 조달하기 어려워진 때문이다.
헌집을 주면 새집을 주는 재개발 신화의 출발지는 강남 아파트다. 과거에는 새로 짓기만 하면 더 지은 가구가 고가로 분양되면서, 건축비를 조달하고도 남았던 곳이다. 그곳에서도 요즘은 재개발 아파트의 건축비 추가 분담금이 논란이다. 건축자재 비용 증가로 건축비가 급등한 것이 원인이다.
그 결과, 이제는 수억원에 달하는 건축비 분담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내가 살던 평수를 겨우 확보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뿐이 아니다. 재건축으로 아파트 가격도 급등한 때문에, 건축비 분담금 이외에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부담금을 별도로 수억원 내야 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입주를 포기하는 이들도 증가세다. 기존 아파트 이외에는 가진 현금이 별로 없어서 추가 분담금을 낼 수 없는 입주민들이다. 입주를 하려면 수억원의 대출을 새롭게 받아야 하는데, 그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는 은퇴자들이 특히 더 그런 것으로 알려진다.
그 중심에 모아타운 프로젝트가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주택정책이다. 1층에 상가가 있는 이른바 꼬마빌딩과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지역을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니 지역주민이 반색할 것 같지만, 의외로 반대가 심하다.
가장 큰 이유는 전월세 수입으로 생활하던 집 주인들이 그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가 하나 생기긴 하겠지만, 전월세를 받을 수 있는 추가 소형 아파트나 상가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 더 나아가 빚 없던 집 주인마저 대출을 받아야 할 처지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2024년 3월 6일 ‘강남3구 및 서울시 모아타운 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시청 인근에서 모아타운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어느 지역에서 참가했을까? 강남구 개포2동, 역삼2동, 일원동, 서초구 반포 1동, 방배동, 송파구 삼전동, 마포구 합정동, 광진구 자양 4동, 강동구 둔촌2동, 중랑구 면목5동 등이다. 놀랍게도 강남 3구 지역주민의 반발이 심했다.
찬성론자들과 시행사 그리고 건설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업성이 충분하다. 아파트 가격은 앞으로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를 아파트 가격으로 분담금이나 부담금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들도 추가 분담금이나 부담금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을 부인하진 않는다. 두꺼비들도 헌집 받고 새집을 공짜로 준다고 약속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단독주택의 경우에는 재건축할 경우에 건축비를 개인이 100% 부담한다. 그런 점에서 공동주택 곧 아파트 주민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혜택을 본 셈인데, 이제 이것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추세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아파트는 분양 초기에 가장 비싸다. 이후에는 자동차처럼 감가상각이 적용되면서 하락한다. 우리도 이런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아직도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헌집을 주면 새집을 주던 시절의 향수 때문이다.
일산과 같은 1기 신도시인 분당에서도 요즘 통합 재건축을 둘러싼 찬반론이 뜨겁다. 일산보다는 사업성이 훨씬 뛰어난 지역인지라 일산 주민들로서는 의아할 일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곳의 쟁점은 건축비 추가 분담금이 아니다. 새로 받게 될 아파트 위치가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나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은 역세권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재건축 후에 새로 받을 아파트는 역세권을 벗어난 곳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당신이라면 참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보고, 선도지구 아파트 주민 중에도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가구가 적지 않다고 한다.
얼마 전 분당에 사는 처조카가 아파트 리노베이션 공사를 했다고 초대해서 집들이를 간 적이 있다. 분당에서 선도지구로 지정됐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까지 보유했던 아파트 단지와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 아파트다. 가서 보니 고급 새 아파트 뺨칠 정도였다. 앞으로는 이것이 뉴노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재건축 신화가 깨지는 것을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규정했다. 과거가 비정상이었던 이유는 30년밖에 안 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것이 엄청난 낭비이기 때문이다. 지구촌 어느 나라에서도 30년 된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겠다고 들진 않는다. 오히려 유럽과 북미 선진국에서는 100년 넘은 아파트와 주택이 수두룩하다.
콘크리트의 수명을 보통 50년에서 100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길게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과거 60~70년대에는 공동 주택이건 단독 주택이건 날림 공사가 많았던 탓에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주택의 경우에는 내구성이 훨씬 더 길다고 봐야 한다.
최근 선도지구로 선정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에게 물어봤다. “정말 허물고 새로 지워야 될 정도냐?” 답은 이랬다. “아뇨, 멀쩡합니다.” 일산의 선도지구 아파트 주민도 선정 직후에는 환호했지만, 지금은 걱정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나마 재건축 호재가 남아있을 때 빨리 팔고 나가야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그분들을 포함한 아파트 거주 고양시민에게 당부드리고 싶다. 재개발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 그래도 재개발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다면, 앞으로는 건축비를 온전하게 부담할 각오를 해야 한다. 당장 낡은 집에 살기가 불편하다면, 리노베이션을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고양시 차원에서도 실행이 불투명한 재개발에 대한 희망고문을 하기보다는 구축 아파트의 수명을 어떻게 연장할 것이며 리노베이션에 대해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고민하길 권한다. 일산 버전의 구축 아파트 맞춤형 도시재생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