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예술한자(2)
-丿(삐침 별), 乙(새 을), 亅(갈고리 궐)에 관한 명상
점 하나로 마무리되기엔 세계는 너무 광활
지(之)는 앞으로 나아갈 때 출발점
사람(人)과 삶(生) 사이의 발걸음 연결해줘
사물(事物)은 일과 물건이 함께 있는 세계
서로 관계 맺지 않는 사물은 없어
을(乙)은 을일뿐, 갑과 일방관계 아니다
[고양신문] 무궁한 세상의 궁금이 감추지 않아도 저절로 감춰지는 건 사람의 心象(심상) 때문일 것이다. 만약 진리라는 게 바깥에 있다면, 그것은 抽象(추상)과 具體(구체)의 형식을 통해 현기증처럼 잠깐 나타나는 것. 한자는 저 둘을 퍽 재치있고 실감나게 잘 그리는 문자다. 플라스틱처럼 고정된 세계란 어디에도 없다. 멀리 바다부터 출렁출렁 흔들리며 대지와 산을 쉼 없이 부추기지 않는가. 거기에 율동을 맞추며 노 젓듯 팔 저며 어디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게 또한 인간의 운명이다.
지구의 표면적은 넓을수록 이야기는 풍부해진다. 海拔(해발)을 기준으로 삼는 육중한 산. 세상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다 여기로부터 나온다. 세상에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세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뿐. 수평(一)과 수직(丨) 그리고 거기에 점(丶) 하나 찍는 것으로 마무리되기에 세계는 너무 광활하다. 일견 안정과 평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비 뿌리듯 확실한 빗금(丿) 하나 긋는 것으로 부수의 세계는 더 나아간다. 1획의 나머지 부수를 살펴본다.
4. 丿(삐침 별) : 이 심심한 세계에 균열을 내고 변화를 시작하는 글자. 그 자체로 뜻은 없고 그저 부수로만 기능한다. 이때 삐침이란 토라진다는 게 아니라 옆으로 휙, 미끄러지는 것이다. 나무들 비탈에 서는 것처럼 골짜기의 기울기는 계곡을 깊게 만들며, 그 지면의 표면적을 넓히며, 산꼭대기를 높이 받든다. 결국 이 삐침은 변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부수에서 짚어야 할 한자는 乃(내), 久(구), 乘(승), 之(지), 乎(호) 등이다.
*乃(이에 내). 물건이 구불구불구부러져 있는 모양이다. ‘또는, 혹은’이란 뜻. 人乃天(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다)은 동학의 핵심 사상이다. 사람(人)=하늘(天)이니, 여기서 乃를 수학 기호인 이퀄(equal)이라 하면 어떨까. 고등학교 때 수학 공부는 결국 이퀄, 이퀄, 이퀄로 연결되어서 미지수 x를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젓가락 두 짝을 나란히 걸쳐놓은 듯한 저 평등의 기호가 결국 인류 문명의 숨은 지렛대였던 것. 乃는 우아한 비의 밧줄처럼 지상과 하늘을 보기좋게 연결하면서 저 경건한 사상을 우리에게도 전달하는 고마운 한자가 아닐 수 없겠다.
*久(오랠 구). 허리 굽은 노인의 등에 여기요라고 가리키는 표시를 한 모양. 오래됨이란 시간이 경과하여도 변하지 않음을 뜻한다. 한결같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은 326글자, 93단어로 이루어진 한 문장이다.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에서의 저 첫 단어. 유구란 아득히(悠) 오래(久)되었다는 뜻. 오랠 久. 그 자형을 보면 한 방향으로만 삐친 게 아니다. 삐치되 넘어지지 않도록 좌우로 균형을 맞추며 오래도록 시간을 축적된 노인의 지혜로 세상의 변화를 운영해 나간다.
*乘(탈 승). 사람이 두 발로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 이 글자에서 나무 木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나무 위에 날렵하게 새 한 마리 앉아 있고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술래를 피해 두 사람이 등 돌리고 숨어 있는 형국이다. 불교의 대승(大乘), 소승(小乘)은 수레를 뜻한다. 몸 받아 살아가는 이승에서의 삶을 수레를 타고 건너가는 것으로 파악한 것임을 저 단어는 담고 있다. 수학에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계산의 기본이다. 한자로는 加減乘除. <더할 가, 뺄 감, 곱할 승, 나눌 제>. 여기서 수를 가장 크게 만드는 것, 곱하기가 승(乘)임을 기억하자.
*之(갈 지). 기본 중의 기본인 글자다. 한문에서 之가 없다면 많은 문장들이 성립하지 않는다. 발을 나타내는 止(그칠 지) 밑에 가로선 一(하나)이 그어져 있는 모습. 漁夫之利(어부지리. 어부의 이익)의 경우처럼, 영어로 하자면 소유격 of에 해당한다. 한편 갈 之는 동사로 ‘가다’는 뜻이다. 간다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 동작의 하나이다. 논어의 한 대목, “人之生也直(인지생야직. 사람의 생은 정직해야 한다)”. 노자의 한 대목. “人之生 動之死地(인지생 동지사지. 사람의 생은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여기서 인지생을 인생이라고 축약해도 무방하다. 요즘 너무나 흔하게 사용해서 때가 많이 묻은 단어, 人生(인생). 하지만 예전에는 저처럼 人之生(인지생)이라 하였다. 人과 生, 그 사이에 부단히 오고간 발걸음처럼 之를 두어 굽이굽이 고개와 골목으로 둘을 연결시켜 주는구나.
5. 乙(새 을) : 새라고 훈을 달지만 주로 제비를 뜻하고, 공중을 나는 새(bird)의 의미는 鳥(새 조)에게 넘겼다. 이 한자는 甲乙丙丁戊己庚申壬癸(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천간 중에서 두 번째이다. 첫째를 甲(갑)으로 하고 그다음을 乙(을)로 표현하는 것. 천하가 공평하다지만 갑의 기운이 워낙 세니, 상대적으로 을은 당하는 쪽을 담당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몰리면 그 반동이 일어나는 게 또한 陰陽(음양)의 이치다. 이제 갑을 관계는 예전의 그 갑과 을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갑은 갑이고, 을은 을일 뿐. 계약서상의 갑과 을도 기역과 니은, A와 B로 표기한다. 말의 값이 사라진, 공평하고 대등한 위치를 표시하는 것으로 점점 대체되어 간다. 이 부수의 식구들은 九(구), 乾(건), 亂(란), 也(야).
*九(아홉 구)는 이렇게 설명하는 게 상책이다. 여덟에 하나를 더한 수. 이로써 한자리 수에서는 가장 큰 수라서 수효의 끝인 極數(극수)이기도 하다. 이러니 九란 궁극으로 연결되는 수이다. 아마 한끗 차이의 8은 9한테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리라. 九는 팔을 안으로 구부려 당기는 모양을 본뜬 글자. 그러니 어쩌면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할 궁극이란 저 멀리에 있는 게 아니라 옆구리 근처, 내 품 안에 구원처럼 있다는 뜻도 九는 가지고 있는 것.
*乾(하늘/마를 건). 태양이 깃발처럼 높이 솟아오르는 모양. 과연 좌측에 日(날/태양 일)을 장대에 꿰었다. 乾坤一擲(건곤일척)이란 모든 것을 걸고 승패를 겨루는 것. 건은 하늘, 곤은 땅이다. 하늘에서 태어나 땅을 딛고 사는 이라면 저만한 각오로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중! 운명을 알고, 운명을 걸고, 운명을 바꾸려는 자들의 기본 태도가 저 네 글자에 있다. 한편 乾은 乾燥(건조), 乾杯(건배)처럼 마르다는 뜻도 갖는다.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란 말도 있지만 가만 관찰해 보라. 하늘은 축축한 법이 없다. 비도 하늘이 마르기에 올 수 있다. 비 긋고 난 후, 후련한 하늘을 보라. 그 얼마나 푸르고 짱짱한가.
*亂(어지러울/다스릴 란). 복잡하게 꼬이고 꿰인 실타래를 손으로 잡아당기는 모양. 무척 어렵고도 재미난 한자다. 한자는 같은 글자가 전혀 상반되는 뜻을 갖기도 한다. 어지럽다와 그 어지러움을 진압하고 다스린다는 뜻이 한 글자에 도사리고 있는 것. 어렵고 난해한 시절일수록 길은 바로 자신의 발바닥 아래에 있음을 저 한자한테 배운다.
*也(잇기/어조사 야). 문장의 맨 뒤에 붙어 <~이다, ~구나, ~느냐?>라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也가 없다면 글은 그 마무리가 불가하다. 한문 학습 입문서의 대표격인 <천자문>. 천(千)으로 시작해서 야(也) 끝나니 천 개로 이루어진 한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까다롭고 어려운 한자도 많지만 그 첫 대목이 웅장하고 호쾌한 천자문. 天地玄黃 宇宙洪荒(천지현황 우주홍황. 하늘은 검고 대지는 누렇다. 우주는 넓고 우주는 거칠다). 천자문은 ‘잇기 也’로 끝난다. 잇기는 그야말로 글을 이어준다는 의미. 무엇과 또 이어진다는 것일까. 혹 <논어>의 첫 글자인 學(배울 학)으로 더욱 나아가자는 장치는 아닐까.
6. 亅(갈고리 궐): 일획으로 세상의 얼개를 마무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웠는가. 수직의 갈고리로 한번 더 명토박는다. 미늘처럼 그 끝도 다시 꼬부려 세상의 지혜를 낚아 올리려는 것. 이 부수에 속하는 세 글자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볼까. “나(予)는 일(事)로 마친다(了).”
*了(마칠/깨달을 료). 늘어진 것을 짧게 들어올리는 모양을 본뜬 글자. 설문해자에서는 이를 두고 아이(子)가 팔이 없는 모양의 상형이라고 해석한다는데 좀 기이하다. 다만 魅了(매료), 完了(완료), 了解(요해)의 경우처럼 마치고 나면 훤히 안다는 것을 말한다. 안개 걷히고 비로소 사물을 알아차리듯. 면벽 수행 끝에 廓徹大悟(확철대오)하듯.
*予(나/줄 여). 일인칭 나의 한자는 吾(오), 我(아), 余(여), 予(여)가 있다. 吾는 주로 주격, 我는 목적격으로 사용한다. 予는 予曰(여왈, 내가 말하기를)처럼 상투적으로 드물게 쓰인다. 아무튼 이 글자에 ‘나’와 ‘주다’가 함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나’란 존재는 ‘받는다’보다 ‘주다’에 더 어울린다는 것 아닌가.
*事(일 사). 점쟁이가 점을 칠 때 쓰는 대막대기를 통속에 넣고 세워서 손을 들고 있는 모양. 옛날의 점쟁이는 국가의 중대사, 개인의 길흉도 모두 주관했다. 事를 보면 가지런한 문서, 켜켜이 쌓인 층을 갈고리로 일이관지하게 꿰뚫는 힘이 느껴진다. 일이란 이렇게 하는 법이라며 시범이라도 보이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게 事라는 형식을 통해 일어나지 않는가. 많은 단어 중 事物(사물)은 꼭 한번 짚어야 한다. 보통 사물이라 하면 물건, 물체 등을 뜻한다. 하지만 사물은 글자에서 보듯 유형무형의 모든 ‘일과 물건’을 뜻한다. 통상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물건들의 집합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관찰하면, 저 풍경에는 물건은 물론 그 물체가 시간 속에서 벌이는 사건들도 함께 들어 있다. 서로 관계 맺지 않는 사물이란 어디에도 없고 한순간도 없다. 가만히 제자리에서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얼마나 큰 사태인가. 그런 어마어마한 세계를 시시각각 斷乎(단호)#하게 지휘하고 연출하는 사물!
#斷乎(단호)란 결심이나 태도, 입장 따위가 과단성 있고 엄격하다는 뜻이다. 乎(호)는 의문문을 나타내는 어조사. 이 한자는 삐침 별(丿)부에 속한다. 이 한자의 단어로서는 ‘단호’가 거의 유일하다. 단칼에 끊을 듯 저 통쾌한 맛을 살려 여기 마지막에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