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취임 100일 백서 정밀 분석 
1조 순환경제 누락·관료 논리에 발목 
 복지·여성·노동·문화 구체성 크게 미흡 
행정 편의 넘어 상시 공론장 구축해야

‘민선9기 취임 100일 고양시장 인수위 백서 분석 토론회’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선9기 취임 100일 고양시장 인수위 백서 분석 토론회’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신문] 민경선 고양시장이 선거 당시 시민사회와 맺은 정책 협약과 다수의 공약이 구체적 실행 계획과 예산 없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거나 관료들의 논리에 막혀 축소·변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민선9기 시장 취임 100일을 맞아 시민사회가 향후 4년간 시정의 나침반이 될 인수위원회(고양대전환준비위원회) 백서를 정밀 검증한 데 따른 것이다.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와 고양시민예산정책연구네트워크는 지난 12일 주엽1동 행정복지센터 대회의실에서 ‘민선9기 취임 100일 고양시장 인수위 백서 분석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 4월 시민사회 연대기구인 ‘고양빛의연대’가 민경선 당시 후보와 체결한 10대 분야 40개 정책 협약 과제와 주요 공약의 백서 반영 여부를 경제, 복지, 여성, 노동, 문화, 환경 등 분야별로 대조·평가하기 위해 마련됐다.

총괄 비교분석을 맡은 김철기 고양시민회 사무총장(전 고양빛의연대 집행위원장)은 “청년과 경제 분야는 표면적으로 반영된 과제가 많으나, 여성과 노동 분야는 사실상 공약이 실종된 수준”이라며 “반영된 과제들 역시 텍스트 위주의 나열에 그쳐 실제 행정 집행 과정에서의 이행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연 1조 지역순환경제’ 공약 증발 “전임 시정 답습 수준”
이날 가장 강한 비판이 쏟아진 영역은 민 시장이 선거 기간 내내 제1의 기치로 내세웠던 지역경제와 일자리 분야였다.

김범수 고양시민회 정책위원장은 민 시장의 핵심 공약이었던 ‘연 1조원 규모의 지역순환경제 체제 구축’이 백서 공약 단위에서 통째로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당초 이 공약은 △지역화폐 연 매출 5000억원 △공공구매 2000억원 △관내 기업 1000억원 투자 △대규모 공사 지역건설업 참여 2000억원 등 4대 축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백서를 분석한 결과, 지역화폐 발행은 재정 어려움을 이유로 2027년 250억원에서 2030년 400억원으로 늘리는 단계적 추진으로 후퇴했다. 공공기관 물품 구매는 목표치가 ‘매출액 2000억원’에서 전체 발주액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수의계약률 80% 달성’으로 축소 변형됐다. 관내 기업 1000억원 투자 역시 별도의 재원 마련 계획 없이 민선8기 이동환 시장 시기의 ‘제1금융권 이차보전 및 특례보증 사업 지속’이라는 한 줄짜리 실행 계획으로 대체됐다.

특히 대규모 공사에 지역 건설기업 참여를 지원하는 공약의 경우, 백서에 “민간 및 LH 공사에 조례상 권장 비율을 강제할 법적 규정이 없다(위헌 소지 및 상위법 위반 우려)”는 담당 공무원들의 부정적 인식이 그대로 담겼다. 김 위원장은 “전국 수많은 지자체가 시행 중인 조례를 위법이라 규정하며 공약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논리에 백서가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이는 공약 누락을 넘어선 공약 반대 백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송영주 고양시민예산정책연구네트워크 공동대표 역시 백서가 외부 자본 유입 중심의 ‘지역경제 활성화’와 역내 자본 유출을 막는 ‘지역순환경제’ 개념을 혼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대표는 “시중은행을 통한 이차보전 방식은 결국 예대마진 이익이 서울 본사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며 “실질적인 순환경제를 구축하려면 고양 공공은행 설립과 지역재투자 조례 제정 등 자금이 지역 내에 머무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조만간 공시될 민선9기 일자리 종합계획 수립에 앞서 노동계, 기업,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거칠 것을 주문했다.

‘통합돌봄국’ 신설 무산, 장애인복지관 전환도 후퇴 조짐
사회복지와 통합돌봄 분야에서는 조직 개편의 후퇴와 실행 계획의 부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김신실 고양시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은 5급 상당으로 제안했던 사회복지정책보좌관이 6급 상당으로 하향 조정돼 부서 간 정책 조정력에 한계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또한 백서에 ‘유지’로 반영된 덕양구 장애인복지드림센터의 장애인종합복지관 전환 공약이 실제 행정 추진 과정에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현장 증언도 나왔다.

이날 플로어 발언에 참여한 덕양행신장애인주간보호센터 관계자는 “백서에는 층별 기능을 재배치해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전환한다고 명시됐으나, 최근 시 내부에서 4층부터 6층까지 기업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변경 계획안이 거론되고 있다”며 “기업 유치가 확정되면 종합복지관으로서의 고유 기능은 사라지는 만큼 시의 명확한 해명과 절차적 점검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사회복지종사자 처우개선위원회 위상 강화와 WHO 고령친화도시 가입 기반 마련 등은 실행 계획이 마련되지 않아 사실상 ‘공약 누락’으로 분류됐다.

민선9기 핵심 복지 과제인 ‘통합돌봄’ 역시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최윤이 아주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백서에는 통합돌봄국과 의료돌봄팀 신설, 돌봄마을센터 운영, 전문 코디네이터 양성 등 구체적인 조직 구상이 담겼으나, 기존 복지시설의 역할 분담이나 사회복지사 증원 명세, 총사업비 75억8400만원에 대한 세부 산출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백서 발간 직후 시의회에 상정된 고양시 조직개편안에서는 당초 약속한 ‘통합돌봄국’ 신설이 빠지고 기존 복지국 산하에 ‘통합돌봄과’를 두는 것으로 축소된 사실이 확인돼, 백서의 청사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뒤집혔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공약 0.79%, 노동은 ‘인사관리’ 전락
여성, 노동, 문화, 환경 분야에서도 시민사회의 눈높이와 백서 내용 간의 괴리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함윤희 주엽커뮤니티센터장(전 고양YWCA 사무총장)은 “백서에 담긴 126개 공약 중 여성·성평등을 핵심 목적으로 한 독립 공약은 ‘젠더폭력 안전망 구축’ 단 1건(0.79%)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함 센터장은 “고양시의 안전 분야 성평등 점수는 경기도 평균에 크게 못 미치고, 가정폭력·스토킹 상담이 반기마다 수천 건에 달하지만 피해자 보호는 여전히 다인실 수용 시설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개별 보호주거 학보와 함께 민선8기 때 중단·삭감된 여성커뮤니티센터와 여성영화제 복원을 위한 구체적 예산 편성을 촉구했다.

전민선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고양지회 부지회장은 500쪽 분량의 백서에서 ‘노동’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가 협약한 △노동정책과 신설 및 노동부시장 임명 △공공부문 임금체불 제로 및 공무직 차별 철폐 △안전 없는 기업 인허가 퇴출 등 3대 핵심 과제가 대부분 빠지거나 변질됐다는 것이다. 전 부지회장은 “노동정책이 일자리정책과의 하위 업무로 편제돼 있고, 공무직 차별 철폐 요구는 ‘인력관리 체계 고도화’라는 인사·관리의 언어로 축소됐다”며 “지난 4년간 개점휴업 상태였던 노사민정위원회를 즉각 실질화해 시 단위의 사회적 교섭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 분야를 분석한 최용석 문화콘텐츠연구소장은 고양시 내 예술활동증명 완료 예술인이 7510명(10월 기준)으로 전국 기초지자체 중 압도적 1위임에도, 이들의 생계와 창작 안전망을 뒷받침할 ‘고양시 예술인지원센터 설립’과 ‘고양문학관 건립’이 백서에서 아예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동 단위 생활문화 플랫폼 구축 제안 역시 예술인 거점 확보가 아닌 단순 주민자치센터 공간 개방으로 방향이 틀어졌다고 짚었다.

환경 분야를 발표한 최태봉 고양시민회 정책위원은 태양광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햇빛연금 도입’ 공약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유휴부지 확보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연도별 로드맵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15년 지역의 해묵은 갈등 현안인 ‘산황산 골프장 재검토 및 치유의 숲 조성’이 즉시 추진 과제로 명시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 위원은 “최근 골프장 사업자가 부지 확보 실패로 사업 구역에서 1000~4000평을 제척하겠다고 신청한 것은 중대한 계획 변경”이라며 “시는 이를 면밀히 심사해 즉각적인 행정 조치를 취함으로써 공약 이행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플로어 토론에 나선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전 집행위원장은 “고양시가 백석동 열병합발전소 현대화, 창릉신도시 화력발전소 건립, 설문동 그레이수소 클러스터 추진 등으로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공영주차장 태양광 의무화 법안에 따른 시의 목표치도 턱없이 부족한 만큼 행정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이 최종 정리한 백서의 한계, 주민 공론장으로 견인해야”
발제 이후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시민사회의 정책 제안이 백서 작성 과정에서 왜곡·누락되는 구조적 원인과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인수위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영아 전 고양신문 대표는 선거와 인수위 과정의 한계를 짚었다. 이 전 대표는 “후보 확정 직후 선거공보물이 급조돼 넘어가고, 그 이후에야 시민사회의 정책 제안이 쏟아지다 보니 시민사회의 요구가 본 공약이 아닌 ‘추가 제안’으로 밀려나게 된다”며 “더구나 인수위 논의가 끝난 뒤 백서를 최종 정리하는 주체가 시청 공무원(인수위 지원단)이다 보니, 결국 행정의 입맛과 논리에 맞게 공약이 반영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털어놨다.

이 대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책 제안 시점을 본선이 아닌 당내 경선 이전으로 앞당길 것 △목표·예산·실행 방안을 구체화해 후보에게 제시할 것 △선거 이후 단체장이 관료 조직에 포획되지 않도록 시민사회가 상시적인 정책 공론장을 열어 시정을 견인할 것을 제안했다.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오건호 전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또한 “백서 381쪽을 보면 본 공약 126개 외에도 주요 과제 119개, 추가 제안 69개 등 총 363개 과제가 ‘시정 연계 대상 과제’로 명시돼 있다”며 “백서에 남겨둔 이 근거들을 바탕으로 시민사회가 분야별 간담회와 자료 요구를 지속하며 행정을 압박하고 견인할 수 있는 참여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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