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교수, 경기북부 지역경제 위기 진단
고양시 취업자 절반 관외 통근…소득·소비 유출
대기업 유치보다 지역 내 가치 귀속이 핵심
공공조달·지역금융 통제할 실효적 권한 필요
[고양신문] 인구 107만 특례시인 고양시가 만성적인 재정자립도 저하와 이른바 ‘베드타운’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그동안 지역 정치권과 행정은 외부 대기업 유치와 광역교통망 확충을 유일한 해법처럼 제시해 왔다. 하지만 지역 안에서 창출된 소득과 소비, 금융 자산을 지역 스스로 통제하고 순환시키는 ‘경제적 자기결정권’ 없이는 어떠한 외형적 성장도 지역경제의 빈곤화를 막을 수 없다는 실증적 진단이 나왔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 회장·지역순환경제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지난 9일 의정부시민사회연대회의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지역은 왜 가난해지는가? : 경제적 누수,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그리고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강연에는 고양시를 비롯한 의정부·양주·포천·연천 등 경기북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참석해 수도권 내 주변부로 전락한 지역의 구조적 한계와 대안을 모색했다.
고양시는 ‘노동력 재생산-외부취업형’, 통근이 부르는 가치 유출 심각
양준호 교수는 경기북부를 하나의 동질적인 낙후 지역으로 묶는 통념에서 벗어나, 서울과 결합하는 공간적 분업 방식에 따라 △노동력 재생산-외부취업형(고양·의정부) △생산거점형(포천) △사회적 재생산 외부의존형(양주·연천) △혼합·전환형(파주)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고양시와 의정부시는 가장 전형적인 ‘노동력 재생산-외부취업형’ 도시로 지목됐다. ‘2025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 통계에 따르면 고양시와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취업자의 절반 안팎이 시 경계 밖, 주로 서울로 통근하고 있다.
양 교수는 “통근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지역에서 재생산된 노동력이 매일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고양시의 가구와 지역 공동체가 주거·돌봄·교육·생활비용과 무급 가사노동을 부담하며 노동력을 키워내지만, 정작 그 노동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와 점심 식사·커피 한잔 같은 일상적 소비 시드(Seed)는 모두 서울로 빠져나간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시민들의 ‘사회적 재생산 위기’로 직결된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평균 통근 시간은 하루 82.0분에 달하며, 연 소득 대비 수도권 주택가격 비율(PIR)은 8.7배를 기록하고 있다. 시민들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지를 선택하는 대가로 수면 시간과 가족 돌봄, 자기계발 시간을 통근 길에 맞바꾸고 있는 셈이다.
특히 양 교수는 지역 내 의료·돌봄·교통 등 공공 인프라가 취약할수록 계층 간 ‘공간선택권의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짚었다. 자가용과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구는 서울의 대형 병원과 민간 서비스를 이용하며 지역의 결핍을 우회할 수 있지만, 이동이 어렵고 결근이 불가능한 취약계층에게 장거리 이동은 소득 손실과 돌봄 공백이라는 치명적 비용이 된다. 여유 있는 계층이 외부로 빠져나갈수록 지역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정치적 요구와 이용 기반이 약화돼 도시 전체가 쇠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분석이다.
기업 유치 만능론의 함정, 핵심은 ‘생산의 지휘와 귀속’
이날 강연에서는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지자체의 ‘기업·공장·대형 쇼핑몰 유치 만능론’에 대한 뼈아픈 비판도 제기됐다. 지역에서 생산과 경제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그 성과가 지역에 귀속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약 80%에서 지역 내 창출 가치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순유출’이 발생하고 있으며, 순유출 상위 지역의 경우 지역내총생산(GRDP) 대비 유출 규모가 70~80%에 육박한다. 대기업 분공장이 밀집해 전국 최상위권 GRDP를 기록하는 충청남도조차 창출된 부가가치의 85%(2024년 기준 약 35조원)가 본사가 위치한 서울로 빠져나가고 있다. 대표적 산업도시인 울산 역시 2019년 현대중공업 지주사 본사가 서울·판교로 이전한 이후 당기순이익이 역외로 유출되며 지역경제가 급격한 침체를 겪고 있다.
양 교수는 이를 ‘공간적 타율성(Spatial Heteronom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생산과 환경 과부하, 교통 체증 같은 비용은 지역이 떠안지만, 이윤을 전유하고 투자·철수·미래 전략을 결정하는 지휘권은 서울의 대자본 본사와 금융기관에 독점돼 있다는 것이다.
고양시 역시 자족시설 확충을 명분으로 외부 대기업이나 대형 유통자본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지역 내 재투자와 가치 귀속을 강제할 장치가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코스트코나 대형 복합쇼핑몰이 입점해 막대한 매출을 올려도 지역사회에는 주말마다 반복되는 교통 대란과 골목상권 위축이라는 사회적 비용만 남고, 수익은 고스란히 서울 본사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와 같다.
양 교수는 “지역소멸과 쇠퇴의 반대말은 인구 증가나 기업 유치가 아니라 지역의 ‘자기결정’”이라며 “이제 지역 발전을 바라보는 질문도 ‘얼마나 성장했는가’에서 ‘누가 우리 지역 시민들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가’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기-막기-돌리기-조정하기’ 고양시가 시작해야 할 실천 과제
그렇다면 서울 종속적인 경제 누수를 멈추고 지역 안에서 부가 순환하게 만들 해법은 무엇일까. 양 교수는 단순한 행정적 지방분권이나 형식적인 시민 참여를 넘어, 지역 주민과 노동자, 생산자, 시민사회가 지역의 경제·재생산 조건을 직접 통제하고 기획하는 실효적 권능인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RED)’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회로로는 지역순환경제의 4단계 실천 모델인 ‘보기-막기-돌리기-조정하기’와 5대 핵심 의제가 제시됐다.
첫째는 어디서 얼마만큼의 가치가 새어 나가는지 측정하는 ‘보기 운동’이다.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협력해 GRDP 대비 실제 지역민에게 귀속되는 지역내총소득(GRNI)의 괴리를 분석하고, 신용카드 및 지역화폐(고양페이 등) 가맹점 데이터를 활용해 의료·교육·문화 분야의 역외소비율을 산출해야 한다. 양 교수는 “코나아이 등 민간 운영사가 독점하고 있는 지역화폐 소비 데이터는 사적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과 지자체의 공공 자산”이라며 “데이터 소유권을 되찾아 역외 유출 실태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부터 지역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지역금융 가시성 확보’와 재투자 통제다. 양 교수에 따르면 현재 전국 광역경제권 가운데 한국은행의 지역별 예금·대출 및 재투자 통계가 구축되지 않은 곳은 경기북부가 유일하다. 시중 제1금융권 은행들이 지역 주민의 예금과 시 금고 자금으로 막대한 예대마진을 챙기면서도 정작 지역 내 재투자에는 인색한 현실을 바꾸려면, 먼저 금융 흐름을 지표화하고 조례 제정을 통해 지역 재투자를 의무화해야 한다. 미국이 1977년 ‘지역재투자법(CRA)’을 제정해 상업은행의 지역 재투자 실적을 시민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밑으로부터 금융자본을 통제한 사례가 대표적 모델로 꼽혔다.
셋째는 ‘앵커기관(Anchor Institution) 공공조달의 지역화’다. 현재 기초지자체의 발주 구조는 공사 부문의 약 70%만 관내 업체에 돌아갈 뿐, 물품과 용역 부문은 지역 업체 수주 비율이 30% 수준에 머무는 이른바 ‘7-3-3’ 구조를 띠고 있다. 연구용역은 서울 강남의 대형 컨설팅 업체가 독식하고, 사무용품과 세탁·급식 등 대규모 물품·용역은 전국 체인망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양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연간 2000억원 규모의 세탁물을 외부에 발주하던 대형 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지역 시민사회가 압박하고, 지역 세탁업자들이 공동 출자·경영하는 생산자 협동조합을 설립해 물량을 수주함으로써 지역 일자리를 38%나 늘린 사례다. 고양시 역시 시청과 산하기관, 관내 대형 병원, 대학 등 지역에 뿌리내린 앵커기관의 막대한 구매력을 관내 사회연대경제 조직과 소상공인, 돌봄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공공조달 혁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지역 내에 막아내고 돌려세운 경제적 가치는 공공의료 확충과 방문돌봄 노동조건 개선, 돌봄 비용의 공적 분담 등 ‘사회적 재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데 쓰여야 한다.
양 교수는 “가장 먼저 지역의 가치가 얼마나 유출되는지 측정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 지역에서 무엇이 새고 있는지 명확히 보아야만 무엇을 되돌릴지 결정할 수 있다”며 “지역은 생산하지 못해서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 가치가 지역의 다음 선택을 만드는 힘으로 남지 못할 때 가난해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