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 본래 위치 확인, 종전 발굴 오류 바로잡아
북쪽 50m 사면서 고려시대 석실분 1기 발견
석재 쐐기흔·기와 일치, 승탑원 연계성 주목
대지국사 장례 규명 열쇠, 유적지 정비 시급

[고양신문]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고려시대 핵심 사찰 유적인 ‘고양 삼천사지 대지국사 승탑원(덕양구 북한동)’에서 승탑의 본래 자리가 18년 만에 새로 규명되고, 인근에서 고려 전기 고승의 장례 문화를 추적할 수 있는 석실분이 처음 발굴됐다. 고양시는 불교유적 전문 발굴기관인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이 같은 성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삼천사지 대지국사 승탑원은 고려 전기 법상종 고승인 대지국사 법경(法鏡, 943~1034년경)을 기리는 유적이다. 법경은 삼천사 주지와 왕사 도승통을 거쳐, 현종이 창건한 현화사의 초대 주지를 지낸 당대 최고위 승려다. 현종 11년(1020) 왕사에 책봉됐고 덕종 원년(1032) 국사에 올랐다.

이번 조사의 핵심 성과는 과거 조사의 오류를 바로잡고 승탑의 본래 축조 위치를 실증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5~2008년 서울역사박물관의 발굴조사 당시에는 현존하는 승탑 지대석이 원위치에서 옮겨진 것으로 판단하고, 마당(중정) 중심을 기준으로 탑비와 승탑이 대칭을 이루며 마주 보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번 재조사 결과 과거 승탑 원위치로 지목됐던 지점에서는 하부 기초인 적심시설(건물이나 탑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잡석과 흙을 채운 기초)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현재 지대석 하부에서 명확한 적심시설과 그 아래 자연 퇴적층(생토층)이 온전하게 확인되면서, 승탑은 처음부터 중정 중앙인 현재 위치에 조성됐음이 물리적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중앙 집중형 배치는 삼천사지 승탑원보다 약 60년 뒤에 건립된 개성 영통사 대각국사 의천의 승탑원인 ‘경선원(敬先院)’의 구조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중정을 중심으로 승탑을 배치하는 고려 전기 승탑원의 공간 구성 체계를 규명하는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이와 함께 승탑원 조사구역 북쪽 약 50m 지점 대형 석축 위에서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고려시대 석실분 1기가 확인됐다. 화강암 판석으로 벽체와 천장을 축조한 이 석실분은 내부 깊이 2.45m, 높이 0.9m, 너비 1.1m 규모로 현재 입구가 개방돼 있다. 특히 석실분 하부 석축 석재에서 승탑원 석축과 규격 및 가공 형태가 동일한 쐐기흔(돌을 쪼갤 때 박은 흔적)이 관찰됐고, 주변 지표면에서도 승탑원 출토품과 일치하는 어골문(물고기뼈 무늬) 평기와 편이 수습됐다. 두 유적이 동시기에 동일한 공역 체계에 의해 조성됐음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물증이다.

고려 전기 고승들의 비문 기록에 시신의 가매장과 이후 유골 수습·봉안 등 복합적인 장례 절차가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 1034년경 입적한 법경의 장례 의례나 승탑원 조성 과정과 직결된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재까지 내부에서 묘지명 등 명문 자료가 출토되지 않아 피장자의 신원과 가매장지 여부를 단정하기는 이르며, 향후 정밀 발굴과 문헌 교차 검증이 요구된다.

학술적 성과가 드러난 만큼 후속 보존 행정의 내실화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북한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삼천사지는 등산객 통행과 자연 풍화 등으로 인한 유구 훼손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어, 단순한 발굴 발표에 그치지 않고 종합적인 현장 정비계획 수립과 관리 예산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는 삼천사지 승탑원의 원형 구조를 규명하고 고려 전기 고승 장례 문화를 밝힐 석실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조사 성과를 토대로 석실분을 포함한 유적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문화유산 보존·정비계획을 수립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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