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사람도서관 (20) 김기태 대학생 (25세, 원당 주교동)
[고양신문] TV를 틀면 연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환경오염, 유명인의 사건사고, 눈살을 구기게 만드는 정치공방과 곤혹스러운 경제소식이 가득하고, SNS에는 누가 얼마를 벌었니, 내가 어떻게 해서 성공했니라는 피드들이 진창처럼 난무합니다. 서서히 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다 문득 청소년들과 젊은 세대들은 이런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어떤 생각에 잠길지 궁금해졌습니다. 청소년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며 늘 믿어왔는데, 젊은 친구들은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묻고 싶어 어린 시절부터 고양시에 살아온 한 후기청소년의 인터뷰를 금번 사람도서관에 가져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풍경은 어떠했나요.
5살에 고양시 관산동에 살다가 8살 때 원당으로 이사왔어요. 관산동에 살 때 마을 개천(공릉천)을 따라 가족들과 한가롭게 걷던 풍경이 떠오르네요. 원당으로 이사와서는그런 풍경이 제 삶에서 없어져서 유독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원당초를 다녔는데 학교 갈 때 굴다리를 건너 자동차 공업사가 몰려있는 곳을 지나 10분 정도 걸어야 했어요. 그게 즐거웠어요. 골목 구석구석 안 가봤던 길도 빙 돌아가 보기도 하고. 주교동 굴다리 쪽은 지금도 치안이 안 좋고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어 아이들한테는 다소 위험한 곳인데 그땐 그저 재미나게 오갔습니다. 지금은 재개발 지역이 되고 사람들이 아무도 살지 않아 삭막해졌어요. 어두워지면 이제는 정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원당은 살기 힘든 동네입니다. 많이 쓸쓸하고 적막한 곳인데다 빈부격차가 아주 심한 곳입니다. 학교에서도 빈부격차가 컸는데 자신의 아빠가 다니는 직장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에 따라 친구들이 서로의 급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당시 충격을 받았어요. 아! 저의 어린 시절과 현재가 담긴 소중한 마을에 대해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이야기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학창시절 내가 배웠거나 경험했던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어려서부터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는데 아프가니스탄의 내전과 세계 각지 난민들의 영상을 우연히 접하고는, 내가 한국에서 아무런 위험이나 걱정없이 잘 먹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에 혼란하고 답답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감정과 생각의 단편이 지금도 머리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어요. 엄마는 공동체 등 공공의 영역에 관심이 많았는데, 원당시장 옆 마을공동시설인 행복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기자수업에 저를 밀어 넣었습니다. 기자수업이니 취재방법과 기사작성, 탈고를 배울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이야기, 스스로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법을 더 많이 배웠어요. 기자수업에서 왜 이런 걸 가르치나라는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그때의 공부가 지금 제 삶에 무척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지나고나서야 알게 됩니다. 당시 선생님이었던 고양신문 기자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취재했던 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원당마을 행복학습관이라는 존재나 시스템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어요. 학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닌데 어린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나누는 공간이라니. 지금도 저는 여전히 복지 회의론자입니다. 복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예산과 세금 등이 남용되거나 효율적으로 잘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큰 편이에요. 작은 정부가 더 좋지않나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행복학습관과 마을어른들을 통해 크고작은 배움과 효용을 느끼며 청소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지역 내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선명한 복지는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최근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무엇일까요.
제 친구들 중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모르는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팀게임을 하며 채팅을 주고 받다보면 서로 얼굴이 안보이니 더욱 직설적으로 말하게 되고 남한테 함부로 말하는 것에 전혀 겁을 내지 않는 모습이 자주 목격돼요. 아무래도 게임채팅은 휘발성이 있고 증거가 남지 않으니까요. 특히 승패가 갈리는 게임에서 패배를 하면 특별히 누군가 크게 잘못하지 않아도 다수가 한 명을 콕 집어 비난과 질책 심지어 욕과 험한 말들을 쏟아내는데 게임 내에서는 이를 ‘선정치’라 부릅니다.
‘선정치’는 패배와 잘못의 원인을 먼저 남탓으로 돌려놓아, 혹여나 누가 나를 욕하거나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에요. 그래도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상처 입히거나 남의 잘못을 들춰내는 게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 형태로 진행됐다면, 이제는 이 자체를 즐기는 친구들도 많이 보여요.
게임하는 친구들은 한번씩 들어봤을 텐데 ‘책임 없는 쾌락’이란 용어가 온라인상에 돌아다닙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그 어떤 의무도 없고 아무런 제재도 가해지지 않으니,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하고나서도 훼손되지 않는 나의 상태에 짜릿함이나 달콤함을 느끼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게임 속에서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겪게 되는데 이제는 게임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런 경향과 기류가 현저히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선정치, 책임없는 쾌락’ 같은 개념이 이제는 게임을 넘어 20대 젊은 친구들을 관통하는 단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일부 게임문화가 공동체나 커뮤니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지금은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나요.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에 재학 중인 25살 김기태입니다. 지금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고 해외취업을 준비 중이에요. 자전거동아리와 독서토론 모임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읽었던 책, 영화, 시 등 내가 인상깊게 본 작품을 PPT로 띄워 매주 한 명씩 친구들과 발제하며 관련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을 주로 갖고 있습니다.
❚20대 초중반 또래 친구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20대는 역설적이지만 공정함과 자극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 같아요. 절차에서 공정하지 못하면 분노합니다. 동시에 마냥 재미없는 공정은 싫어합니다. 도파민이 샘솟는 새로운 자극이나 트리거를 찾기 위해 정치, 시사, 게임, 자기계발, 숏폼 같은 한정된 영역과 매체를 반복적으로 헤매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낭만이라는 게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의 친구들은 사회가 많이 안정화되고 규칙이 철저한 시대라 이 규격 안에서 어떻게든 20대 특유의 혈기왕성함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극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전보다 선택지가 많아진 시대이지만 확고한 규격 안에서 찾다보면 막상 할 수 없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 느껴져요. 제가 본 젊은 친구들은 자기계발 등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려 노력하는 사람과 한치 앞만 보면서 요행을 바라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2가지로 구분돼요. 전보다 삶의 다양성이 확연히 사라진 느낌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좋아하는 걸 알아도 그걸 직업으로 갖기 쉽지 않은 시대인 듯해요. 지금은 사소한 취미나 휴식조차 균일화된 세상처럼 보입니다. 20대 남성들이나 대학생들의 취미나 여가시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게임이나 웹소설, 여행, 운동, 술 등. 분명 수많은 삶과 선택지가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선택하려면 선택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없는 세대가 되어버렸어요.
❚뉴스를 통해 사회 속 다양한 갈등과 반목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오늘날 갈등과 반목은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에 기반하고, 이런 일이 발생하는 원인은 배려심의 부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틀림과 다름은 다른데 다름을 틀림으로 부정하는 게 요즘은 더욱 심해졌어요. 해외기사들의 댓글을 보면 사건 자체를 다루는 댓글이 많은데 우리나라 기사의 댓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원색적인 비난이 많아요. 마치 누군가가 잘못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타인의 잘못과 고통에서 희열을 느끼는 게 더욱 강화된 듯해요. 요즘에는 응원하는 댓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댓글을 달만큼 심성이 괜찮은 사람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면 너무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 혐오를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사람들만 채널에 남아 계속 악순환이 지속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출생률 꼴지 등 한국의 부정적인 수치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과거에는 근면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내가 쉬거나 아프면 나의 삶이 뒤처진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쟁과 우울에 지쳐있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하드웨어가 발전하는 속도를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질 못해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듯해요.
한강의 기적, 수출대국 등의 말이 무색하게 국민정서는 여전히 오래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면으로는 식민지, 전쟁과 독재를 거치고 외면으로는 고도화된 경제발전으로 인한 격차와 불평등을 겪다보니, 해소되지 못한 사람들의 내면에는 자연스레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 자리잡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밖으로 표현되지 못했던 국민 전체의 우울감이 수면으로 드러나고 계속 세대를 거쳐 되물림되며 더욱 공고해진 듯해요.
어제 한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나라는 정치가 잘못되었다, 기성세대가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미안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제 머리 속에서는 ‘모든 국민은 결국 그 수준에 부합하는 정부를 갖게 된다’는 책 속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현저히 안 좋은 대한민국의 각종 수치와 지표 역시 결국 마찬가지가 아닐까란 생각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나요.
이란, 이라크,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다루는 종군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라는 사람이 어디에서 가장 가치 있을까?, 세상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림이 되고 싶다라는 질문과 고민을 오래 해왔는데 이제는 그 연원을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너무나 당연한 꿈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은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이니 이 참상을 널리 알려야할 사람이 분명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처럼 전쟁이 나고 몇 달이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어가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끔찍한 참상을 환기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안 그래도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최근 한강 작가의 인터뷰 중에 “전쟁 중에 어떻게 축제를 할 수 있느냐” 라는 말이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큰 울림처럼 들렸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불과 70년 전에 커다란 전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는데 사람들은 벌써 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갈등과 반목이 반복되니 이런 일들을 볼 때마다 종군기자의 역할과 꿈을 더욱 되새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전국의 학생을 자녀로 둔 어머니, 아버지에게로 대상을 특정하고 싶어요. 자녀교육에 강박감 갖지 말고 자녀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두면 좋겠습니다. 요즘 시대에 취미가 있는 것 자체가, 아니 좋아하는 것 자체가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녀들이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게 충분히 시간을 두고 기다려줬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