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해제 경험 경기도, 주도권 상실 우려
라이브네이션, 정밀 안전점검·공공시설 요구
이기헌 “을이 된 느낌”, 엄중한 책임 추궁
‘완성도’보다 ‘속도 조절’ 당당한 행정 절실
[고양신문] 지난 6일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K-컬처밸리 복합개발사업 관련 주민설명회는 사업성공을 바라는 주민들에게 ‘사과’와 ‘연기’라는 무거운 소식을 전하는 자리가 됐다.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이날 설명회에서 당초 2월 20일로 예정됐던 라이브네이션 컨소시엄과의 기본협약 체결을 올해 12월로, 10개월간 연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인사말에서 “죄송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해명이 뒤따랐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지난 2024년 6월 CJ라이브시티와의 협약 해지 이후, 새로운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된 라이브네이션과의 협상이 이번 기본협약 체결 지연으로 험난함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기 결정에서 눈여겨볼 점은 경기도가 협상 주도권을 라이브네이션에 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는 과거 CJ라이브시티와 맺었던 기본협약을 해제하며 큰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당시의 결정은 사업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조치로 내비쳤으나, 결과적으로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경기도는 고양시민들로부터 ‘민간 사업자를 내쫓았다’는 불만을 야기하며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러한 CJ와의 기본협약 해제 경험은 이번 라이브네이션과의 협상에서 경기도가 수세적으로 대응토록 한다는 분석이다. 만일 세계 최대 공연 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이라는 우선협상대상자를 놓칠 경우, K-컬처밸리 사업은 또다시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이 경기도를 압박하고 있다. 향후 기본협약을 맺기 위한 협상 과정에서 경기도는 라이브네이션 요구사항을 검토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그들의 요구에 맞춰 사업 전체의 로드맵을 수정하는 수세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번 주민설명회에서 드러난 라이브네이션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재 17% 공정률을 보이는 아레나 철골 구조물뿐만 아니라, 흙막이 시설을 포함한 T2 부지 전체에 대해 ‘국제 수준의 정밀 안전점검’을 요구했다. 당초 4개월이면 충분했던 안전점검 기간은 라이브네이션 본사의 요구로 인해 발주 3개월, 실질 안전점검 5개월을 합친 총 8개월로 늘어났다.
아레나 구조물에 대해 라이브네이션이 인수 전 정밀 안전점검을 요구하며 사업 전체 일정을 멈춰 세운 것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경기도와 GH에 전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라이브네이션이 요구한 두 번째는 공공시설 지원 확충이다. 라이브네이션은 아레나 부지 내 건설에 그치지 않고, 외부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GTX역과 아레나를 잇는 교통의 주변환경 개선△이용자 편의를 위한 충분한 주차공간 확보 △공사 중 소음과 먼지를 차단하기 위한 차폐시설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김성중 부지사 스스로도 이날 주민설명회에서 “이러한 시설들은 1000억 대까지 갈 수 있는 규모”라고 인정했다. 민간 사업자의 수익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경기도와 고양시가 막대한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라이브네이션은 아레나 준공 전인 2027년부터 유휴지를 활용한 야외 임시 공연장 운영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이기헌 국회의원은 “경기도가 이 상황에 대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며 “우리가 ‘갑’이 아니라 ‘을’이 된 느낌이고, 주민들이 ‘을’이 된 느낌”이라며 심정을 드러냈다. 이 의원은 특히 “만약 올해 안에 기본협약이 체결되지 못한다면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며 국회 차원의 고강도 조치를 예고했다.
이번 기본협약 체결 연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대보다는 우려로 기울고 있다. 첫 단추인 기본협약 단계부터 민간 사업자에게 끌려가게 되면, 향후 실시설계나 실제 공사 단계에서 발목을 잡힐 수 있다. 2030년 하반기 아레나 준공이라는 목표는 현재의 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될 때의 이야기다.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보강 공사가 필요하거나, 공공지원 규모를 놓고 지방의회와의 갈등이 불거질 경우 사업은 2030년을 훌쩍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사업을 지켜보는 한 지역인사는 “민간 사업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되, 공공의 이익과 사업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행정의 영역이다. 라이브네이션의 요구가 타당한지, 혹은 사업성을 구실로 한 과도한 요구인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협상 테이블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