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그림책 세상
특별한 성과보다 '날마다 꾸준히'
임기 뒤에도 반복되는 일상 중요
[고양신문] 6월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쉰이 넘도록 미뤄두었던 일을 하나 시작했다. 아침 여섯 시 반, 수영장에 들어서면서 나는 생각한다. 오늘도 왔네. 그게 신기하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오랫동안 먼 이야기였으니까. 이제 막 발차기를 시작했다. 허우적거리며 몇 번 발을 휘저어보지만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뒷사람 머리가 자꾸 와 닿는다. 그래도 간다. 잘하는 것과 계속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물속에서 배우고 있다.
그림책 『수영장에 간 아빠』(유진 지음, 한림출판사)의 아빠는 물을 무서워한다. 수영도 못 한다. 그래도 딸을 혼자 보낼 수 없어 수영장에 따라간다. 잔소리를 늘어놓고, 유아풀에서 허우적거리고, 집에서 세숫대야에 얼굴을 담그며 연습도 해보지만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처음엔 웃음이 났다. 그런데 책장을 계속 넘기면 다른 것이 보인다. 이 아빠는 잘해서 오는 게 아니다. 못해도 온다. 그리던 어느 날, 킥판 없이 수영해야 하는 날 딸의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딸은 당황하지 않는다. 힘을 빼고 바닥에 발이 닿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빠가 늘 하던 말이 생각났다. ‘몸에 힘을 빼고 기다리면 된다.’ 아빠는 그동안 몸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보여준 것이다. 아마 아빠는 알고 있었을 거다. 꾸준히 하면 된다는 것을.
사람뿐 아니라 도시도 그렇다. 잘하는 도시보다 오래 이어가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 새 지방정부가 출범했다. 민선9기다. 선거가 끝나면 어김없이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취임식, 현수막, 굵직한 공약들. 임기 안에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의지가 도시 곳곳에 내걸린다. 그 열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나는 자꾸 다른 것이 떠오른다.
얼마 전 초대장을 하나 받았다. 강동구에 있는 '함께크는우리 작은도서관'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이었다. 1990년대 중반, 작은도서관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 문을 연 곳이다. 현수막 하나 내건 적 없고, 임기도 없었다. 누군가 떠나면 다른 누군가가 이어받았다. 그렇게 30년이 쌓였다. 그냥 왔고, 계속 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달리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쓴다. 이슬아 작가는 자신을 글 쓰는 노동자라고 부른다. 둘 다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자리에 앉는다. 하는 것 자체가 하루를 만든다.
공통점이 있다. 성과보다 오늘을 쌓는다는 것. 특별한 하루보다 반복되는 하루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진짜 만들어야 할 것도 어쩌면 그것 아닐까.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내가 있을 때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난 뒤에도 계속되는 것. 누군가 취임하고 누군가 퇴임해도 골목의 모임이 이어지고, 작은 공간들이 오늘도 문을 여는 것. 그것이 도시의 힘일 것이다.
날마다 이어지는 일에는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곁이다.
『소이의 뜀틀』(장재연 지음, 풀빛)의 소이는 체육 시간이 두렵다. 뜀틀이 거대한 산처럼 보인다. 발을 구르지 못하고, 부딪히고, 친구들 앞에서 또 실패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소이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잘하라고 다그치는 게 아니다. 그냥 옆에 있어 준다. 손을 잡아준다. 소이가 드디어 날아오르는 건 그 응원 뒤의 일이다. 꾸준함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곁에서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내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도 수영장에 갔다. 여전히 발차기는 잘 안 된다. 조금 더 길게 해보려다 꼬르륵 물을 먹곤 한다. 그래도 간다. 잘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오는 것. 그것이 요즘 내가 배우고 있는 일이다.
새로 출범한 지방정부에도 같은 마음을 기대해 본다. 임기 안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보다, 임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될 일상을 만드는 일. 골목의 모임이 이어지고, 작은 공간들이 오늘도 문을 여는 일. 누가 있든 없든 도시의 리듬이 흔들리지 않는 일.
그런 도시는 행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을 여는 사람, 기다려주는 사람, 그리고 오늘도 다시 오는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소이의 뜀틀』 속 친구들이 소이 곁을 지켜주었던 것처럼.
못해도 내일 또 오는 사람들. 그들이 결국 도시를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