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현의 물따라 가보는 고양
(12) 천변의 추억
개천가 소년이 사랑했던 두 하천
지금은 생태친화적 공원으로 변신
널리 시민 이롭게 하는 하천 되길
[고양신문] 나는 개천가 출신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서울 서대문구의 홍제천변이다. 홍제천은 세검정이 있는 북한산 자락의 종로구 평창동에서 발원하여,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거쳐 남가좌동을 지나 마포구 성산동에서 불광천과 만나 망원동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길이 12㎞의 지방 하천이다. 홍제천과 홍제동의 이름은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이 오가던 길인 의주로 길목에 있던 홍제원(弘濟院)에서 유래했으며 하류부인 남가좌동 구간에는 모래가 많아 모래내(沙川)라고 불렀다.
개천이라는 말은 의외로 한자어가 아니라 고유어다. 흔하고 질이 떨어지는 것을 일컫는 접두사 ‘개-’가 내 천자(川)에 붙었다. 산이나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개울이라 하고 이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시내라고 부른다. 개천은 규모로 봤을 때는 개울이나 시내보다는 크고 강보다는 작은 규모의 하천(하천은 개울, 시내, 개천, 강을 모두 통틀어 일컫는 개념으로 행정에서 주로 쓰인다)을 말하는 것인데, 개울이나 시내가 산과 들로 대표되는 자연 속의 물이라는 이미지라면 개천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나 동네를 가로지르는 생활 속의 하천의 이미지를 준다.
실제로 내가 어릴 적의 홍제천은 그냥 개천으로 불렸는데 당시 처리되지 않은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더럽고 냄새나는 물이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도 개천가에서 놀기는 했지만 개천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실수로 발을 담그거나 장난치다가 물에 빠지는 일이 생기면 그날은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으며 된통 혼나는 날이었다. 당시의 개천가는 한마디로 못 사는 사람들의 거주구역이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지금의 홍제천은 물도 깨끗하고 물고기와 새들이 사는 생태하천으로서 사람들의 산책과 달리기 명소가 되었으니 오히려 그 주변의 부동산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도시 하천들도 개천이라는 말도 이제는 거의 잘 안 쓰이고 고유의 이름을 되찾은 것 같다. 개천가 출신인 나는 출세하여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날지는 못하지만, 영광스럽게도 고양신문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한마디로 ‘용됐다’고 생각한다.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 또렷이 남은 하천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고양시의 대표 하천이라고 할 수 있는 공릉천이다. 당시 더러웠던 홍제천에서 물놀이를 할 수 없었던 나와 동네 친구, 형들은 서울역과 홍제동, 불광동, 구파발을 거쳐 당시 대자리였던 지금의 고양시 대자동까지 운행되던 158번 버스를 타고 원정 물놀이를 떠났다. 그때는 공릉천이라는 이름은 몰랐고 그냥 동네 형들이 대자리에 헤엄치러 가자고 하면 따라갔다. 지금 잘 정비되고 생태 친화적인 산책길이 된 공릉천의 대자동 구간은 당시에 물이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깊지 않아 개구쟁이들의 물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옛날 사람이 되는 것 같지만, 당시 우리는 수영복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애들도 놀고 있는 그곳에서 초등학생인 우리가 고추를 내놓고 물놀이를 할 수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흰색 ‘빤스’ (아마 백양인가 쌍방울표였을 것이다)를 입고 공릉천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다가 집에 가기 전에 일제히 사람들이 없는 얕은 물가로 나가 물놀이 하고 있는 아이들을 등지고 서서 잽싸게 팬티를 벗어서 손으로 비틀어 물을 짜낸 후 다시 입으면 탈의가 끝났다. 다음으로 천변에서 체온, 햇볕과 바람으로 팬티가 마르면 나머지 옷을 입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 대자동에 주교동, 행신동, 화전동, 고양동 등에 사는 시민들 50만 명에게 수돗물을 보내주는 대자가압장과 상수도관이 공릉천변에 있어서 지금도 업무상 가고 있으니 나와 공릉천도 인연이 깊다(그러니 내가 공릉천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양시에는 공릉천과 창릉천, 대화천, 대장천, 장월평천을 비롯한 10개의 주요 하천이 흐르며 지류까지 합하면 70개의 크고 작은 하천이 있다. 비교적 큰 하천들은 대부분 생태 친화적인 레크리에이션 공원으로 잘 관리되고 있어서 산책, 자전거 타기, 달리기를 하는 많은 시민들이 하천을 이용하고 있다. 소하천들은 이미 정비가 되었거나 진행 중인 경우도 있다. 우리 정수장에서 가까워서 점심시간에 산책하러 가는 도촌천을 예로 들면 고양시에서 천변 길가에 벚나무, 무궁화나무도 심고 둔치의 산책로도 정비하여 점차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명품 하천길이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의 도시 하천들은 우수관과 하수관이 정비되어 미처리된 하수의 유입을 막아 수질이 좋아진 반면에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던 물이 하수처리장으로 차집되어 수량이 부족해짐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수질이 나빠지고 건천화되는 경우도 있다. 그 대안으로 도촌천에는 능곡동 인근의 원능수질복원센터(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을 하천유지용수로 재이용하여 하루 최대 1500톤씩 수량을 보충해주고 있다.
고양시의 하천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 고양시 마두도서관 3층에 가보시라. 고양시 향토전시관에 마련된 <거닐다, 고양> 전시에 고양신문의 유경종 기자와 한기식 고양하천연구회 대표가 2022년에 발간한 『고양 하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나도 고양시의 하천을 소개한 이 책을 보며 공릉천에서 내가 옛날에 물놀이하던 대자리가 어느 구간인지 찾아보았고 이 글의 자료로도 썼다.
하천은 예로부터 먹는 물, 농업용수, 어로 등 우리 삶의 원천이었고 휴식을 주기도 하는 고마운 공간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홍수 등 재난에 대비해야 하니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내가 나고 자란 개천의 이름 ‘홍제(弘濟)’는 널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잘 관리하여 널리 시민을 이롭게 하는 하천이 될 수 있도록 하천 관리, 물 관리 담당자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