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자 조병범의
우리동네 새 이야기
(8) 대곡역 뒷마을의 새, 제비
개발 비껴난 일산~화정 사이 섬같은 마을
제비들 주택가에 둥지 틀고 새끼 키워내
주민들 '귀한 손님' 살뜰하게 보살피며 관찰
[고양신문] 제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근한 새다. 직접 본 사람은 물론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도 이름을 대부분 알고 있다. <흥부가>로 알게 되지 않았을까. 가난하고 착한 아우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 주고 난 뒤 제비가 가져다준 박씨를 심어 부자가 되고, 아우의 부귀를 시기한 형 놀부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고쳐 준 뒤 제비가 가져다준 박씨를 심어 화를 입었다는 이야기.
고양시에도 제비가 살고 있을까. 제비는 아파트에서 살기 어렵다. 흙과 물이 있어야 하고 논이 있으면 더욱 좋으며 집주인이 제비를 쫓지 않아야 한다. 대곡역 뒤편 마을은 그런 곳 중 하나로 일산 신도시와 화정 신도시 사이에 있다. 두 도시 사이에 섬처럼 있어 개발이 비껴갔다. 아파트가 없고 오래된 단독 주택과 빌라가 많다. 회사 창고들이 속속 들어서고 소소하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제비가 아직 살 만한 공간이다. 따라서 대곡역 이름이 생기게 한 대곡역 뒤편의 대장동과 내곡동은 제비를 보기에 적합하다.
이곳에는 제비를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럿이다. 탐조 동아리 ‘새와 사람 사이’에서 제비 조사할 때 인연을 맺은 김영길님(1958년 생)이 있다. 어렸을 때 제비 둥지를 턴 죄가 있다며 제비를 살뜰히 챙긴다. 고인복님(1930년 생)은 할머니랑 두 분이 아담한 구옥에서 살고 있는데 수십 년째 제비를 맞이한다고 했다. 정순연님(1951년 생)은 제비를 보면 불안해할까 봐 일부러 제비를 안 본다고 할 만큼 제비를 아낀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은 이들 집에는 올해 제비가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무슨 까닭일까.
청화교회가 있는 다세대 주택에는 제비 둥지가 두 채이고 한 곳에만 새끼 다섯 마리가 자라고 있다. 1층 기둥만 남기고 벽체 없이 비워 개방시킨 필로티 구조의 건물 벽과 천장 사이, 폐쇄회로 텔레비전 장비 위에 제비가 둥지를 지었다. 어미 제비들은 먹이를 물고 둥지를 드나들 때 폐쇄회로 텔레비전 위에서 쉬기도 한다. 폐쇄회로 텔레비전 받침대를 둥지 받침대로 활용한 걸 보면 제비는 환경에 따라 둥지를 진화시킨다.
염백합자님(1940년 생)은 자그마한 마당을 화단으로 꾸밀 만큼 자연을 좋아한다. 몸이 불편해도 제비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표정이 환해진다. 해마다 제비가 찾아오고 올해는 두 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 곳은 다섯 마리 새끼가 금방이라도 둥지를 떠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어미 제비들 소리가 들리면 새끼들은 부리를 활짝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조른다. 다른 한 곳은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둥지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며칠 뒤 염씨 할머니 집을 다시 찾았다. 새끼들이 부리를 활짝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치던 둥지가 비었다. 바로 옆 둥지는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새끼들을 보듬고 있는 어미 제비가 보인다. 둥지를 떠난 어린 제비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할머니 집 뒤편 야산 쪽에서 제비들이 빠르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다 전깃줄에 앉아 있는 어미 제비 한 마리를 만났다. 수천 번 둥지를 드나들며 새끼들을 키운 제비가 장해 보였다.
어린 제비들 다섯 마리 중 세 마리가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다. 둥지를 떠났지만 아직 어미 제비가 물어다 주는 먹이에 의존하고 있다. 어미가 가까이 다가오면 둥지에 있을 때처럼 부리를 활짝 벌리고 자기한테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어미는 한 마리에게 먹이를 주고 부리나케 다시 사냥하러 날아간다. 어미가 주는 순서를 기다리지 못해 어미를 따라 날아가며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어린 제비도 있다. 그렇지만 어미 제비의 빠른 속도를 따를 수 없다. 어린 제비는 날개를 파닥이며 다시 전깃줄로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