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예술 한자(1)
-한 일(一), 통할 곤(丨), 점 주(丶)에 관한 명상
세상을 한 획으로 정리하는 한 일(ㅡ)
동양고전 한결같이 불(不)로 시작
수평(ㅡ) 다음 순서는 수직 곤(|)
과녁 뚫듯 적중한 상태 유지하는 중용
크기가 없기에 존재감 압도적인 점(丶)
계엄 진압한 민주공화국 주인의 단심
[고양신문] 한자는 어렵다고 함부로 외면해야 할 글자가 아니다. 외면해도 되지만 문자 생활에 손해가 아주 막심하지 않을까. 우리 사는 이 세상의 한 진면목(眞面目)을 하나의 글자에 오롯이 담아내는 데 한자만한 것도 없다. 나중에 그 어떤 다른 세계에 갔을 때 그동안 수박의 겉만 핥고 살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굉장히 억울할 수도 있으리라.
눈앞의 풍경을 배경으로 두고 살 수밖에 없는 일상의 나날들. 시시각각 눈으로 소화하는 사물들의 의미를 낱낱이 캐낼 수는 없지만 그걸 문자로 적고 그 의미를 새기며 심득(心得)하는 것과 그냥 지나치는 건 아니 하는 것과는 그 깊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가령, 당장 눈앞의 산을 본다. 흙과 바위와 나무가 어울린 저 육중한 삼각형을 표현할 때, ‘산’이나 ‘MOUNTAIN’으로 한다면 그건 하나의 기호에 불과할 뿐 산의 그림자, 산의 냄새는 한 톨도 담을 수 없다. 그러나 한자 ‘山’에는 육안으로 육박해서 만지는 외관의 일부나마 요약하여 감각할 수 있다.
한자는 어렵다고 한다. 쓰기도 난해하다. 기본 철자가 있어 레고처럼 조립되면서 단어를 확장해 나가는 문자가 아니다. 그 한자는 그 한 글자로 우뚝 독립해서 자리를 지킨다. 그렇다고 말과 뜻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도 아니다.
한자는 하나의 정부(政府)다. 복잡한 행정기관처럼 움직이며 한 글자가 여러 뜻을 거느린다. 같은 글자로서 전혀 상반되는 뜻을 시치미를 뚝 떼고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다.
한자에 관한 한 그저 보통의 관심과 취미로 오래 한자를 들여다보았다. 서당의 강아지처럼 더러 한문을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전공을 하지 않았기에 한자에 대해 비교적 널널한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의 자격이 있다면, 전문하지 않은 자의 자격도 있으리라고 억지 주장해 본다. 그런 자격 아닌 자격으로 나름의 엉뚱과 일탈을 버무리며 자유롭기에 분방(奔放)하게 상상해보는 한자에 대한 이야기.
지대물박(地大物博).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다'는 뜻으로 중국의 무량한 산천경개(山川景槪)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정이 저러하니, 이에 대응하는 글자 또한 얼마나 많아야 하겠는가. 그래서 자기 나라 말이지만 중국인도 한자를 다 모르고, 다 써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저 방대한 한자의 세계에서 대체 어느 줄기를 따라야 두루 꿸 수 있을까.
국어사전은 가나다 순이고, 영어사전은 알파벳 순이다. 보이는 세상의 구체(具體)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추상(抽象)을 적확하게 포착하는 한자를 다루는 옥편은 부수(部首)로 그 체계를 잡는다. 1획부터 17획까지, 간단한 것부터 복잡한 것으로 부수는 전개된다. 이제 그 벼리 같은 부수의 보따리를 차례로 하나하나 끌러보자. 그리고 그중에서 특징적인 한자를 몇 개를 골라 궁리해본다.
1. 한 일(一)
세상을 대표하는 그대여. 어느 외계인을 만나 그대가 속한 세계를 쉽게 표현해 주시오, 질문을 받았을 때, 무엇으로 어떻게 하리오. 우선 바탕을 만들기 위해 옆으로 한 획을 그어 바닥을 만드는 것. 그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총 235개의 부수는 세상을 한 획으로 정리하는 한 일(一)부터 시작한다. 눈앞의 광활한 세상을 상징하는 지평선에서 손가락 하나만큼 움푹 떼내어 수평으로 갈음하여 표현하는 것. 그렇게 한 일(一), 그것만으로 이미 한자의 세계는 영어의 ONE, 한글의 하나 등 다른 문자들이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직관의 미를 보여주고도 남는다.
이처럼 옥편의 시작에서 고추처럼 매운 몇 글자 짚어본다. 고무래 丁, 일곱 七, 석 三, 위 上, 어른 丈, 아래 下, 언덕 丘 등이 이 부수의 식구들이다. (만고의 스승 공자의 이름이 丘임을 기억하자.) 모두를 아우르듯 세상 世가 있는 건 좀 뜻밖이다가도 한편으로 여기에 있는 게 퍽 신통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세상의 원리를 나타내는 아니 不이 포진한다.
수평선같은 선분을 지렛대로 정확히 대칭인 上과 下는 참 고마운 글자다. 이 글자가 없다면 인간은 꽉 막힌 벽 앞에 오갈 데 없이 서 있는 존재이고 말았을 것이다. 덕분에 인간은 생활 영역이 넓어졌다. 하차(下車)나 하관(下棺)은 딱 그 행위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인생은 하숙생, 그 고단한 몸 하나 뉘어 생활하는 것을 하숙(下宿)이라 표현한 것도 퍽 심오하다. 上과 下는 기준선을 대지로 표현하고, 그로부터 하늘과 지하로 이어지는 길을 단박에 보여준다.
‘아니 不’은 묘한 글자다. 不은 꽃잎을 잃어버린 꽃받침을 상형한 것이라 한다(시라카와 시즈카). 시든 가을 들국화의 꽃대에서 그윽하게 不을 짚어내다가, 나무의 줄기와 가지로 시선을 옮기다가 알았다. 길 없는 공중에서 갈림길을 만들며 차례차례 진출하는 나무는 도립(倒立)한 ‘아니 不’의 집합체로구나.
동양의 대표적 고전인 논어, 맹자, 장자의 첫 대목에는 아니 不, 노자는 아닐 非자가 등장한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한문의 부정어들. 왜 이렇게 경전들이 한결같이 부정문으로 시작할까. 아니다,라는 부정은 사실 그렇다,는 긍정보다는 훨씬 많은 여지를 제공한다. 저 부정의 정신을 발판으로 해야 우리는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2. 뚫을 곤(丨)
이 세계를 호쾌하게 하나의 선분으로 짧게 표현한 뒤 궁합을 맞추듯 그 다음의 순서는 ‘丨’ 이고 ‘뚫을 곤’으로 읽는다. 一이 수평으로 눕는다면 丨은 수직으로 선다.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는 알아주는 무협영화다. 일대종사(一代宗師)란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무술의 역사에서 그야말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란 뜻이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멋진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쿵후는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功夫,兩個字:一橫一竪)”
수평과 수직. 이는 단순히 수학의 용어만은 아니다. 그저 오리무중인 세계의 구조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고, 그 세상에 담겨 퐁당퐁당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저마다 짊어진 삶의 한 은유이기도 하다. 과연, 일생의 모든 동작은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다. 아침에 수직으로 일어서서 일하다가, 저녁에 수평으로 눕는 마무리. 이 반복된 일상의 적분이 곧 일생이 아닌가. 그러니 어쩌면 수직과 수평은 삶과 죽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겠다.
여기에 속하는 한자는 많지 않지만 고추처럼 매운 한 글자가 있으니, ‘가운데 중(中)’이다. 이 부수에는 이 한 글자만 기억해도 충분하다. 그 단단한 마음의 과녁을 뚫듯 가운데를 맞추며 적중(的中)하는 것.
과녁의 중앙이 가운데라고 그저 애매하게 중간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자칫 속단하기를 어떤 견해에 대한 해결이랍시고 기계적 중간을 맞추려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중(中)의 의미를 정말 적확하게 긴요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용(中庸)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흔히들 ‘중간의 도’로 여기지만 중용은 中과 庸, 두 동사의 결합이다. 즉 적중한 상태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 그러니 어느 특별한 기간만 중용이 아니라 일상에 있어 늘 중용이어야 하니 그 얼마나 어려운 경지이겠는가.
3. 점 주(丶)
유클리드의 기하학에서 점의 정의는 이것이다. “점은 부분(part)이 없는 것이다. (A point is that which has no part.)”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점을 “모든 도형의 궁극적 구성 요소인 가장 단순한 도형으로서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것”이라 풀이한다. 그 모든 옥편의 체계가 수평(一)과 수직(丨), 그다음에 점(丶)을 배치한 건 다분히 기하학적인 체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하학에서 제로(0) 차원인 점은 위치만 있을 뿐 무게, 길이, 부피가 없다. 없기에 지니는 압도적 존재감! 그것이 없다면 이 세계는 아무런 구별과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그야말로 뒤죽박죽, 엉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당장 지금 이 치졸한 글에서 점, 마침표가 없다면!
한자에서 점은 ‘점 주’이고, ‘丶’으로 표기한다. 수학적인 점(.)을 문자 조형의 예술적인 점(丶)으로 호쾌하게 처리했다. 상당한 크기를 부여한 셈이다. 이 부수의 글자들은 그야말로 알토란 같다. 알 환(丸), 붉을 단(丹), 주인 주(主). 가만히 보라, 이들은 근래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계엄, 탄핵, 선거-과도 그대로 주르륵 엮여지지 않겠는가.
주권자들은 저마다 한 조각 붉은 마음, 이른바 단심(丹心)을 지닌 이들이다. 한밤중의 희극처럼 계엄이 발동되었을 때, 발 벗고 나서 이 같잖은 소동을 진압한 이도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탄환(彈丸)보다 더 강력한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야말로 이 민주공화국의 주인(主人)임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
丹, 丸, 主. 세 글자 중에서도 특히 主에 주목한다. ‘촛대 위에서 지그시 타고 있는 불을 본뜬 글자’라고 한다. 조금 다르게 보면 왕(王)자 위에 점 하나 찍어 왕보다 높은 존재임을 표시한 것 아닌가. 이제 이 땅에 왕은 필요치 않다(No Kings). 묵직한 바위가 정상에서 산을 산으로 들어올려 받들 듯 주인 주(主)를 오래 바라본다.
<부기> 앞으로의 글은 옥편의 부수 순서에 따라 2~3개씩 묶어 연재할 예정. 본문에 등장하는 한자의 자원(字源)은 금성판 활용옥편(1997.1.10. 발행)을 주로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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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서울대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민음사 편집국장과 사이언스북스 대표를 거쳐, 현재 궁리출판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과학, 문학, 인문 등 다양한 분야의 양서를 기획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빛으로 그리는 신인왕제색도>, <인왕산일기>, <꽃산행 꽃시> 등이 있으며, 현재 경향신문에 <일생의 일상> 을 연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