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그림책으로 본 세상]
고양시, 도서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
사서 수 부족하고 그나마 3개월짜리
[고양신문] 며칠 전, 도서관 관련 자료를 찾다가 한 채용 공고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기간제 사서 채용 공고. 근무 기간 3개월.' 이 도서관에서 시민들의 질문에 답하고, 다음 읽을 책을 골라주는 사람이 3개월마다 바뀐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그 자리에 쌓이는 것들도 함께 사라진다.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 지난달에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아는 일, 그런 것들 말이다. 시간이 흘러야만 생기는 관계들이다.
『도서관이 키운 아이』(칼라 모리스 글, 브래드 스니드 그림, 이상희 옮김. 그린북)는 그렇게 쌓이는 시간을 그린다. 소년 멜빈은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자란다. 처음에는 그림책을 골라주던 사서가 시간이 지나자 진로를 함께 고민하는 어른이 된다. 세 명의 사서가 차례로 등장하지만, 이들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멜빈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요즘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자란 멜빈은 훗날 도서관 사서가 된다.
『책을 구한 사서』(지네트 윈터 지음, 박수현 옮김. 미세기)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들려준다. 2003년 이라크 바스라, 전쟁이 다가오자 사서 알리아 무함마드 베이커는 시청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도서관 옥상에 대공포가 설치되는 모습을 보며, 그는 3만 권의 책을 밤마다 자신의 집과 이웃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도서관 건물은 결국 불탔지만 책은 살아남았다. 그 판단은 매뉴얼에 없었다. 오랜 시간 그 서가를 알고 지켜온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온한 시절의 사서가 아이를 키운다면, 위기의 순간의 사서는 지식과 기록을 지킨다. 결은 다르지만 두 이야기는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어떤 사람이 있었는가.
두 권을 나란히 읽고 나면 도서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서가의 배치도 아니다. 건물의 규모도 아니다. 그 안에 누가, 얼마나 오래 존재하고 있는가이다. 이용자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 위기의 순간에 판단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없다면, 책은 있어도 도서관은 아닐지 모른다.
고양시의 도서관은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2025년 자료에 따르면, 고양시 도서관 한 곳이 감당하는 인구는 5만 명이 넘는다. 전국 평균보다 31퍼센트 많다. 사서 한 사람이 맡는 인구는 1만4000명을 넘어 전국 평균의 1.8배에 이른다. 방문자 수와 대출 도서 수 역시 전국에서 손꼽힌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사서는 그만큼 채워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도서관법은 공공도서관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사서 수와 시설, 장서 기준을 정해 두고 있다. 그 기준을 충족한 도서관만이 정식으로 등록된다.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도서관의 72.1퍼센트가 이 기준을 충족해 등록되어 있다. 서울시는 90.9퍼센트, 인천과 충북, 경기가 60% 이하의 등록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고양시는 5.3퍼센트다. 시립 공공도서관 19곳 가운데 등록을 마친 곳은 한 곳뿐이다. 법이 정한 유예기간도 이미 지났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만큼 오래 사람을 채우는 일이 뒤로 밀려왔다는 뜻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양시 시립도서관들은 법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 등록도 하지 못하고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에게 어떤 도서관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시설 다음으로 꼽는 것이 문화프로그램과 강좌, 사서의 친절함, 그리고 소장 자료다. 셋 다 결국 사람의 몫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시민의 질문에 맞는 답을 주는 것도, 서가를 채울 책을 고르는 안목도 사서 없이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3개월짜리 기간제로는 쌓이지 않는다. 건물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그 건물 안에 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이다.
새로운 시정이 시작될 때마다 도서관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건물을 짓는 일은 눈에 보이지만, 사람을 채우는 일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왜 이렇게 오래 미뤄지는지, 무엇이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게 하는지는 시민이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사이 시민들이 받는 것은,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채로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도서관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이제 조금 다르게 읽힌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곳을 오래 지켜온 '사람'이 아이를 키운 것이다. 건물은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만이 그렇게 한다.
고양시에는 이미 좋은 도서관 건물이 많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다. 그 자리에, 사서를 채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출처>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2025년 기준(libsta.go.kr);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등록 공공도서관 관리·운영 현황」(2026.1.); 이용훈, 「도서관통신」 122호, 한국독서교육신문(202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