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바다 민주평통 상임위원, (사)평화누리 상임대표
[고양신문]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 인근에 451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되고 있는 ‘동북아평화자료원’. 2024년 12월 착공에 들어간 이 시설은 2026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부 준비 과정을 거쳐 2027년 상반기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역사를 아우르는 종합 기록·교육·문화 공간이 우리 곁에 들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국가시설의 존재를 알고 있는 고양시민은 많지 않다.
통일부 장관 방문, 세 가지 방향 제시
자료원의 존재가 시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1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공사 현장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정 장관은 현장 안전관리 상황을 점검하고, 자료원이 앞으로 담당해야 할 역할과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정 장관이 밝힌 자료원의 조성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기능을 확장해 지난 100여 년 동안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과 갈등, 분단과 냉전, 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전시·교육·연구·기록하는 종합적인 ‘평화 아카이브’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과 동북아시아 관련 자료를 연구자와 시민 누구나 지역에 관계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이를 전국의 대학도서관과 연구기관에 연결해 자료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셋째, 자료원을 단순히 책과 기록물을 보관하는 시설에 머물게 하지 않고, 지역 주민과 미래 세대가 함께 이용하는 열린 문화·교육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전시와 강연, 문화행사, 시민교육, 어린이·청소년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면 자료원은 시민의 일상과 가까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치열한 유치 노력 끝에 고양으로
동북아평화자료원의 출발점은 통일부가 1989년부터 운영해 온 ‘북한자료센터’다. 이 센터에는 북한이 발행한 도서와 정기간행물, 영상·음성자료, 남북회담 기록, 통일정책 자료 등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자료들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돼 있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계속 늘어나면서 기존 공간만으로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국민에게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워졌다. 독립된 자료원 건립이 필요해지자 여러 지역이 후보지로 검토됐고, 고양시는 2019년부터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킨텍스를 비롯한 국제교류 기반시설, 서울과의 뛰어난 접근성, 접경지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 그리고 남북교류와 평화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온 도시의 역사성을 내세웠다. 정부 부처와의 협의와 유치제안서 제출, 현장설명회 등을 거쳐 2021년 말 고양시가 최종 건립지로 선정됐으며, 2022년 통일부와 고양시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사업이 본격화됐다. 자료원의 고양 유치는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된 일이 아니라, 고양시와 지역사회의 끈질긴 관심과 노력이 일궈 낸 결실이다.
전쟁의 기록을 평화의 자산으로
자료원에는 기존 북한자료센터가 보유한 12만 건 이상의 자료를 비롯해 동북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다양한 기록이 소장될 예정이다. 북한에서 발간된 도서와 신문, 잡지, 영상자료는 물론 남북회담 자료, 이산가족 기록, 통일정책 자료, 민간에서 기증한 기록물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자료원의 범위는 북한과 남북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와 식민지배,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분단과 냉전, 동북아시아 국가 간 갈등, 시민사회의 평화운동과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폭넓게 다루게 된다. 전쟁의 기록을 보존하는 목적은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들춰내는 데 있지 않다. 갈등이 왜 발생했고, 전쟁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으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배우는 데 의미가 있다. 과거의 기록은 평화를 준비하는 미래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자료원에 소장될 북한 관련 자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지만, 실제 모습과 생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많은 시민이 북한을 뉴스나 정치적 논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고 있어, 사실보다는 편견이나 선입견이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북한에서 직접 발행한 책과 신문, 영상, 생활문화 자료를 공개된 공간에서 살펴보는 일은 북한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특정한 시각을 주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북한 사회의 변화와 주민 생활, 남북관계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시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상대를 정확히 아는 것은 평화의 출발점인 동시에 현실적인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자료원은 북한을 막연한 공포나 환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사실과 기록에 근거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될 것이다.
평화도시 고양의 새로운 자산
고양시는 한강과 임진강, 장항습지, 행주산성, 금정굴, 김대중 대통령 사저를 비롯해 전쟁과 분단, 생태와 평화, 민주주의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동시에 킨텍스와 방송영상밸리, 일산테크노밸리 등 국제회의와 문화산업의 기반도 갖추고 있다.
동북아평화자료원이 문을 열면 이러한 도시 자원들이 하나의 평화문화 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 국내외 연구자와 학생, 교육기관, 시민단체가 고양을 방문하고 학술회의와 국제포럼, 평화교육, 기획전시가 열리면 고양은 단순한 자료원 소재지를 넘어 동북아 평화 연구와 시민교육의 중심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킨텍스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와 자료원의 평화 콘텐츠를 연계하고, 장항습지와 DMZ, 행주산성, 금정굴, 김대중 대통령 사저 등 지역의 역사·생태 자원을 연결한다면 고양만의 평화교육과 체험관광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다. 이는 도시 이미지 향상뿐 아니라 지역경제와 문화관광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자료원 건립으로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것은 고양시민이다. 시민들은 멀리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북한과 통일,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평화에 관한 전문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전시와 강연, 북콘서트, 영화 상영, 시민 토론회, 어린이·청소년 체험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교과서 밖의 역사를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공간이 되고, 교사와 평화교육 활동가에게는 풍부한 교육자료를 얻는 기반이 된다. 연구자들에게는 전국에 흩어진 자료를 한곳에서 활용하는 연구 거점이 되며, 일반 시민들에게는 책과 전시, 문화를 편안하게 즐기는 휴식과 배움의 공간이 될 것이다.
자료원의 성공은 건물을 완공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민들이 자료원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자료 기증과 구술기록, 전시와 교육 활동에 참여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공공문화시설이 된다. 동북아평화자료원은 전쟁과 분단의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그 기록을 평화와 공존의 지혜로 바꾸는 공간이다. 고양에 들어서는 이 소중한 국가시설이 시민과 함께 호흡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화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