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책속으로 떠나는 여행(15)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1960년대 말 서울 도심 정비로
짐짝처럼 성남에 부려진 철거민들
광주대단지는 부동산 투기 난장판

국가 폭력에 삶 무너진 주인공
“대학 나온 사람”이란 자존심은
반짝거리는 아홉켤레 구두로 남아

1971년 8월 광주대단지 시위 모습.

[고양신문] 지하철 8호선 단대오거리역에 내리면 가로세로 뻗은 골목들을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들어선 빌라들이 한없이 이어진다. 거대한 빌라촌을 형성하고 있는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의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다보면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가쁘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비탈길에 서니 다닥다닥 붙은 빌라들 사이로 ‘광주대단지’ 시절의 흔적이 보인다. 성남(城南)이라는 이름처럼 남한산성 남쪽의 산자락을 깎아 만든 이 도시에서 55년 전 비가 쏟아지던 1971년 8월 10일에 철거민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성남 초등학교 근처, 지금은 평온한 주택가인 이곳은 당시 5만여 명의 분노가 폭발했던 현장이다. “배가 고파 못 살겠다.” “일자리를 달라.” “백원에 산 땅 만원에 폭리하지 말라.” 
1960년대 말 서울시는 도심 정비라는 명목으로 철거민들을 이곳 ‘광주군 중부면’으로 내몰았다. 처음 서울의 철거민들이 트럭에 실려 짐짝처럼 부려졌던 1969년의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 중원구·수정구)의 사정은 처참했다. 상하수도와 전기시설도 없는 황량하고 척박한 산자락 땅에 던져진 철거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군용천막뿐,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장실 하나를 수십 명이 공유하면서 진흙탕 속에서 삶을 버텨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광주대단지 개발의 장밋빛 청사진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휩쓸었다. 실제로 이곳에는 수백 개의 부동산사무실이 들어서 철거민들의 토지 분양권을 사들이고 이를 뻥튀기해서 파는 일이 반복됐다. 서울에서 밀려난 철거민들과 함께 정부의 무책임한 홍보와 부동산 투기꾼의 부채질에 이끌려 토지 분양권을 사서 이주해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작가 윤흥길은 어렸을 때 실제로 집이 강제 철거당한 적이 있으며, 광주대단지 사건 몇 년 후 성남시의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녹아 있다. 소설 속에서 오 선생이 처음 세들어 살던 단대리 시장 근처의 “숨통을 죄듯이 다닥다닥 엉겨붙은 20평 균일의 천변 부락”은 지금은 다닥다닥 붙은 빌라촌이 되었다. 학교 교사인 오 선생이 술주정뱅이 돌팔이 한의사가 혼자서 일주일만에 지었다는 시멘트 블록 집 문간방의 세입자가 되었을 때는 황무지 빈 땅에 날림집들이 들어섰을 때였다. 당시에 정부는 주민들에게 보름 안에 집을 짓도록 강요했기 때문에 일주일만에 지었다는 주장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일용직이나 무직자가 태반인 이 철거민 동네에서 ‘선생’이라는 희귀한 존재는 만인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아내는 동네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에 진저리를 쳤다. 
많은 무리를 해서 성남시에서는 고급주택가로 알려진 ‘은행주택’으로 이사한 후 좋은 집주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문간방에 들인 첫 세입자가 우리의 주인공 권기용씨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권씨는 경찰에서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는 전과자였다. ‘광주대단지 사건’에 휘말려 전과자가 된 지식인 출신 노동자인 권씨는 가난한 처지에 구두만은 항상 반짝이게 닦아 신는 기묘한 습관이 있었다. 신들린 사람처럼 열심히 구두를 닦는 권씨를 보면 “구두를 구두 이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 바꿔 놓으려는 것 같았다. 

윤흥길 작가
윤흥길 소설집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권씨의 아내가 셋째를 출산하다 위독해지자 권씨는 오 선생을 찾아와 수술비를 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처음에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거절했지만 오 선생은 결국 돈을 마련해 병원으로 달려간다. 이 사실을 모르는 권씨는 그날 밤 오 선생 집에 강도로 침입한다. 복면에 식칼을 들었지만 서툴기 짝이 없는 강도가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엉겁결에 문간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오 선생은 친절하게 대문은 저쪽이라고 가르쳐준다. 이 희비극은 권씨가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하는 말과 함께 대문 밖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구차한 처지를 들킬 때마다 “나 이래 봬도 안동 권씨요.” 혹은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를 반복한다. 서투른 강도 행각을 들킨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방에는 반짝반짝 닦인 아홉 켤레의 구두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권씨는 어쩌다가 전과자가 되었을까. 술에 취해 오 선생 집 안방에 쳐들어온 날 그가 털어놓은 사정은 귀를 의심케 한다. “지상낙원이 들어선다는 소문”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유혹의 손에 덜미를 잡혀” 권씨는 갖은 무리를 해서 철거민의 입주권을 샀다.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다른 사람이 살 집을 빼앗았다는 가책도 잊었다. 집을 지을 돈이 없던 그는 낡은 텐트를 구해서 몇 달을 버텼다. 때는 선거철, 선거 열풍과 함께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날아다니고 땅값은 마구 뛰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 날, 보름 후인 6월 10일까지 집을 짓지 않으면 그 땅의 불하를 취소한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권씨는 다니던 출판사를 무단결근하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변통해 시멘트와 블록으로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집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며칠 후 또 통지서가 날아왔다. 토지 20평을 평당 8000원 내지 1만6000원으로 계산하여 보름 후인 7월말까지 일시불로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짜장면이 50~100원 정도, 일반 직장인 월급이 2만~3만원 정도였다. 게다가 통지서에는 기한 내 납부하지 않으면 땅은 그대로 빼앗기고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30만원 이하의 벌금을 과한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국가가 부당한 법 집행을 통해 개인에게 휘두르는 폭력이었다. 성남시 자료에 의하면 이 당시 서울시가 원래의 토지 소유자에게 사들인 금액은 평당 250원이 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약속했던 공장이나 제대로 된 기반 시설도 마련하지 않고 평당 8000원에서 1만6000원을 받겠다고 한 것이다. 엄청난 폭리였다. 애초에 철거민들에게 약속했던 분양가는 평당 2000원에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하루아침에 처음 약속보다 4배에서 8배나 많은 금액을 일시불로 내라니, 정부가 어떻게 국민들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믿기지 않지만 이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경기도에서는 또 토지 취득세 부과 통지서가 날아왔다. 권씨에 의하면 “서울시와 경기도가 이렇게 쌍나발을 부는 바람에 주민들은 거의 초주검 꼴이 되었다.” 

1970년대 광주대단지 모습. 성남시청 제공

주민들은 투쟁에 나섰지만 서울에 직장을 둔 권씨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자기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는 나서지 않고 누군가가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기회주의적인 태도임을 자각했지만, 그래도 피하고 싶었다. 주민들이 최후 결단의 날로 정한 8월 10일, 권씨는 길을 가득 메운 주민들을 피해 서울로 가려다가 무장한 청년들에게 막혀 투쟁현장으로 끌려온다. 빗속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서는 투쟁의 현장, 갑자기 주민들 사이로 길을 잘못 든 삼륜차 한 대가 뒤집히고 잘 익은 참외가 쏟아져 내렸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고 벌떼처럼 달라붙어 참외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진흙탕에 떨어진 참외를 어적어적 씹어먹는 사람들, 방 한 칸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 속에서도 참외를 향해 달려들게 만드는 절실한 그 무엇,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굶주림과 구차함, “나체화를 보는 것 같은” 충격에 권씨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사진 속에서 난 버스 꼭대기에도 올라가 있고 석유 깡통을 들고 있고 각목을 휘둘러대고 있기도 했습니다. 어느 것이나 내 얼굴이 분명하긴 한데 나로서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들이었으니까요.” 기회주의적 지식인이었던 소시민 권씨는 시위 주동자가 되어 징역을 살았고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된 것이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내집 마련의 절박함은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정부를 믿었다가 소시민에서 빈민으로 몰락한 권씨는 “이래 봬도 대학 나온 사람”이라는 선민의식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다. 이곳 주민들과는 다르다는 작은 우월감 혹은 어줍잖은 자존심은 반짝거리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았다. 그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신품의 구두들은 권씨의 대졸 학력처럼 반짝인다. 그러나 연작으로 이어지는 다른 소설 『직선과 곡선』에서 권씨는 구두들을 모두 불태움으로써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에 맞설 것을 결심한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