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녜인' 연말 개봉 앞둔 임대청 감독
고양시 공무원, 영화감독 병행 10여 년
첫 단편 <말리 언니>로 다수 영화제 수상
장편 <지금, 녜인> DMZ다큐영화제 2관왕
“창작 이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가려고”
[고양신문] 임대청씨는 두 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직장인 고양시청에 출근하면 미래산업과 미래항공팀 업무를 총괄하는 ‘임 팀장’이다.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거나 모니터 앞에서 장면을 편집하는 ‘임 감독’으로 변신한다. 공무원과 영화감독.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정체성을 남다른 뚝심으로 병행한 지 10여 년 만에 드디어 작품을 상영관에 내걸 기회가 잡혔다.
“작년(2025년)에 완성한 작품 <지금, 녜인> 연말 극장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난 적은 있지만, 상영관 개봉은 처음이에요. 몇 분이나 보러 올지 모르겠지만, 감독으로서 무척 설렙니다.”
임 감독은 지금까지 두 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첫 작품은 2020년에 완성한 <말리 언니>이고, 두 번째가 <지금, 녜인>이다. 앞쪽은 30분짜리 단편이고 뒤쪽은 98분짜리 장편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아이템에 착수하고 완성하기까지 둘 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직장생활을 우선해야 하는 물리적 한계도 있지만 “시간을 많이 들여야 좋은 다큐가 나온다”는 임 감독의 소신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꾸준히, 천천히 찍은 필름들이 쌓여야 이야기가 풍성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 기획했던 의도와 방향이 당연히 달라지기도 하고요.”
둘째, 주인공 이름을 연이어 제목 안에 넣었다. 첫 작품에서 카메라가 응시한 대상은 홀트아동복지회의 ‘말리 홀트(1935~2019)’여사이고, 두 번째 작품은 미얀마 출신 이주여성 ‘녜인 따진’이다. 감독의 궁극적인 관심이 ‘사람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두 작품 모두 쟁쟁한 수상 이력을 쌓았다. <말리 언니>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한국단편 심사위원대상, 가톨릭영화제 특별장려상을 받으며 주목할 만한 신인의 등장을 알렸고, <지금, 녜인>은 지난해 열린, 아시아 최고 다큐영화제 중 하나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과 예술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영화 찍는 별난 공무원’이라는 호기심의 시선을 넘어 독자적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창작자로서의 입지를 당당히 다져가고 있는 임대청 감독을 만났다.
❚ 공무원인데, 어떻게 다큐 찍을 생각을 했나.
몇 개의 과정이 있었다. 말단 공무원 시절, 구청 광고물정비팀에서 일했는데, 신방과를 나온 관심사를 살려 불법현수막을 단속하는 영상을 찍어서 공무원 내부망에 올렸더니 주변의 호응이 좋았다. 그 덕분인지 공보실로 가게 됐고, 인터넷방송 고양TV를 담당하며 만든 콘텐츠가 지상파 방송 시청자 참여 코너에 채택되기도 했다. 자신감이 생겨 고양TV 이름으로 제대로 된 다큐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소재를 찾았다. 마침 고양600년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한 시민사진공모전에서 만난, 홀트학교 뒷산의 아이들 무덤 사진 한 장이 강렬하게 마음을 때렸다. 말리 홀트 여사를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어렵게 촬영 동의를 얻어냈다.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들었다.
의욕적으로 착수했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공보실에서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난 것이다. 눈앞이 막막했지만, 좋은 작품 꼭 만들겠다는 홀트 여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작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5년씩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사실 중간에 장편 편집본을 완성하기도 했는데, 완성도가 너무 낮았다. 다큐영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다시 심기일전해 추가 촬영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안타깝게도 홀트 여사가 눈을 감으셨고, 결국 그 상황까지 담아서 30분짜리 단편으로 첫 작품을 완성했다. 사실 홀트복지재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복잡한데, 나는 오로지 말리 홀트라는 인간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첫 작품이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초기 콘셉트를 버리고, 형식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한 게 주효했다. 롱테이크로 찍은 신의 처음-중간-끝부분을 정지화면으로 뽑아내 디졸브로 이어 붙인 후 담백한 내레이션을 넣었다.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호평을 해 주셨다. 배우 겸 감독으로 유명한 방은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장이 “수상자가 현직 공무원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계속 영화 만드셔야 한다. 안 만들면 공무원 용어로 직무유기다. 응원하겠다”고 말해줬다. 모든 고생과 고민이 보상받는 듯한 감격이었고,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두 번째 작품 <지금, 녜인>은 어떻게 착수했나.
2021년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고, 국민들의 저항이 일었다. 초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나 역시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국인 남편과 미얀마인 아내 부부가 현지에서 날아온 참담한 소식들을 전하며 미얀마의 저항운동을 지원하는 걸 알게 됐다. '이거다!' 싶었다. 주인공들을 만나 다큐 촬영 동의를 얻었다.
이번에도 제작은 오래 걸렸다. 주말에만 움직일 수 있었고, 녜인씨 부부도 생업과 활동을 병행하느라 늘 일상이 힘겨웠다. 결국 시간이 지나며 미얀마 현지 상황도 장기 대치 국면으로 고착됐고, 녜인씨 부부도 생계형 자영업을 시작하며 활동을 중단했다. 그 과정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도우려는 애초 의도에서 멀어진 것 아닌가.
출발은 그랬지만, 작품을 찍으며 ‘이 작품의 주제는 미얀마 민주화운동 연대기가 아니라, 녜인 부부라는 사람 자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이 있고, 그의 상황과 감정이 계속해서 변해가고, 그걸 응시하고 포착하는 감독의 시선이 차곡차곡 쌓여야 괜찮은 다큐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물론 혼자 찾아낸 답은 아니다. 영화제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임흥순 감독, 신혜원 감독 등 대가들이 내 기획에 대해 소중한 조언을 들려준 덕분이다.
❚<지금, 녜인> 역시 독특한 스타일을 시도했다고 들었다.
주인공 녜인에게는 복잡한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는데, 막상 카메라로 찍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주인공 주변에 부유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담아내기 위한 일종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한국의 평화로운 일상과 미얀마에서 날아오는 긴박한 시간을 함께 집어넣기 위해 상황을 셀프 재연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방식이 사실을 넘어서는 진실을 포착하는 데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성한 <지금, 녜인>은 작년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큰 상을 2개나 받았고. 얼마 전 치러진 올해 DMZ영화제에서도 비평적 중요성이 있는 작품을 조명하는 ‘크리틱스 초이스’ 부문에 다시 초청돼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과 만났다.
❚‘다큐 감독’ 병행에 대한 공무원 사회의 시선은.
솔직히 엄청 조심스럽다(웃음). 일이나 열심히 하지 왜 별난 짓이냐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평소 절대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큐 감독 투잡은 돈벌이가 전혀 안된다. 제작지원에 선정되더라도 오히려 내 돈이 많이 들어간다(다시 웃음). 그래서 전업으로 하려는 감독들도 파트타임 알바 뛰는 등 고충이 많더라. 어쨌든 현역 공무원 신분 다큐 감독은 제가 유일한 것 같다.
❚다큐멘터리 창작 환경은 나아지고 있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모르겠다. 최근 경기도의 재정 긴축 기조에 따라 DMZ국제다큐영화제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게 다큐 환경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장의 작가들과 평론가들도 큰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 지역적으로는 고양시가 EBS, DMZ 등 유수의 다큐영화제가 동시에 열리는 곳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듯하다. 답답하지만 어쩌겠나. 열심히,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수밖에.
❚다시 <지금, 녜인>으로 돌아가서, 개봉에 대한 기대감이 클 것 같다.
사실 배급은 제 영역이 아니라서 과연 몇 개의 극장에 걸릴지, 고양에서는 만나볼 수 있을지 전혀 짐작이 안 된다. 그래도 독립영화가, 그것도 극영화가 아닌 다큐영화가 정식 개봉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회다.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배급사의 눈에 띄고, 영화진흥위원회의 개봉지원사업에 선정되는 등 여러 단계의 허들을 넘어선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록 많지 않은 관객이라도, 내 영화를 극장에서 봐 주시면 좋겠다. 혹시라도 약간의 수익이 돌아온다면, 미얀마 현지인들을 돕는 일에 보태겠다는 계획도 세워뒀다(웃음).
❚지역에서 공동체 상영을 추진하거나, 시장님이 공무원 단체관람을 명하셔도 좋을 것 같다(웃음). 차기작은 구상하고 있나.
당연히 만들 계획이지만, 아직 아이템을 못 찾았다.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를 갖고 있는 보석같은 사람, 세상에 작은 빛을 밝혀주는 이야기를 발견해야 하는데, 아직 눈에 안 띈다. 가까운 곳부터 살피며 부지런히 찾고 있다.
❚상투적 질문이지만, 다큐를 만드는 이유는.
답변도 상투적이지만,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겨자씨 한알만한 보탬이 되고 싶어서다.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럿이다. 나는 다큐멘터리라는 도구를 선택했다. 돈 없고 힘없고 외곽에서 겨우 존재하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고,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다큐를 찍으며 그렇게 오래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