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1호 입주의 기억, 사라지기 전의 골목 ①
정발마을 3단지 건영빌라

[고양신문] 일산 1기 신도시가 재건축을 통한 대대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 낡은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주민들의 삶이 깃든 마을의 풍경도 달라질 전망이다. 집과 골목, 정원과 이웃의 일상에는 건물의 외형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이 쌓여 있다. 도시가 새롭게 바뀌기 전에 이러한 삶의 흔적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다.
고양의 마을과 주민들의 삶을 기록해 온 비영리단체 고양아카이브016은 2026년 고양문화재단 생활문화플랫폼 공모사업 ‘고양, 생활문화 아카이빙’에 선정돼 ‘일산 1호 입주의 기억, 사라지기 전의 골목’을 주제로 기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백송마을과 정발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기억과 마을의 풍경을 사진·영상·구술로 담는다.
고양신문은 재건축이라는 변화의 길목에서 고양아카이브016이 기록한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정발마을 3단지 건영빌라다. <편집자 주>

고양아카이브016이 김동석 위원장의 구술 영상을 남기고 있다.
고양아카이브016이 김동석 위원장의 구술 영상을 남기고 있다.

낮은 빌라와 정원, 이웃의 풍경
정발마을 건영빌라에 들어서면 나지막하게 늘어선 건물과 풍성한 나무,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높은 아파트가 빼곡한 도심과 달리 낮은 스카이라인과 정원이 어우러져 아늑한 전원마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일 단지를 돌며 꽃과 나무를 정성껏 가꾸는 관리소장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다. 길에서 마주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누는 모습도 이곳의 익숙한 풍경이다. 화려한 시설보다 오랜 시간 가꾼 정원과 이웃 사이의 친밀함이 건영빌라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재건축 추진을 이끌고 있는 김동석 위원장에게 건영빌라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일산 풍동에서 살았던 그는 “마두동성당에 다니며 친구들을 사귀었다. 건영빌라에 사는 친구 집에 모여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곤 했다. 길에서 마주친 주민들이 친절하게 인사하던 모습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로 이주한 김 위원장은 30대에 다시 고양으로 돌아와 정발마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던 동네가 성인이 된 뒤 다시 삶의 터전이 된 셈이다. 그에게 이곳은 주거단지인 동시에 삶의 여러 시기가 포개진 장소였다.

정발마을 건영빌라와 뒤편으로 풍동 고층 아파트가 보이다.
정발마을 건영빌라와 뒤편으로 풍동 고층 아파트가 보이다.

달라진 주거환경과 마을의 표정
세월이 흐르면서 건영빌라의 생활환경도 달라졌다. 한때 고급 주거공간으로 여겨졌던 저층 빌라단지는 건물이 노후화되고 주거 선호도가 바뀌면서 불편함이 커졌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유모차를 이용하거나 무거운 짐을 옮길 때 어려움이 있고, 젊은 가구의 유입이 줄면서 골목에서 들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뜸해졌다. 저녁이면 한층 조용해진 단지의 모습에서 세월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주변에도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과거 빈터를 사이에 두고 풍동과 떨어져 있던 단지는 새 건물들이 들어서며 주변 지역과 연결됐다. 공사 중에는 소음과 답답함이 있었지만, 완공 뒤에는 밤거리가 밝아지고 주변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을 직접 찾아 설명하고 주민설명회를 열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특히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이 젊은 세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믿어준 일이 고마웠다고 했다. 지금도 고령 주민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건네고 젊은 주민들은 앞장서서 일을 맡는다. 세대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는 모습은 건영빌라의 또 다른 자산이다.

김동석 위원장에게 건영빌라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일산 풍동에서 살았다.
김동석 위원장에게 건영빌라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일산 풍동에서 살았다.

재건축 뒤에도 남기고 싶은 것
김 위원장이 새 마을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은 주민들의 정과 아름다운 조경, 단지 특유의 품격 있는 외관이다. 무엇보다 기존 주민들이 재건축 이후에도 큰 부담 없이 돌아와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오랜 이웃들이 떠난다면 건물과 함께 쌓아 온 관계도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올 젊은 세대와 기존 주민들이 어울리고 아이 돌봄과 마을 활동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역시 그가 바라는 모습이다.

고양아카이브016이 건영빌라에서 남기려는 것은 건물의 외형만이 아니다. 나지막한 지붕 아래 자리한 정원, 길에서 건네던 인사, 친구 집에서 보낸 오후와 세대를 잇는 이웃의 관계까지 담으려 한다. 재건축으로 건물의 모습은 바뀌더라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은 기록으로 남는다. 결국 마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풍경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건영빌라 놀이터의 빨간 의자가 있는 시소. 30여년 간 놀이터를 지켜왔다.
건영빌라 놀이터의 빨간 의자가 있는 시소. 30여년 간 놀이터를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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