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수 교수 고양가와지볍씨 인문학 강연

고양농업기술센터에서 ‘영사정과 김영작’ 주제로

고양시농업기술센터(소장 정종현)와 고양 가와지볍씨박물관(명예관장 이융조)이 함께 주최하는 고양 가와지볍씨 역사·문화 인문학 열 네 번째 강좌가 지난 24일 고양시농업기술센터 3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유도회 이사장을 역임한 정후수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가 ‘영사정과 김영작’이라는 주제로 깊이 있는 강연을 펼친 이날 행사에는 90여 명의 청중들이 강의를 경청했다.
정후수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는 조선시대 고택인 영사정(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 157호)을 강의의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영사정에 대한 지금까지의 관심이 건물 자체에 대한 건축학적 가치에 집중된 것과는 달리, 영사정에서 살았던 인물들, 그중에서도 영사정을 세운 김주신의 현손인 김영작의 업적에 초점을 맞췄다.

 

고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영사정(덕양구 대자동 소재).

 

영사정(永思亭)은 어떤 곳인가.
영사정은 조선 후기의 문인 김주신이 1709년에 지은 집이다. 3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겪으며 퇴락해가던 건물을 2014년 복원한, 고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 이름의 영사(永思)를 정후수 교수는 ‘영원히 생각하다’가 아닌 ‘영원히 그리워하다’로 해석한다. 여기서 그리움의 대상은 바로 김주신이 네 살 때 여읜 아버지다.

김주신은 평생 부친을 향한 효를 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문집인 『수곡집』의 많은 부분을 선조, 아우, 누이, 아랫사람 등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은 묘지명, 행장, 제문, 축문 등으로 채운 인물이다. 이러한 심성과 지적인 면모는 자손들에게 이어진다. 이날 강연의 주인공인 현손 김영작을 비롯해, 갑신정변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5대손 김홍집, 대종교 2대 교주를 지낸 7대손 김교헌 등이 김주신의 후손이다.

조선 후기의 외교적 사건, 또다시 불거진 종계변무(宗系辯誣)
정후수 교수는 영사정에 머물렀던 인물의 한 사람인 김영작을 살펴보기 위해 조선의 대표적인 외교 문제였던 종계변무 사건을 조명한다. 종계변무란 조선 개국조 이성계의 족보가 명나라의 역사책에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조선의 기나긴 노력을 말한다.

고려 말,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정적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이성계에 대한 거짓된 족보(이성계가 고려의 신하 이인임의 자손이라고 주장함)를 전하는데, 명나라의 공식 기록물에 윤이와 이초의 주장이 실린다. 조선 조정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벌여 190년여 만인 1588년에 이를 바로잡는다. 이 과정에서 역관 홍순언이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종계변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철종대인 1863년에 여전히 역사가 바로잡히지 않아 또다시 종계변무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역관이었던 이상적이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상적과 더불어 또 하나의 숨은 공로자가 있었으니, 바로 김주신의 현손인 김영작이다.

조선시대의 전문외교관 역관(譯官)
정후수 교수의 강의는 잠시 조선시대의 전문외교관 역할을 하던 역관에 대한 설명이 보태진다. 역관은 말 그대로 통역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주로 조선시대의 가장 중요한 외교 행사인 사신단의 일원으로 참가해 통역과 행정실무를 전담했다. 사신단 업무의 공식적인 직제로는 정사와 부사, 서장관 등이 있지만, 언어가 통하는 역관이야말로 사신단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실무자이자 외교관이었다는 게 정후수 교수의 설명이다. 최초의 종계변무에선 역관 홍순언이, 또다시 발생한 종계변무에서 이상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만 봐도 이들이 지닌 인맥과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양반 못지 않은 식견과 경제력을 갖고 있었지만, 양반과 상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차별적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개방적 인간관을 지닌 김영작의 활약
철종 때의 종계변무의 해결에는 역관 이상적의 공로와 함께 김영작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다. 김영작은 당대의 폐쇄적인 지식인들과는 달리 무척 개방적인 인간관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청나라의 지식인들과 편지로 교유했다. 또한 사행단의 2인자인 부사 신분으로 사행을 다녀오는 과정에서도 신분에 대한 가림 없이 역관 이상적과 마음을 터놓고 소통한다.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은 김영작의 행보는 청나라에 있는 문우들과의 두터운 신뢰와 우정의 토대가 된다. 결국 종계변무의 해결 과정에서 김영작이 청나라의 지인 조광에게 띄운 편지 한 통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편지의 내용이 기준조에게, 그리고 황제에게까지 전달돼 역관 이상적의 활동과 함께 문제 해결의 동력이 됐던 것이다.  젊었을 적부터 국제적인 감각을 갖고 개인적인 친분을 소중하게 쌓아 온 김영작의 인품은 그대로 그의 아들 김홍집에게까지 이어졌으리라는 것이 정후수 교수의 설명이다.


강의를 통해 영사정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의 생동감있는 삶을 접하고 나니, 그동안 건축적인 아름다움에만 주목해왔던 영사정을 보다 새로운 관심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깊이를 담보한 콘텐츠의 재발견과 역사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강의였다.       

최고의 강사진 초청해 월례강좌 열어
고양 가와지볍씨 역사·문화 인문학 월례강좌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올해  진덕규 한국연구원 이사장,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수준 높은 강의를 열었다. 하반기에는 이기웅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 이사장,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등이 강연자로 초청된다.

문의 고양시농업기술센터 기술지원과 도시농업팀(031-8075-4273)

 

강연장을 가득 채운 90여 명의 청중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고양가와지볍씨 박물관이 주최하는 가와지 인문학 월례강좌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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