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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길 함께 걸으며 몸으로 느낀 고양의 자연과 역사<독자기고>고양2019 바람누리길 30km 완주 체험기
  • 김석환 북한산 화가
  • 승인 2019.11.06 10:42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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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2일 진행된 고양 2019 바람누리길 걷기축제에 참가한 김석환 화가가 호수공원~한강~북한산을 잇는 30㎞ 완주 체험기를 기고했다. 걷기축제의 세세한 일정과 감상을 담은 글과 함께 직접 그리고 찍은 스케치 작품과 사진도 함께 보내왔다.
수년 동안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작품을 선보여 '북한산 화가'로 불리는 김석환 화가는 행렬과 함께 걷는 틈틈이 놀라운 솜씨와 속도로 코스 곳곳의 풍경을 스케치해 참가자들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귀한 글과 그림, 사진을 보내주신 김석환 화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고양신문]    

지인에게 행사 소식을 전해 듣고 고양 바람누리길 걷기 축제 참가 신청을 했다. 가끔 걷기 대회라는 말을 접했었지만 직접 참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자가용이 없는 나는 걷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을 오갈 때에도 어쩔 수 없이 많이 걷게 된다. 그래서 일상 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운동 계획을 세우지 않고서도 운동량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지인의 권유가 없었다만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대회 참가를 하루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복장을 어떻게 갖추는 것이 좋을지 간식은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보통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때는 계절 불문하고 가급적 얇은 옷을 입고 달린다. 추운 계절에도 달리다 보면 땀이 많이 나는데 걷기대회에서는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인이 메시지로 응원을 하면서 1등을 하라고 했는데 걷기대회도 기록과 등수를 매기는지 등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어침에 일어나 복장을 갖추고 도시락과 과일 등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플라스틱 통에 과일도 듬뿍 넣고 물은 두 통이나 넣었다. 여름에 걸었던 낙동정맥 단독 종주 때는 배낭에 준비한 물이 부족해 갈증을 참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양을 배낭에 넣으면 무거워서 이동하기 어렵게 된다. 복장은 그냥 일상복을 입고 새로 산 등산화를 신었다. 나름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도착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버스를 타고 가다 8시43분 일산신도시 초입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 다행히 출발시간 10분 전에 도착해서 안심이 됐다. 신호등 횡단보도 건너편의 공원 안쪽에 집결한 모습이 보였다. 꽃 박람회장 앞으로 이동하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전보다 고층 건물이 늘어나 보였다. 등록대로 가니 반갑게 맞아 주며 문자 메시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등록을 마치고 안도의 숨을 쉬며 30㎞ 참가자 대열에 합류했다.

식전 행사로 ‘행주치마’의 다섯 명 연주자가 각자 앞에 놓인 큰 북을 두드리는 ‘난타’공연을 했다. 큰 울림으로 멀리 퍼져가는 북소리에 참가자들의 기운이 북돋워질 듯했다. 이어서 주최 측과 내빈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출발에 앞서 체조 강사분이 앞으로 나와 그의 시범에 맞춰 모두 함께 국민 체조를 했다. 방송으로 들리는 구령이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따라하던 것과 같아서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9시30분 주최 측 대표들이 출정선언을 한 후 30㎞ 참가자들이 먼저 출발을 했다. 호수공원길 출발지인 꽃박람회장과 애수교 앞을 지나는 동안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가로수 뒤로 너른 호수가 잔잔하게 보였다. 단풍이 물든 나무들이 호수에 비쳐보였다. 자연스레 이어진 길을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춰 지나가는 모습이 힘차게 느껴졌다. 잠시 후 호수공원 내부의 보행로를 지나 큰 길가로 나오니 입구에서 물을 한 통씩 나눠 주었다. 물을 받고 일산신도시 경계지점인 호수길을 걸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화한 가을 날씨가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구름이 끼어 땡볕이 내리쬐지 않아서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호수로를 걷다 10시3분 우측으로 빠져 나가니 농경지가 펼쳐 보였다. 일산신도시 언저리 농촌지역을 걷는 길이었다. 일산신도시를 건설할 때의 입지 조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산신도시는 단일 규모는 크지만 하워드의 전원도시 같은 개념을 담고 있다. 주변의 자연 녹지 품에 안긴 도시로 건설됐다. 전원도시는 주변의 녹지가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해 쾌적성을 갖추는 것이 장점이다.

나는 일산신도시가 처음 건설될 때부터 이런저런 연관이 있어서 그 변천 과정을 조금 아는 편이다. 일산신도시가 처음 건설될 무렵 허허벌판이다시피 한 생황에서 주택을 설계해 짓기도 했고 고양시 도시와 조경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역신문에서 전문가 인터뷰를 요청해 도시 상황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일산신도시 주변에 자생적인 단지들이 들어설 때도 일산신도시의 본래 취지에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 했었다.

10시15분 섬말다리에서 우측 농로로 접어들었다. 평화롭게 펼쳐 보이는 농경지 위로 드문드문 새로 난 도로들이 지나가서 그 하부 굴다리를 지나기도 했다. 계속해서 농경지 사이 길을 이리저리 에둘러 가는 동안 갖가지 농촌 풍경이 다가왔다. 들꽃들이 청초하게 피어 있고 계절에 맞춰 가꾸는 농작물도 잘 자라고 있었다.

출발지부터 에둘러 이어진 길은 혼자라면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특별한 풍광도 없고 하천도 그리 맑지 않아서 개울 정취를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농촌지역에서 느낄 수 있는 체취를 느끼며 걷게 된 것이 반가웠다. 비록 행사로 걷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농촌 내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농촌을 대할 때 푸근한 고향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도시 생활을 많이 했더라도 나의 뿌리는 농촌이고 농촌에서 자라며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농촌과 도시의 삶을 체험한 내게는 사실 농촌과 도시가 다른 삶터가 아니다. 내가 체험하며 살아온 일체의 곳들로서 여기도 저기도 준엄한 삶의 터전일 뿐이다.

잠시 후 신평배수지쪽으로 다가가다 보니 두 사람이 인근의 도촌천에서 한가롭게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10시31분 원능수질복원센터 앞에서 우측 농로로 접어드니 키가 높은 차가 다닐 수 없도록 철골로 게이트를 연이어 설치해 놓은 모습이 보였다. 그 주변에 쌓아 놓은 퇴비에서 냄새가 진동했지만 바로 옆 밭에는 그 퇴비의 힘인지 적색 갓이 웃자라 있었다. 한동안 서울 외곽순환도로 신평인터체인지 아래 굴다리를 거쳐 자유로 옆길을 따라갔다. 길 옆 농경지 곳곳에 제2자유로 쪽으로 농로가 나 있고 끝 지점에 굴다리를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직선으로 길게 난 그 길을 가다 우측 지하 통로로 자유로를 건너 오름길을 오르니 시선이 멀리 펼쳐 보였다.

언덕에 올라서면서 옆에 걷던 김운용 전 고양시 푸른도시사업소 소장(현 기획조정실장)이 철조망을 걷어낸 부분이라고 알려줬다. 오늘 10㎞구간에 참가한 그 분이 당시 평화누리길을 닦아서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둔치 부분에는 대파가 가득 자라고 있고 그 너머로 한강이 시원스레 바라 보였다. 그리고 강 너머로 김포쪽 도시풍경이 아득히 보였다.

거기서 그 풍경을 스케치 하다 보니 일행이 저만치 가 있어서 스케치를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다가갔다. 스태프로 일하던 고양신문의 유경종 기자가 반대편 쪽으로 지나가면서 가다 교각 부근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라고 알려주었다. 잠시 후 우측으로 접어드니 행주 나루터가 나왔다. 위로 거대한 행주대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교각 밑으로 그물과 배가 있어서 옛날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나루터를 지나 조금 가다 11시57분 10㎞ 종착 지점인 행주산성 언저리에 도착했다. 호수공원 주제광장에서 조금 늦게 출발한 10㎞ 참가자들이 한 무리가 되어 도착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10㎞, 30㎞ 참가자가 모두 점심을 먹었다. 한강 쪽으로 너른 강변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해 놓아서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흩어져서 식사를 하며 쉬고 있었다. 나는 스케치를 하며 걷느라 조금 늦게 도착한 상태라 도시락으로 빨리 식사를 마쳤다. 주변을 돌아보니 식사를 일찍 마친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갖고 온 차 등을 나눠 마시며 소풍 나온 기분으로 도란도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10km코스 종착지인 행주역사공원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한강 풍경을 그리다 보니 30㎞ 참가자들에게 출발하라고 했다. 거기서 남은 20㎞가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부담은 없었다. 공원 뒤편 높은 지대의 언덕길을 돌아 행주산성 쪽으로 접어들었다. ‘행주산성 음식문화거리’를 지나다 보니 전에 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던 일이 떠올랐다. 잠시 후 행주산성 대첩문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2300명의 적은 군사로 3만의 왜군을 물리친 곳이다. 그때 아낙네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 전투를 도와서 승리에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행사 코스는 행주산성 문 안으로 들어가서 정상부를 지나 대첩문 반대 쪽 산기슭으로 내려가게되어 있었다. 한강이 아름답게 펼쳐 보이는 정상부에 정자가 놓여 있었다. 거기서 시작되는내리막길은 경사가 급한 편인데 목재 계단이 놓여 있었다. 일행은 그 아래로 내려서서 하천옆길을 걸었다. 거기가 창릉천이 북한산에서 흘러와 한강으로 합류되는 지점이었다. 북한산이 아직 멀리 있는데 거기서 시작된 물길은 멀리 이곳까지 흘러오고 있었다.

행주산성 대첩문을 지나는 걷기축제 행렬

행주산성부터 30㎞가 끝나는 지점까지는 10㎞구간과 달리 창릉천을 계속 따라 가는 코스라갈 길이 가늠 되었다. 창릉천과 북한산은 하나의 조합이다. 창릉천 물길에는 북한산의 체취가 담겨 있어 북한산이 길게 자취를 늘어뜨리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주변에는 자유로와 방화대교 교차로 등 많은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구조물들이 부담스럽게 다가와서 본래 청정했던 모습을 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연에 다가설 때면 늘 본래의 모습을 꿈꾼다.

다시 일행 앞쪽으로 와서 길을 안내하던 고양신문 기자가 내게 앞쪽에 나타날 풍경 중에는 강매석교가 가장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걸으면서 그 모습이 어떨까 상상을 해보게 됐다. 그가 말하는 표정으로 보아 아마도 특별한 다리일 것 같았다. 그리고 현대식 교량은 아니고 돌로 지은 다리일 것 같았다. 내가 수업 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소개한 것은 조선 말기에 세운 선암사 승선교로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행주산성 인근을 벗어나면서부터 온전히 창릉천의 체취를 곁에 느끼며 걸었다. 무성한 억새풀 뒤로 아파트숲이 보이는 곳을 지나 창릉천 둑길을 걷다보니 노란색 꽃이 연속으로 피어 있었다. 너른 하천 주변은 일궈진 밭을 빼고는 모두 수풀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고요한 수면에는 지상 모습대로 선명한 빛깔이 비쳤다. 일행은 아직 지친 표정이 하나도 없이 힘차게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만큼은 좀 천천히 걸으며 감상을 하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릉천변 코스모스 밭
강매석교 모습

그 길을 한동안 지나 뚝방 위쪽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가다 다시 하천 옆길로 가다 보니 저만치 돌다리가 보였다. 그것이 강매석교일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현재의 하천 폭에 비해 길이가 너무 짧아 보여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니 맵시가 아주 좋아 보였다. 우선 현수곡선을 뒤집어 놓은 듯한 곡선의 맵시가 우아해 보였다. 중간 중간 세운 기둥들이 든든하면서도 물길의 흐름을 막지 않고 비켜 서 있었다. 그리고 정으로 거칠게 쪼아 만든 화강암 표면에서 굳센 돌을 다듬던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또한 좌측 산자락에 선 큰 나무들이 어우러져 더욱 운치를 자아냈다. 그렇지만 뒤로는 357번 지방도로(제2자유로)상에 현대에 지은 큰 허우대를 한 콘크리트 교량들이 지나서 세월의 변화를 보여줬다. 걷기연맹의 황규호 대장이 그 앞에 멈춰 서서 일행에게 설명을 했다. 옆 표지판에 강매석교는 1920년에 놓은 길이 15m의 다리로서 고양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고 했다. 석교는 창릉천의 샛강을 가로질러 둑방과 하중도(하천 가운데 있는 섬)를 연결하고 있었다. 서해바다와 한강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 배가 창릉천 하구 작은 섬에 부려놓은 새우젓과 소금 등을 실어 나르는 다리였다고 한다.   

창릉천변을 따라 걷는 걷기축제 행렬

30km 구간 팀은 걷기연맹 회원들이 선두에서 이끄는 가운데 걸어갔다. 앞에서 거침없이 나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전체가 힘차게 걷게 됐다. 참가자들의 힘찬 걸음에서 관록이 느껴졌다.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걷기에 관심이 크고 실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을 주최하는 고양신문과 걷기연맹이 고양 시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한 호흡으로 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매석교를 지나 창릉천 반대 쪽으로 다리를 건너 하천과 조금 떨어진 천변 길을 한동안 걸어갔다. 건강한 갈대숲의 하얀 꽃술들이 길가를 수놓아 걸음걸이를 가볍게 했다. 다시 다리를 건너 빨간색으로 포장된 보행로를 한동안 지나가다 클로버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어 사진을 찍었다. 그 앞에는 어렸을 적 뜀뛰듯 지나다니던 징검다리도 보였다. 저 앞쪽 하천 위로 지나는 큰 도로의 교량 아래서는 두어 사람이 평상에 모여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지나는 길 좌측에 높은 뚝방이 놓여 있어서 하천 주변이 마치 세속과 단절된 장소 같았다. 한동안 추억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뚝방위로 길이 이어지고 앞쪽으로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늘어선 풍경이 나타났다. 그 곳으로 다가가다 굴다리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서 2시10분 원흥지구 도래울마을 인근 바람물 공원에 도착했다.

2시28분 공원을 출발해 우측 언덕 아래 천변길을 걸었다. 앞쪽에서 자전거 행렬이 다가와 우측으로 바짝 비껴 걸었다. 길옆에 붉고 너른 잎이 층층이 매달린 나무가 눈길을 끌어 사진을 찍으니 황규호 대장이 그 나무 이름이 붉사무라고 알려줬다. 다시 길을 걷다 꽃술이 수수처럼 크고 무성한 풀이 보여 사진을 찍으니 황 대장이 그것은 수크령이라고 했다. 그리고 앞쪽의 다리를 건너니 길옆을 가득 채운 수크령이 만개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길옆으로 갈대, 억새, 수크령 등의 군락이 보였다. 깊어가는 가을날에 갖가지 자연식물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길 좌측에 흰 꽃술을 풍성히 드러낸 갈대꽃이 아름답게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대 군락과 뒤편으로 보이는 원당 쪽 아파트숲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날씨는 안개가 낀 듯 그윽한 분위기로 변해서 시계가 점차 좁아들었다. 지나는 곳이 북한산에서 멀지 않은 지점인데 날씨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무심코 걷는 사이 대기를 촉촉이 적신 습한 기운이 몸으로 감싸들었지만 계속 걷는 상태라 감기가 걸릴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3시12분 삼송역 인근의 삼송테크노밸리 근처 창릉천변을 지나다보니 이 인근에서 군생활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군생활을 하던 80년대 초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보니 그야말로 천지개벽한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구파발역 북쪽으로 들어서는 이곳 삼송리부터 임진각까지 이어진 통일로 주변은 전방 지역의 긴장감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통일로를 지나다 만날 수 있는 도시는 금촌과 문산밖에 없었다. 부대 인근은 여기저기 새벽 정찰을 하며 지나던 곳들도 있어서, 내 발자취의 흔적이 어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옛 생각을 하며 걷다 문득 앞을 보니 북한산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차례 북한산 그림전을 하면서 평소 늘 그려오던 산이어서 그 모습을 대하게 된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북한산은 수더분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산이 아니다. 금강산 설악산도 다 가보았지만 현란한 풍광을 자랑삼지 않는 까닭에 나는 북한산을 더 좋아한다. 큰 기세와 거대한 암봉으로 이뤄진 북한산은 장엄한 기상이 뭉쳐 있다.

걷기축제 코스에서 멀리 보이는 지축지구
단풍이 물든 북한산 모습

지축기지 근방에서 우측으로 언덕을 올라 삼송신도시 천변 길을 걸었다. 창릉천을 따라 북한산 쪽으로 멀리 시선이 트여 쾌적한 기분이었다. 스케치를 하느라 뒤처져서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한 분이 “왜 안 쉬고 걷는 거야? 세상에 30㎞를 두 번 쉬고 가고 말어...“ 라고 했다. 그 분 얼굴에 힘든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 주변은 아파트 단지의 창릉천변에 난 산책길이 좁은 편이라 오갈 틈 없이 길게 행렬이 늘어졌다. 맨 앞쪽으로 가서 스태프들에게 조금 전 들은 이야기를 전하니 조금 앞쪽에 화장실 있는 곳에서 쉬어가자고 했다. 머리 위로 구파발역에서 일산신도시로 가는 지하철 교량이 지나는 곳을 지나니 구파발역에서 북한산성 입구로 자주 다니던 주변 모습이 보였다.

3시40분 길가에 둥근 화장실이 있는 공터에 일행이 멈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속속 도착한 참가자들이 화단 옆 조경석 등에 자연스레 걸터앉았다. 바람물 공원에서 쉴 때보다 참가자들의 말수가 더 적어진 듯했다. 걷는데 힘은 들지 않는데 구입 후 처음 신은 등산화가 조여 와서 불편했다.

3시50분 다시 종착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싸릿말교를 지나면서 북한산의 원효봉과 그 뒤의 정상, 그리고 우측으로 의상봉이 가까이 바라보였다. 거기서 앞으로 계속해 걸어가다 신호등 너머에서 좌측으로 다리를 지나자마자 우측 창릉천변 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늘 안내 방송을 들었던 56사단 입구다. 거기서 조금 가다 보니 길 옆 밭에서 노부부가 마주앉아 갈무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계속 앞쪽으로 나아가다 집들 사이를 지나 산기슭을 지나다 보니 노고산의 단풍과 창릉천, 그리고 북한산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보였다.

잠시 후 흥국사 입구 다리를 건너 버스가 다니는 큰 포장길로 나왔다. 그 근처에 흥국사 정류장이 있고 그 다음이 종착지인 북한산성 입구 정류소여서 전 구간을 다 마친 셈이었다. 조금 올라가다보니 버스 정류소와 가게가 나왔다. 북한산 내부로 들어설 때는 늘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고 그 앞 가게에서 김밥도 많이 샀었다. 잠시 후 우측으로 꺾어들어 4시 28분 종착지인 북한산성 입구 휴식 장소로 다가갔다. 큰 입간판이 세워진 곳에서 먼저 온 일행들이 막 숨을 돌리고 있었다. 일행들은 먼 거리를 걸어온 상태인데도 심한 피로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평상시 컨디션 그대로였다. 완주한 기쁨에 모두 뿌듯함과 행복감이 충만해 보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걷기에 단련이 된 느낌이었다.

걷기축제 30km 종착지인 북한산 입구 쉼터
해단식 모습

잠시 후 시상식과 해단식을 가졌다. 시상은 가장 나이가 많은 분과 가족상, 부부상, 단체상 등이 주어졌다. 부부상 시상은 한 가족인데 4팀이나 돼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했다. 기대를 갖고 나왔던 두 팀이 첫 번째 겨루기에서 지고 아쉬운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행사장에서 안쪽을 바라보니 의상봉과 용출봉 등 의상능선의 봉우리들이 높다랗게 솟아 보였다. 조금 날씨가 맑아져 북한산의 체취가 가까이 다가왔다. 여기서 흘러나가는 창릉천 끝 지점부터 먼 거리를 거슬러 올라와 북한산의 품안에 들어선 것이 감회로웠다.

말미에 사회자가 내가 걸으면서 그린 스케치들을 참가자들에게 보여 달라고 해서 북한산 스케치 등 몇 장을 보여줬다. 걷기 행사는 지역을 몸으로 체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산 호수공원을 출발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몸으로 느낀 한강과 행주산성, 창릉천, 북한산 등 고양시 내의 자연과 역사 유물들의 가치가 한층 더 소중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소중함과 더불어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행사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김석환 화가가 고양바람누리길을 걸으며 그린 풍경 스케치>

은평뉴타운 인근에서 본 북한산 일우
행주나루터에서 본 한강 풍경
10km구간 종착지인 행주산성과 한강
강매석교
원당 인근에서 본 북한산 전경

 

 

 

김석환 북한산 화가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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