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장항습지 모니터링, 에코코리아 2019 생태보고서

<에코코리아 2019 생태보고서>

일 년 열두 달 쉬지 않고 장항습지 찾아가
지난해 가장 풍성한 결과 기록 남겨

생물다양성 늘었지만 온난화 징후 확연
“람사르 등재, 습지관리 청신호 청신호”

사진 왼쪽부터 김윤선(모니터링 팀원, 육상곤충), 정인숙(모니터링 팀원, 저서무척추, 조사기록), 이찬(장항영농단 농민), 한동욱(PGA에코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은정(모니터링 팀장, 조류담당), 김지선(모니터링 팀원, 육상곤충), 김혜미(모니터링 팀원, 사진기록).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에서 생태 모니터링 사업을 펼친 지 올해로 18년 째. 에코코리아는 자타공인 고양시를 대표하는 시민생태모니터링 단체다. 고양시 영역에 속한 한강 하구 습지의 가치와 현황을 가장 먼저 찾아내고 알린 것도, 그 땅에 ‘장항습지’라는 고유명사를 붙인 것도 에코코리아의 공이 컸다. 전문성과 지속성을 겸한 에코코리아의 활약은 고양에서 활동하는 다른 단체들의 역량을 견인하는 역할도 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모아진 덕분에 고양시민들의 오랜 숙원이던 장항습지 람사르사이트 등재에도 최근 가속도가 붙었고, 시민들의 바람과 자부심도 한뼘 더 커졌다.
에코코리아는 이달 초 ‘한강하구 장항습지 시민생태모니터링 보고 및 보전을 위한 지역주민 간담회’를 열었다. 지역주민과 행정부서, 그리고 시민단체들을 초청해 2019년 한 해 동안 펼친 습지보호지역 주민역량강화사업의 결과물을 결산하고 공유하는 자리였다. 보고서에는 눈여겨볼만한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자. 


물고기들을 불러 모은 뱀장어 물골

에코코리아는 지난해 행주어부들과 협력해 장항습지 일부 구간의 물골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장항습지의 가장 큰 과제인 육화도 방지하고, 전통어업인 물골 장어잡이도 되살리고, 버드나무숲에 물이 차도록 해 습지생물과 어류들이 깃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한강을 향해 뻗은 25개의 뱀장어잡이 물골 안쪽을 가로로 이어 전체를 하나의 물골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사업을 했다. 물골을 팔 때 생태적 설계를 고려해 양쪽으로 경사가 지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붉은발말똥게(사각게과). 장항습지 깃대종. 멸종위기야생생물2급. 해양보호생물.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결과는 놀라웠다. 물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니 식물들이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고, 물골에 사는 생물종도 풍성해졌다. 가장 반가운 손님은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였다. 개체수가 매우 적었던 녀석들을 물골마다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붉은발말똥게 뿐 아니라, 장항습지의 물골은 수많은 어류의 양육장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은어와 전어, 다양한 망둥어 종류 등 강과 바다를 오가는 회유성 물고기의 치어들이 물골에서 풍부하게 발견됐다. 한강과 서해에서 잡히는 다양한 어종들을 길러내는 자람터가 바로 장항습지 물골이었던 것이다.

꺽정이(둑중개과). 기수성어류. 주로 강하구에 살며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먹고산다. 서울시보호종.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 물고기 무려 43종

장항습지 어류 모니터링에서 발견된 물고기는 43종에 이른다. 장항습지 모니터링 중 최대 숫자다. 2009년 황해생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한강하구 어류모니터링을 했을 때 한강하구 전체에서 발견된 어류가 50종, 장항습지가 35종이었으니 10년 만의 정밀 모니터링을 통해 장항습지의 생물 다양성을 다시 한 번 업데이트한 셈이다.
어종을 살펴보면, 앞서 말한 은어와 전어를 비롯해 귀한 대접을 받는 황복과 웅어, 꺽정이도 있다. 그리고 풀망둑, 강주걱양태, 민물두줄망둑, 검정망둑 등 온갖 망둥어 종류들이 사이좋게 찾아들고 있었다. 동자개와 밀자개, 대농갱이 등 소위 빠가사리로 통칭되는 어종의 서식 밀도도 풍부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1월부터 행주어부들의 주요 수입원이 돼 주는 가숭어의 생산량도 아주 많았다.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PGA에코다양성연구소장)는 “새로 조성한 갯골을 중심으로 집중 조사를 한 게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고라니(사슴과). 장항습지 깃대종.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보호종.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건강한 관리를 위한 깃대종·목표종

에코코리아는 지난해 모니터링 작업과 함께 장항습지의 깃대종과 목표종을 설정하는 작업을 했다. 깃대종이란 장항습지를 알리고 홍보하기 위한 대표선수들을 말한다. 조류에서는 재두루미와 저어새, 포유류는 삵과 고라니, 십각류는 붉은발말똥게, 어류는 뱀장어, 곤충은 황오색나비 등이다. 황오색나비는 비교적 흔하 종이지만, 버드나무를 먹이식물로 삼는다는 점에서 장항습지와의 연계성을 상징하는 깃대종으로 선정했다.

반면 목표종은 지정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목표를 함께 고려한 개념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여름에는 저어새, 겨울에는 재두루미를 목표종으로 설정했다. 저어새는 전 세계 개체수의 1%가 넘는 숫자가 장항습지를 찾고 있고, 재두루미 역시 장항습지를 잠자리로 삼는 개체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은정 사무처장은 “저어새와 재두루미가 더욱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으려면 논습지와 물골이 많아져야 하고, 겨울무논과 볏짚존치도 지속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 차단을 위한 울타리 설치 등이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토대로 합리적 관리대책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시민모니터링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저어새(저어새과). 장항습지 목표종. 저어새를 위해 봄 논에 물을 대고, 둠벙을 만들어 먹이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새롭게 출몰하는 기후변화 지표종

지난해 모니터링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 중 하나가 기후변화 지표종의 변화다. 기후변화 지표종이란 이름 그대로 기후변화의 추이를 관찰할 수 있는 생물종으로 환경부에서 100종을 선정한 바 있다. 고양시는 지금까지 이 중 45종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변화 지표종은 지구 온난화를 정확히 반영한다. 장항습지만 해도 한반도 남쪽에 서식하던 종들이 매 년 추가로 발견되곤 한다. 제주도에서나 발견되던 적갈색따오기가 목격됐는가 하면, 한강 이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검은이마직박구리가 지난해 봄 집단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몇 해 전부터 한두 마리 발견되던 흰날개해오라기는 이제 장항습지의 흔한 새가 됐고, 여름철새 백로는 아예 겨울을 나는 녀석들이 매 년 늘고 있다.

검은이마직박구리(직박구리과). 기후변화생물지표종(환경부). 2019.4.23. 장항습지 24마리 관찰. 아열대성 조류.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푸른아시아실잠자리(실잠자리과). 기후변화생물지표종(환경부). 2019.9.21. 장항습지 갯골에서 관찰. 주로 중부지역에 서식.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곤충류에서는 충청도 이남에서만 나타나던 푸른아시아실잠자리가 고양시 최초로 기록됐다. 반대로 고양시에서 흔했던 북방아시아 실잠자리는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다.
이은정 사무처장은 “새로운 종이 발견되면 반가워야 하지만, 너무도 빨리 진행되는 온난화를 생물종이 여실히 반영하는 모습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생태 보금자리, 둠벙

금개구리(개구리과). 2019년 장항습지 논생물모니터링에서 발견. 멸종위기야생생물2급. 한국고유종.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지난해 장항습지에서 발견된 반가운 손님 중 하나가 바로 금개구리다. 장항습지 논둑 가장자리에 우연히 물이 고이는 둠벙이 하나 생겼는데, 거기서 멸종위기종 금개구리가 처음 발견된 것이다. 환경이 조성되면 반갑게 반응하는 생태계의 신비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은정 사무처장은 “장항습지 농경지 주변에 보다 많은 둠벙을 조성하면, 강변 물골과는 또 다른 생명들의 번식처이자, 저어새를 비롯한 새들의 먹이공급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온난화의 영향으로 장항습지에 맹꽁이와 금개구리의 개체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에 대한 서식여건 조성도 미리미리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람사르 등재, 시민모니터링 정착 계기 삼아야

에코코리아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평균 5차례 장항습지로 생태모니터링을 나갔다. 5~6명이 한 팀이 돼 2·4주는 조류를 포함한 생태 전체를, 1·3주는 어류, 논생물 등 주제별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장항습지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어민·농민들과 소통의 폭을 늘릴 수 있었고, 행정 협조도 순조로웠다고 회고한다. 농어민들이 자랑처럼 들려주는 구술 자료도 장항습지와 사람들의 지혜로운 공존을 고민하는 데 크 힌트를 줬다고 한다.

2020년에도 쉼 없이 18년차 모니터링을 시작한 소감을 이은정 사무처장에게 물었다.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협업하면 시민모니터링이 명실상부한 ‘시민과학’으로 탄생합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발로 뛰며 기록한 데이터의 의미를 분석하고, 행정기관은 체계적인 관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했으면 합니다.”
한동욱 소장은 시민모니터링의 제도화를 위해서라도 장항습지의 람사르사이트 등재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람사르사이트에 등재되면 관련 조례를 만들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보다 정밀하고 안정적인 시민모니터링의 활용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최근 가시화된 장항습지의 람사르 단독 등재 추진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강주걱양태(돛양태과). 기수성어류. 주로 강하구, 연안의 모래바닥에 산다. 서울시보호종.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재두루미(두루미과). 장항습지 목표종. 현재 환경부와 고양시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에 의해 겨울철새 먹이주기, 볏짚존치, 잠자리를 위한 무논 조성 등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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