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고령자 비정규직의 노동인권,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아파트 고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인권침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지자체 차원의 대책들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언,폭행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희석(향년 59세)씨를 추모하는 모습. (사진제공=오마이뉴스)

고령자 4명 중 1명 비인격 대우 
고령노동자 인권 법적장치 필요
인권권익보호, 핵심은 고용안정 
고양, 전국 첫 인권조례 준비
아파트 민주주의 활성화도 절실 

“마치 파리 목숨 같은 거죠. 그래도 애정을 갖고 일했던 직장인데…”

아파트경비원 윤영배(가명, 70세)씨는 악몽과도 같았던 작년 해고상황을 아직도 떠올린다. 윤씨가 일했던 곳은 화정동의 한 아파트단지. 40년간 항공사진촬영사로 일했던 윤씨는 은퇴 이후 얻었던 첫 직장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아침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6시에 퇴근하는 24시간의 고된 업무였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려고 애썼다. 

반장에게 밉보여 일방적 해고통보
그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일하면서 얻게 된 지병이었다. 윤씨는 “직장에서 은퇴한 뒤 여러 일을 알아봤지만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다는 윤씨. 다행히 주민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경비원 업무도 나름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경비원으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려고 했던 그의 바람은 얼마 가지 못했다. 같은 아파트의 경비를 책임지던 반장은 윤씨가 말귀를 잘 못 알아 듣는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일종의 직장 내 괴롭힘이었던 것. 급기야 작년 7월에는 반장의 건의를 받아들인 용역업체는 윤씨에게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내리기까지 했다. 계약기간을 절반 가까이 남겨둔 상태에서 벌어진 엄연한 부당해고였다. 

“당시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아들도 집에서 놀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상황이었어요. 업체에 찾아가서 꼭 일을 해야 한다고 사정을 했지만 냉철하게 거절당했죠. 너무 억울하고 막막했지만 하소연 할 곳조차 마땅치 않았어요.”

다행히 아파트주민들을 통해 사정을 듣게 된 해당 지역구 의원이 부당해고 문제를 지적하면서 윤씨는 다시 경비원 업무에 복귀하게 됐다. 그러나 윤씨의 복직기간은 얼마가지 못했다. 돌아온 뒤 반장과 동료 경비원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훨씬 더 심해졌던 것. 결국 그는 작년 9월 계약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비원 업무를 그만두게 됐다. 복직한 지 불과 두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갑질문제 근본적 원인 ‘고용불안’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노동자 최희석씨의 안타까운 사망사건 이후 아파트 노동자들의 노동인권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아파트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은 비단 입주민들의 갑질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윤영배씨의 사례처럼 경비원 간의 갑질 문제도 심각했다. 아파트 업무 특성상 관리 권한을 쥔 반장이 해고 여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갑’의 위치에 서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진행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4명 중 1명(24.4%)은 입주민으로부터 욕설, 구타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불안 문제 또한 심각했다. 3명 중 1명(30.4%)이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0명 중 1명(11.1%)은 ‘부당해고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아파트경비원으로 근무 중인 한모씨는 “대다수의 입주민들은 친절하지만 몇몇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층간소음 때문에 새벽 1시에 방송해달라고 해서 불가하다고 설명했는데 바로 관리소장을 불러오라고 윽박지르고 경비원 불친절 문제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동료 경비원 중 한 명은 이런 문제로 소장이 고초를 겪는 모습을 보고 미안하다며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2017년부터 고양시 아파트노동자 노동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손용선 고양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장은 경비원의 고용불안이 이러한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손 센터장은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절대다수가 고연령층이고 인생의 마지막 직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해고를 가장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며 “입주민이나 상급자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아파트의 특수한 고용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문제는 일반적인 서비스 이용자의 그것과 달리 고용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대응이 더더욱 힘들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고용불안 문제는 비단 아파트 경비원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특히 아파트 환경미화원들의 경우 용역업체가 관련법을 악용해 3개월씩 ‘쪼개기’ 계약을 맺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1개월 초단기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었으며 업무 중 상해를 입을 경우 전적으로 본인이 책임질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까지 작성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가 경비원 고용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경우도 벌어진다. 최근 일산서구의 A아파트에서는 동대표였던 주민이 계약만료 된 경비원을 내보낸 뒤 본인이 경비원으로 ‘셀프채용’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아파트경비원은 “평소에 경비원들을 사사건건 괴롭히던 주민인데 느닷없이 본인이 직접 경비원을 맡는 모습이 너무 황당하다”며 “동대표까지 했던 같은 입주민을 경비원으로 채용하는 데 동의해준 입대위의 결정도 이해할 수 없다. 그만둔 경비원도 그렇고 같이 일하는 관리소장과 경비원은 얼마나 불편하겠느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관련법 개정 통해 아파트관리 위상 높여야 
아파트 노동자들의 권익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르면서 지방정부들도 해결책 마련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서울시는 24일 강북구 아파트 갑질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경비노동자 종합지원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고용승계를 위해 노력하는 아파트 단지에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하는 한편 경비노동자들의 공공이익을 위한 공동체 안전망으로서 ‘아파트 경비노동자 공제조합’설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아파트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분쟁 등을 위한 원스톱 ‘전담 권리구제 신고센터’를 시 차원에서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고양시 또한 지난달 18일 전국 최초로 경비원 인권조례를 제정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해당 조례는 경비원에 대한 각종 인권과 법률상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와 사용자에게 함께 연대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무료법률상담과 심리상담 등 경비원들의 인권피해 방지를 위한 지원서비스 마련, 공동주택 관리자와 주민에게 연 1회 인권교육 실시 등의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해당 조례안은 현재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으며 오는 7월 시의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양시가 준비 중인 조례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내용과 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양시노동권익센터, 고양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 고양시여성근로자복지센터 등 노동분야 3개 기관은 최근 해당 조례안에 대해 노동권 문제를 함께 담아내는 방향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노동인권 침해 해결을 위한 상담소 설치, 아파트노동자 인권침해의 근본원인인 고용불안 및 노동조건 문제에 대한 실태조사 진행, 노동인권 친화적인 ‘고양시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신설 등을 명시했다. 강명용 고양노동권익센터장은 “조례상정을 앞두고 시의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제출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차원의 법 개정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아파트경비원의 경우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이 아닌 경비업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데 이는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강신주 고양아파트노동자인권네트워크 대표는 “현재 경비업법에 따르면 아파트경비원의 업무는 경비분야에만 국한되는데 현실적으로 경비원들이 쓰레기분리작업, 청소 등 아파트관리업무 전반을 담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을 통해 현재 아파트경비원을 아파트관리원으로 전환하고 이에 따른 적합한 노동조건을 마련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의견을 나타냈다. 

아파트 고령노동자 전반의 지원 담은 도 조례안 준비
아파트노동자들의 권익실현을 위해 법 개정뿐만 아니라 입주민들의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화정동 은빛마을 아파트에서 동대표를 지냈던 고상만씨는 “경비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대부분 특정 몇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전에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결국 입주민들이 입주자대표회의 등 대표기구에 관심을 가지고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관심과 참여를 통해 아파트민주주의가 활성화되어야 경비원 권익실현과 고용불안 해결 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몇해 전 행신동 햇빛마을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아파트경비원 해고움직임에 맞서 반대활동을 주도했던 최김재연씨 또한 비슷한 의견이다. 최씨는 “당시 해고반대운동과 토론회를 진행하며 느꼈던 것은 입주자대표회의와 일반 주민들 간의 온도차가 매우 컸다는 점”이라며 “아파트 내에 여러 주체들이 함께 소통하고 상생하는 문화가 마련된다면 경비원들의 노동인권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작년부터 아파트공동체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노동자 전반의 노동문제로 확장해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도 나오고 있다. 신정현 도의원은 올해 초부터 아파트경비원뿐만 아니라 청소미화원, 관리사무직 등 고령자 비정규직 노동자 전반에 대한 지원책을 담은 ‘경기도 고령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보호 및 고용 안정 조례안’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고령자 경비원 등 비정규직 고령노동자의 인권보호 및 고용안정을 위한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마련, 권리구제 등을 도지사 책무로 정하고 고용불안 해소 및 고용승계 대책 등을 마련하도록 명시했다. 아울러 고령자인력은행 마련, 고령자 비정규직 노동자 협의회 구성 지원 등도 조례에 포함됐다. 

신정현 도의원은 “지난번 아파트 경비노동자 갑질사건은 우리사회의 고령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라며 “경비원들에게 발생하는 갑질문제와 고용불안, 직장내 괴롭힘 등 부당한 인권침해 문제 해소를 위해 당사자들과의 논의를 거쳐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신 의원은 오는 7월 7일 조례초안에 대한 종합토론회를 거쳐 하반기 도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동진 기자 xelloss11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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