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0% 체험학습 줄취소
교사들 보호할 법적장치 부족해
버스업체는 최대 7억까지 손해
[고양신문] 체험학습에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노란버스’만 이용토록 한 법제처 해석으로 고양시 초등학교 가을소풍이 줄줄이 취소된 가운데, 정부가 전세버스 대절 합법화 추진을 약속했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대다수 학교의 체험학습이 9월·10월인 탓에, 뒤늦은 정부의 수습에도 이미 일정을 취소한 학교는 사실상 다음 학기를 기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여파로 학교 밖 지역사회 곳곳에서도 신음이 터져 나온다. ‘노란버스’가 휩쓸고 간 고양시 가을소풍, 현장의 이야기를 청취한다.
이른바 ‘노란버스’ 논란은 교육부가 이번 개학에 앞서 체험학습에 그간 이용해온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어린이용 통학버스’만 이용하라는 공문을 일선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는 만 13세 미만 학생의 현장 체험학습도 ‘어린이의 통학’이라는 법제처 해석을 따른 결과다. 즉 체험학습이 통학으로 간주된 탓에 △어린이 체형에 맞는 안전띠 △하차 확인 장치 △노란 도색 등을 갖춘 통학버스, 이른바 ‘노란버스’만 대절할 수 있게 된 것.
코 앞으로 다가온 일정에 맞춰 노란버스를 구하지 못한 학교는 체험학습을 취소하거나, 위법을 무릅쓰고 전세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밖엔 없다. 한편 고양교육지원청은 “학생들의 현장 체험학습 추진 등 학교 현장에서 정상적 학사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지침이 담긴 공문을 보내 일선 교사들은 양자택일의 순간에 놓여있다.
교사 개인에게 책임 떠넘겨..."민사소송부터 위약금까지"
고양교육지원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악된 고양시 관내 초등학교 60곳 중 50%가 체험학습 취소, 40%가 강행, 10%가 결정보류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교사들이 체험학습 취소의 이유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책임소재’다. 학교장의 결재가 필요하나 실행 여부는 교사 개인에게 달려있어 책임이 무거운 반면, 이들을 보호할 법적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세버스로 현장체험을 강행했다가 학생이 다치게 된다면, 위법행위 중 발생한 사고이기에 인솔 교사가 법적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웅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고양초등지회장은 “예전 같았으면 교육지원청 지침을 따랐겠지만, 최근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일선 교사들이 ‘책임소재’에 민감해져 위법을 무릅쓰면서까지 체험학습을 추진하는 것은 꺼리는 상황”이라며 "타 지자체와는 달리 현재 경기도교육청이 민·형사상 책임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아 교사들은 주저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세버스' 이용으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한 교사의 모든 민·형사상 소송을 책임지겠다고 발표한 충청북도·인천광역시·대전광역시 등과 달리 경기도교육청이 이달 14일 발송한 공문에는 '민사상 소송'에 대한 책임여부가 포함되어 있지않다. 즉, 사고로 생긴 민사상 책임에 대해 교사들은 무방비인 셈이다. 이에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법률전문가들에 따르면 타 교육청에서 말하는 '민·형사상 책임'도 법적근거와 책임범위가 뚜렷하지 않아 실질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경기도 교육청은 교사 보호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교사가 마음 편히 체험학습을 취소할 수도 없다. 교사 개인이 버스업체 등의 위약금을 책임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 지회장은 “덕양구 소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현장체험학습 취소를 결정하자, 학교 측으로부터 위약금과 관련해 교사 개인에게 감사 지적 사항이 생길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사례를 확인했다”라며 “개인이 부담하기엔 많은 책임이 주어진 만큼, 일선 교사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노란버스 없는 대절업체, ‘피해 직격타’
학교 내에서 교사들은 진퇴양난에 놓인 한편, 학교 밖에서는 버스대절 업체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고양시의 경우 기업체 통근·외국인 관광 등의 업무를 병행하는 버스대절 업체는 9월~10월의 취소 건수가 최소 3건, 피해액이 1500만원으로 비교적 낮았지만, 체험학습만을 전문적으로 맡는 업체는 취소 건수가 최대 103건, 피해액이 7억여원에 달한다.
일산동구 소재의 한 업체(명***) 관계자는 “코로나 종식 이후 최근 체험학습 버스대절을 하루 평균 2건 정도 받고 있다”라며 “9월~11월이 체험학습이 잦은 성수기이기 때문에 11월까지 예약이 103건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최근 ‘노란버스’ 논란의 영향으로 학교에서 계약을 전부 취소하여 7억2000만원을 손해 본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덕양구 소재의 업체(어********)의 경우 9월 현장체험학습 대절은 모두 취소됐고, 10월·11월 계약도 잠정취소 혹은 보류 중인 상태다.
경기도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고양시 곳곳에서 계약취소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당장 돌아오는 10월 예약의 경우 90%가 이미 취소됐다”라며 “교육부에서는 현장체험학습 강행을 권장하고 있지만, 일선 선생님들이 못 나가겠다고 하시니 학교 내부 사정을 모르는 대절업체들은 답답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식 조합없는 체험업체, 성과없이 외로운 싸움만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함께 싸워줄 조합이 있는 ‘교사’와 ‘버스업체’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체험농장 같은 체험학습업체는 개인사업자로서 정식 노조가 없어 피해를 사업자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특히 고양에 자리한 고양낙농치즈테마체험장, 쥬쥬동물원, 고양위드파머스 등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고양낙농치즈테마체험장 소재옥 대표는 “고양초·백석초·원당초 등 고양 내 위치한 학교들 뿐 아니라 수도권 소재 학교들의 10월~11월 현장체험학습 예약이 대부분 취소되는 바람에 피해액만 3억8000만원에 달한다”라며 “방문이 예정된 1만 명의 학생들이 오지 못해 업장의 피해는 물론이고 매 체험 때마다 고용하는 20~30명의 주방보조직원·강사도 일이 끊긴 상태”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체험학습업체는 학교 측에서 연초에 학사일정을 잡은 후 문의하면 업체가 필요 서류를 제출하고, 운영위원회가 소집돼 최종 선정한다. 이후 잔금 처리와 담당교사 현장답사 등은 예약된 체험학습일 직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이미 예약을 취소한 학교의 경우, ‘노란버스’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다시 일정을 잡기도 어렵다.
소 대표는 “이번 정부발표 이후 9월~11월 예약건 중 취소 후 재예약하는 경우는 없었고, 몇 개 학교가 추석 이후로 연기를 요청했을 뿐”이라며 “각종 피해에 노출된 개인사업자 체험업체들을 보상·보장해 줄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