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가파도 편지 29
[고양신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살다 보니 대부분은 평범한 무채색의 나날과 드문드문 찬란한 원색의 날들이, 사람마다 비중은 다르겠지만 어둡고 우울한 무채색의 날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쁨의 날들은 금세 휘발되어 버리지만, 슬픔의 날들은 오래 남아 마치 염색약을 풀어놓은 물에 옷을 담그듯 우리의 삶을 어둡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로 입은 하얀 옷에 김치 국물이 튀듯 우리의 삶을 당황하게 만들고, 남들이 볼까 봐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지요. 아무리 세제로 부분 세탁을 해도 얼룩의 잔해가 남아 계속 신경쓰입니다. 그것이 불행의 모습이지요. 나에게 들키는 것보다 남들에게 들킬까 봐 숨기게 되고,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주로 보름 만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양산에 있는 치매 걸린 어머니와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1년이 넘도록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여동생을 만나고 왔습니다.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서는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자신은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고 성을 내면서도, 방금 전에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황당한 사건을 연출합니다. 고작 1박 2일의 양산행이었는데, 그 어두움과 막막함의 분위기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하네요. 어쩔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무기력함으로 깊은 우물에 빠진 기분입니다.
갑자기 알게 된 일도 아니고,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막상 또 눈앞의 현실로 겪고 보면 갑자기 수능 전날 모든 것을 까먹은 입시생이 된 것마냥, 어리석어지고 나약해집니다. 십 년 공부 나무아비타불이지요. 이럴 때에는 자신의 불행을 잊기 위해 뭔가 다른 일에 열중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타격이 심했는지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별수 없지요, 상처 입은 짐승이 동굴 속으로 숨어들 듯, 집안에 틀어박혀 겨우 끼니나 해결하고 하루 종일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해봅니다. 어린 시절,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배는 속절없이 고파오고 뒤져봐도 먹을 것이 없을 때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누워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잠에 들어있다가 인기척 소리에 잠을 깨면, 고소한 밥 짓는 냄새가 부엌에서 흘러나와 코끝에 닿았습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잠에서 깨면 내 근심과 걱정이 해결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아직도 어리석게 믿고 있나 봅니다.
지혜로운 자의 말에 따르면 인생은 한낱 꿈이라는데, 우리네 꿈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하고, 우리네 행복은 쉬 찾아오지 않고, 불행은 도둑처럼 거칠고 느닷없이 찾아옵니다. 이 익숙하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짙은 색 불행이 시간이 흘러 옅어지기야 하겠지만, 하얗게 탈색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다가 문득 내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의 웃는 얼굴, 환한 표정 뒤에 드리워진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무채색 어두움이 저마다의 이유로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처럼, 그들도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 썼을 것을 짐작해 봅니다. 그들이 견뎌냈을 어두움과 막막함, 안타까움과 무기력함,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상상으로나마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을 겪습니다. 이 세상 어디를 둘려봐도 행복으로만 점철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알아봐 주고, 바라봐 주고, 손 내밀어 줍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