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의 주말, 쉼표
(8) 교외선 열차 여행

대곡에서 의정부까지 50분
추억 싣고 떠나는 ‘느린 여행’
일영~장흥~송추 하루해가 짧아
차창 밖 풍경은 기차의 선물

대곡역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교외선 열차.
대곡역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교외선 열차.

[고양신문]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이 많다. 이번 명절에 특별한 여행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교외선을 타고 기차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고향으로 향하는 설렘을 대신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고양시를 감싸는 교외선은 과거에 낭만 열차였다. 대학생들의 MT 모임이나 가족 나들이객을 실어 날랐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경기 북부로 향하는 이동수단이었다. 중단됐던 교외선은 2025년 1월 운행을 재개했다. 열차가 다시 달리면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추억 열차의 귀환’이다.

교외선은 대곡·원릉·일영·장흥·송추·의정부, 모두 6개 역에서 정차한다. 객차는 화물 운송에 쓰이던 디젤기관차를 꾸민 것이다. 선로는 단선(單線)으로, 중간 지점인 일영역에서 교차 운행한다. 열차는 느린 속도로 달리고, 낮게 지어진 과거의 선로로 다닌다.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가는 건널목을 지나다닌다. 출발·도착지인 대곡역과 의정부역을 빼면 역사가 있는 곳은 일영역이 유일하다. 다른 역에는 대합실만 있고 역사와 개찰구는 없다.

대곡~의정부를 오가는 교외선 열차.
교외선 열차의 쾌적한 객실 모습. 

이번 달 ‘주말, 쉼표’에서는 무궁화호 교외선을 타보기로 했다. 열차를 타기 전에 ‘교외 하루패스’라는 1일권을 예매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 왕복 패스를 구입하면 하루 종일 무제한 이용이 가능하다. 모든 역에서 하차할 수 있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승차할 수 있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부지런히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니, 서두를 필요도 없다. 기차의 속도에 걸음을 맞춰보자. 

시작지점인 대곡역을 출발한 열차는 원릉역으로 향한다. 창밖으로는 논과 밭,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있는 풍경이 지나간다. 원릉역은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에 자리하고 있다. 1961년 교외선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있었던 역이다. 원릉이라는 이름은 원당의 ‘원’과 서삼릉의 ‘릉’에서 따왔다. 주변에는 고양시청이 있고, 오래된 마을 풍경과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이 스치듯 교차한다. 

양주시에 있는 일영역으로 들어선다. 과거에는 일영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다. 2025년 교외선 재개통을 앞두고 역사를 정비했지만, 주변에는 예전의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열차는 일영역에서 약 10분간 정차한다. 기차에서 내려 본다. 주변을 걷고, 철길을 바라보고, 마을 풍경을 천천히 구경한다. 역내에는 작은 철도박물관이 있다. 그 앞쪽에 있는 포토존은 BTS가 뮤직비디오 ‘봄날’을 촬영한 곳이다. 

산뜻하게 재정비된 일영역. 역내에 작은 철도박물관이 있다.

장흥으로 향한다. 넓은 들판과 낮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기차 창문을 통해 천천히 다가온다. 기차여행의 매력이다. 오래된 철길 옆의 푸른 논밭과 커다란 나무, 낡은 지붕과 낮은 산자락이 한 장면씩 이어진다. 근처에는 가나아트파크를 비롯해 장흥조각공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민복진미술관, 안상철미술관까지 예술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다음 역은 이번 여행에서 기자가 들르려고 마음먹었던 송추다. 송추계곡에는 물놀이 나들이객과 오봉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역에서 내려 계곡 쪽으로 약 10분 정도 걸으면 계곡 입구가 나오고, 건너편에는 ‘헤세의 정원’이 있다. 이곳에는 50년 동안 가꾼 나무들이 1만 평 정원에 가득하다. 카페, 갤러리 그리고 레스토랑 등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송추역에서 가까운 복합문화공간 '헤세의 정원'.
1만 평 규모와 정원이 있는 복합문화공간 '헤세의 정원' 
1만 평 규모와 정원이 있는 복합문화공간 '헤세의 정원' 

느긋한 점심 식사 시간을 가져본다. 낯설기도 하고 또한 낯익기도 한 풍경을 지나온 뒤라 그런지, 식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넓은 잔디밭에는 꽃으로 가득한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 카페 건물 지하 1층의 갤러리에서는 김도마 작가와 이완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 중이었다. 

이제 교외선의 마지막 구간인 의정부다. 역 구간 소요시간이 15분으로 가장 길다. 열차는 좁은 레일 위를 천천히 움직인다. 열차는 숲의 한가운데를 통과한다. 손을 뻗으면 창밖 바로 옆에 줄지어 서 있는 나뭇가지들이 손바닥에 잡힐 듯하다. 의정부역에 도착하니 차창 풍경은 도시의 모습으로 바뀐다. 역에서 하차해 의정부를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의정부제일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또 다른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 법하다. 

의정부역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교외선의 편도 소요시간은 약 50여 분이다. 그리 길지 않은 코스이다. 원릉의 기억을 더듬고, 일영에서 걸음을 멈추고, 장흥에서 예술을 만나고, 송추의 정원을 걸으면 교외선 여행은 끝난다. 주말인데도 열차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객실과 냉방은 쾌적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색적인 광경을 만났다. 일영과 원릉 사이에 자리한 선유동 철길 바로 옆에는 노란색 건물의 카페가 있다. 카페 손님들이 철로 옆에 줄지어 서 있다. 그들은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일제히 사진 찍는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열차 안에서도 그들의 사진을 찍는다. 상대방의 사진을 서로 찍어대는 모습이 이채롭다. 

오래전 유원지를 찾아가는 하루는 많은 걸 생각나게 했다. 그때 그 시절의 공간은 아직 남아 있기도 했고, 이미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 열차에 올라서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고, 열차에서 내려서는 마음이 닿는 곳을 걸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눈을 감고서 덜컹거림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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