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DMZ 두루미여행, 철원-김화
오가는 길, 명사들의 릴레이 특강 이어져
‘한반도의 평화 만드는 길’ 함께 경청
[고양신문] 플라톤이 남긴 방대한 대화편 중 <국가>와 함께 가장 유명한 저작이 <향연>(Symposium)이다. 그리스의 독특한 사교 문화인 향연에 참석한 이들이 토론과 수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주고받는 내용이다.
등장하는 이들은 서양 철학의 시조새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의술에 해박했던 파이드로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훗날 군인으로 이름을 떨친 알키비아데스 등이다. 이들의 입을 통해 덕과 에로스, 영원과 불멸 등 사랑의 여러 형태와 본질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주장되고 정의된다. 한 철학교수는 대중강연에서 “내게 과거의 한 장소에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들이 토론을 펼치는 향연장으로 가 시중을 들며 귀동냥하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2400년 전 그리스에서 펼쳐졌던 지적 향연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한겨울 눈 덮인 강변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재현됐다. 지난 24일 진행된 고양신문 주최 DMZ 두루미여행, 고양과 철원을 오가는 여정에서 참가자들의 즉흥 강연이 릴레이로 이어진 것이다.
프로그램의 테마는 어디까지나 민통선 안을 방문해 한겨울 철원 땅을 찾아온 두루미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다년간의 취재와 연구를 통해 접경지역 역사와 생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장착한 박경만 고양신문 발행인이 두루미와 철원 땅에 대한 정보들을 재미나게 안내했다.
두루미만큼이나 특별했던 건 여행 참가자들의 면면.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지혜를 쌓은 고수들이 버스 안 좌석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마이크가 전해졌고, 이동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의 성찬이 이어졌다.
특강은 3회 진행됐다. 첫 번째 주인공은 심상진 전 경기대학교 관광학부 교수.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 총소장을 역임한 그는 남북 교류의 획기적 모멘텀을 마련했던 정주영 회장의 금강산 관광사업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며 추진될 수 있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줬다. 특히 북녘 사람들과 접촉하며 그들의 변화를 직접 목도했던 대목은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북한의 우표를 오래도록 연구하고 수집해 온 안재영 북한학박사(DMZ평화교육원 원장)에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안 원장은 북한이 우표 발행을 외교의 수단이자 통치 메시지를 표현하는 매체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려줬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신기한 얘기였다. “우표를 통해 북한 사회를 읽을 수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 번째 강사는 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트럼프 간의 만남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주 독일대사를 역임한 그는 오늘날의 남북관계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견해를 들려줬다. “상대 체제에 대한 위협을 전제로 하는 통일의 당위성을 내려놓고, 평화로운 두 국가로 지내면 안 될까?” 동의 여부를 떠나,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새로운 영역으로 넓혀주는 제안이었다.
조연(이라고 소개하기엔 죄송한 분들이지만…)들의 역할도 맛깔났다. 지역 시민사회의 존경받는 원로인 강경민 목사(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는 정 대사의 강연에 자신의 견해를 보탠 질문을 던져 논의를 확장했고, 한자와 역사에 두루 해박한 박황희 고려대 한문학과 겸임교수는 시종 유쾌한 재담으로 웃음을 전했다.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며 그동안 꽤 많은 세미나, 토론회, 강연, 간담회 등을 취재했지만, 격식을 갖춘 딱딱함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버스에서 펼쳐진 즉석 ‘한반도 평화 심포지엄’은 훨씬 재밌었다. 시선은 창밖 겨울풍경으로 툭 던져두고, 귀로는 강의를 듣고, 머릿속으로는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생각을 집중했다. 혹여라도 참가자들의 느긋한 나들이길을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이야기의 톤과 시간을 조절하는 즉흥 강사들의 배려도 하나같이 적절했다. 두루미 보러 나섰다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다채롭고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토론을 경청하다니, 소크라테스 향연의 시중을 든 제자가 부럽지 않았다.
▮ 사진으로 만나는 DMZ 철원 여행
민통선, 한탄강, 용양보… 두루미와 함께 사는 땅
이날의 여정은 철원평야 대마리에서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공생하는 두루미들을 만나보고, 민통선 마을 정연리를 거쳐 남한의 한탄강 최상류 지점을 가로지르는 금강산 철교를 탐방했다. 오후에는 생창리 ‘사라진마을 김화이야기관’을 들른 후 또다시 철문을 열고 들어가 DMZ생태평화공원 용양보의 비경을 감상하며 눈길 트레킹을 했다.
해가 기울어갈 무렵, 발길을 재촉해 한탄강 여울 철원두루미탐조대에서 수백 마리 두루미와 오리류, 백조가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장면을 눈에 담았고, 철원노동당사와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따뜻한 간식을 나누며 일정을 알뜰히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이 저마다 찍은 사진들로 나들이의 감동을 정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