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이 만난 사람]
우희종 한국마사회장

“경마는 단순한 사행산업이 아니라
사람과 말이 교감하는 생명 문화”
마사회 역점사업은 ‘국민인식 전환’
과천 주민들 경마장 호감도 높아
위축된 '재활승마'사업 복원 필요

우희종 한국마사회장이 지난 5일 과천 마사회 본사에서 1945년 해방후 서울경마장을 찾아 시상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희종 한국마사회장이 지난 5일 과천 마사회 본사에서 1945년 해방후 서울경마장을 찾아 시상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양신문] “말은 현대 문명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동물입니다. 교통수단도 아니고 군마의 역할도 끝났죠. 그런데 인류는 여전히 말을 키우고 함께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우희종(68세) 한국마사회장은 그 이유를 경마나 승마 산업이 아니라 ‘말과 사람이 만나는 문화’에서 찾았다. 지난 2월 제39대 한국마사회장에 취임한 우 회장은 “한국 사회가 말을 지나치게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경마는 단순한 사행산업이 아니라, 말과 사람이 함께하는 문화이자 레저 스포츠, 생태문화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의사 출신으로 21년 만에 마사회 회장에 오른 우 회장을 지난 5일, 과천시 한국마사회 본사에서 만났다. 우 회장은 서울대 수의과대학장과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동물권 보호와 생명윤리를 강조해 온 수의학자이면서,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와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 등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다.
우 회장은 1시간가량 진행된 고양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 왜 지금 말 문화가 필요한지, 승마산업은 어떻게 재건돼야 하는지, 그리고 논란이 이어지는 한국마사회 과천 본사의 이전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조목조목 풀어냈다.

한국마사회 본사 정문에 마사회 노동조합이 내건 경마장 이전 반대 펼침막.
한국마사회 본사 정문에 마사회 노동조합이 내건 경마장 이전 반대 펼침막.

이날 마사회 본사에는 정문에 한국마사회 노동조합이 내건 ‘과천 경마공원 이전 반대’ 펼침막이 걸려있고, 건물 안에도 ‘경마공원 절대 사수’와 같은 구호들이 곳곳에 나붙어 이전을 둘러싼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마는 지역 축제이자 문화행사
우 회장은 취임 후 경마를 둘러싼 국민의 인식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경마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며 많은 사람이 사행산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마가 사행적 성격은 있지만 도박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말산업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나 독일, 일본에서는 경마가 지역 축제이자 문화행사입니다. 가족 단위로 찾아오고 관광객이 모이고 지역 경제가 살아납니다.”

우 회장은 한국마사회의 역점 사업으로 말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대국민 인식 개선’을 꼽았다. 그는 “마사회나 경마장을 가까이에서 접한 과천 시민은 호감도가 80%를 넘어서지만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일반 국민의 인지도는 50미만 수준”이라며 “실제로 와서 보면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고, 젊은 세대가 적은 금액으로 레저 스포츠처럼 즐기는 모습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 2월 열린 제14회 국민권익의 날 기념식에서 공기업 중 유일하게 종합청렴도 유공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우 회장은 한국마사회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국민 인식이 낮다며 “저도 밖에서 바라볼 때는 마사회를 단순히 경마를 운영하는 기관 정도로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다양한 공익사업과 말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문화사업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 2월 제14회 국민권익의 날 기념식에서 공기업 중 유일하게 종합청렴도 유공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말과 교감하는 경험은 생명 교육
“말은 단순한 경주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과 수천 년 동안 함께 살아온 동반자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경쟁과 효율만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럴수록 생명과 교감하고 자연과 연결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우 회장은 말 문화의 핵심은 승부나 베팅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맺는 관계이며, 승마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인간보다 훨씬 큰 생명체인 말과 함께 움직이고 교감하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40년 전 미국 유학 당시 자폐 어린이의 재활승마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말과 함께 걷고, 만지고,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과 말이 교감하며 얻는 치유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 유럽과 미국에서 승마는 장애인 재활, 자폐 아동 치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극복 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다.
한국마사회 역시 장애인 승마와 치유 승마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국민적 인지도는 높지 않다. 우 회장은 “말 문화는 단순한 레저가 아니라 생명존중 교육이며 공동체 교육”이라며 “앞으로 말산업이 성장하려면 경마보다 이런 공익적 가치가 더 주목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마사회 과천 경마공원에서 시민들이 승마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과천 경마공원에서 시민들이 승마체험을 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은퇴 경주마 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우 회장은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경주마를 마사회 소유로 오해하고, 은퇴마 복지 문제를 마사회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주마는 마주의 개인 재산이며 따라서 은퇴 이후 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책임 있는 법적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마사회는 은퇴마 등록제와 추적관리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휴양시설과 복지 기반 확충도 검토 중이다.

정유라 사태가 무너뜨린 승마 생태계
우 회장은 한국에서 승마 문화와 산업이 위축된 원인으로 이른바 ‘정유라 사태’의 영향을 꼽았다. 정유라 사태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2015년 이화여대 체육특기자전형(승마)에 부정 입학한 사건을 말한다.
정유라 사태 이후 승마는 특권층 스포츠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져 생활승마가 위축되었고, 승마 특례입학 제도는 사실상 폐지됐다. 승마를 지원하던 한화, 삼성 등 기업의 후원도 급격히 줄어 재활승마 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삼성이 운영하던 재활승마센터 승마장이 굉장히 활성화되었는데 아직 복원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승마를 일부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체육과 복지의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말산업의 미래는 경마 위주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승마·재활·관광 등 말과 맺는 관계를 다양화해야 한다”며 “학교체육 승마와 치유 승마 등 말을 매개로 아이들이 생명 존중을 배우고, 트라우마를 겪는 소방관이나 경찰관 등이 치유 받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의 한 직원이 과천경마공원의 승용마 마방을 살펴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학교와 지역 승마장을 연결해 학생들이 말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농촌형 승마장을 생활체육 공간으로 활용하며, 영화·문학·영상 콘텐츠를 통해 말 문화를 확산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우 회장은 해방 이후 서울 경마장을 자주 찾았던 백범 김구 선생과 마사회의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백범문학상 제정이나 젊은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공모전 등을 검토 중이다.
우 회장은 “젊은 세대가 말을 낡은 산업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인식하기를 바란다”며 “아이들이 체험하고, 가족이 함께 즐기고, 장애인이 치유 받고, 시민들이 축제를 즐기는 말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마장 이전 논란…후보지 경쟁 본격화
전국 지자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한국마사회 과천 부지 이전 문제에 대해 우 회장은 아직 이전계획이 결정된 것이 없다며, 이전 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지역 주민의 수용성’을 꼽았다.
약 35만평 규모의 과천 마사회 본사와 경마공원 부지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에 따라 이전이 추진되고 있으며 제주도와 고양시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유치 의사를 밝힌 상태다.

우희종(왼쪽) 한국마사회장이 지난 5일 과천 한국마사회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경마장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희종(왼쪽) 한국마사회장이 지난 5일 과천 한국마사회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경마장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방정부는 세수와 경제 효과 때문에 대부분 환영하지만 실제로 주민의 이해와 공감이 더 중요하다”며 “다만 단순히 사무실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수천 명의 종사자, 협력업체, 자회사와 각종 시설 등 말산업 생태계가 함께 움직여야 하고 이해관계가 많아 정부가 제시한 2029년까지 타임 스케줄을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 회장은 이전 논의에서도 ‘말 문화’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새로운 부지가 선정되더라도 단순한 경마장이 아니라 말 문화 복합공간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이 말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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