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 공간 '햇빛마을 작은도서관'
입대의 일방적인 폐쇄 결정에 주민들 반발
"꼼수 운영중단으로 법망 회피" 지적도
고양시의 적극적 중재 목소리 높아져
[고양신문] 고양시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아파트 단지 내 작은도서관이자, 지난 20년 동안 주민들의 소중한 사랑방 역할을 해온 덕양구 햇빛마을 20단지 작은도서관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최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가 운영비 부담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운영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상징적인 자산을 없애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입대의가 관련 법규를 피하기 위해 편법을 쓴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고양시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과 해결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햇빛마을 20단지 작은도서관은 1997년 아파트가 준공된 후, 2004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자발적으로 문을 연 공간이다. 고양시 작은도서관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곳은 현재 약 2만 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으며 회원수도 200명이 넘는다. 도서관 측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주민 600여 명이 2500권이 넘는 책을 빌려 갔고, 도서관을 다녀간 이들은 2000명에 이른다. 특히 가까운 어린이집 아이들부터 젊은 부모, 어르신들의 독서 동아리까지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 전기료를 비롯한 운영비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입대의가 도서관 폐쇄 안건을 기습 상정했다. 결과는 동대표 9명 중 찬성 5명, 반대 3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됐다. 이후 단지 안에는 6월 30일부로 도서관을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지난 2년 동안 주민 자원봉사자 10명이 순번을 짜가며 헌신적으로 가꿔온 공간이 동대표 몇 명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입대의의 폐쇄 결정은 곧바로 현행법 위반 논란에 부딪혔다. 2014년 개정된 주택건설기준 규정에 따르면, 500세대가 넘는 주택단지는 작은도서관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상 이런 복리시설을 없애려면 입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은 뒤 고양시장에게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성원 작은도서관장과 주민들이 이러한 법적 문제를 지적하자 입대의는 지난달 24일 2차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입대의는 결정을 철회하는 대신 '폐쇄'를 '운영 중단'으로 바꿔 다시 의결하는 데 그쳤다. 조 관장은 “부득이한 사유가 없었음에도, 운영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입대의가 내세운 운영 중단의 핵심 사유가 월 5만원, 연간 60만원 정도의 전기료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전체 아파트 세대수로 나누면 한 가구당 1년에 100~200원 정도 부담하는 수준이다.
조 관장은 “비용 문제 해결을 위해 사비로 전기료를 내겠다고까지 제안했지만 입대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더욱이 해당 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순회사서가 근무하고 있으며, 고양시의 운영 실적 평가에서도 우수한 등급을 받아 내년도 시 예산 지원이 유력한 상태였다. 외부 재능기부와 시 지원금 등 도서관을 스스로 이끌어갈 자생적 운영 방안이 충분함에도 입대의가 이를 철저히 외면한 셈이다.
당시 폐쇄에 반대했던 한 동대표 또한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일방적인 결정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해당 동대표는 “당시 관장님이 도서관이 사라지면 아파트 자산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고 설득했고, 주민 28명의 서명을 받아 재심의를 요청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하지만 일부 동대표들이 당장 눈앞의 비용만 따지며 끝내 운영 중단을 밀어붙였다. 같은 입대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아파트 주민 간의 문제를 넘어 고양시의 새로운 정책 방향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 취임한 민경선 고양시장은 '작은도서관 재활성화'를 민선 9기의 핵심 과제로 꼽은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주민들이 모범적으로 운영하던 도서관마저 문을 닫는 상황을 시가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조 관장은 덕양구청에 공문을 보내 공식 민원을 접수한 상태다. 해당 지역구의 이해림 시의원(더불어민주당)도 "입대의의 결정에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주민과 관리사무소, 시청 주택관리 부서, 지역 정치인이 모두 참여하는 대면 협의체를 구성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공정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아파트의 한 주민은 “주민들이 20년 동안 땀 흘려 쌓아 올린 마을의 지적 자산이 한 달 전기료 5만원과 일부 동대표들의 편협한 판단 때문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고양시의 적극적인 행정 지도와 정치권의 중재가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