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고양신문] 가족 전체에 닥친 비극
“너무 억울해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최숙자(78세, 덕양구 관산동)씨는 말을 이어가기 힘들어 했다. 숨이 찼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에게 비극이 시작된 때는 1998년.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던 시점이었다. 아들이 입원한 대학병원 병실에 가습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간호사가 가습기의 곰팡이를 없앤다며 살균제를 넣었다. 그걸 본 최숙자씨는 “조금 더 넣어 달라”고 했다. 그 이후로 최씨의 가족은 건조해지는 겨울이면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 사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씨 부부는 숨이 차는 증상이 생겼고, 해마다 폐렴으로 입원을 반복했다. 최씨의 남편은 폐질환 말고도 2004년 뇌출혈을 앓았고 3년 전에는 대장암을 진단 받았다. 최씨의 둘째 아들 또한 심한 피부 알레르기와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1998년 무렵 함께 살았던 최씨의 남동생은 2013년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다. 동생은 최씨 집을 나와 일산 주엽동에 살면서도 가정과 직장에서 가습기살균제를 계속 사용했다고 한다. 

박옥삼 최숙자씨 부부가 폐질환으로 숨진 최씨의 남동생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박옥삼 최숙자씨 부부가 폐질환으로 숨진 최씨의 남동생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참사
SK유공이 초음파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 에어로졸 형태로 사용하는 제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때는 1994년이었다. 2011년 정부가 강제수거 명령을 내릴 때까지 49종의 가습기살균제품이 1000만 개 이상 팔려나갔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전국에서 살균제에 노출된 피해자가 약 890만 명이고, 이로부터 상해를 입은 사람은 약 95만 명, 사망자는 2만 명이 넘는다. 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제품은 판매된 적이 없고, 이처럼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유독물 ‘생체실험’이 자행됐던 것이다.
기업은 내부의 우려를 묵살했고, 외부에 의뢰한 흡입독성 실험 결과도 무시했다. 오히려 “인체에 전혀 해가 없”으며 “내 아기를 위하여” 가습기살균제를 쓰라고 광고했다. 이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 부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의 책임을 방기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확인했음에도 이 제품에 대한 강제수거명령 대신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이로 인해 강제수거명령이 내려진 11월까지 198명의 시민이 더 죽었다. 
이상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3개 병원에서 어린이 급성 간질성폐렴 환자가 78명이나 발생했고, 그중 36명이 사망했다. 2006년 동물병원에서도 반려견들이 원인 미상의 간질성폐렴으로 사망하는 일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를 발견한 소아과 의사들도 국립수의과학검역원도 정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2011년 다수의 산모들이 급성호흡기 증상으로 입원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참사는 기업, 정부, 전문가 집단의 탐욕과 무모, 무능과 안일이 결합돼 일어난 것이다. 환경보건안전연구소장 이종현 박사는 이 참사를 “(화학)제품에 대한 안전관리시스템의 부재”에서 발생했다고 단언한다.

참사 이후에 벌어진 또 하나의 참사
최숙자씨는 동생이 폐질환으로 사망한 2013년에서야 온가족이 앓고 있는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걸 깨달았고 피해자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최씨만이 한달에 20만원 정도를 받는 경미 등급 판정을 받았을 뿐이었다. 똑같이 폐질환을 앓았던 남편도, 사망한 동생도, 알레르기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2020년 관련 법 개정 공청회에 피해자들과 함께 참석한 최씨는 경찰에 밀려 척추를 다치는 바람에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특조위에서 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던 김영환씨. 그는 이렇게 유례없는 사회적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아직도 국가의 진정 어린 반성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약한 수위의 특조위 권고 사항조차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살균제 피해의 입증 책임이 여전히 피해자에게 부담지워져 있다. 산업재해의 경우 개연성만으로도 재해가 인정되는 데 반해,  피해자의 질환 원인이 의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돼야 보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비 세부내역 등 시간이 지나 병원에서 기록이 삭제돼 서류 일부를 제출하지 못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지쳐가고 사망한다. 참사가 벌어진 이후 정부의 대처도 처참한 수준이다.

새 정부의 대책은 달라질까
올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온전한 배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6월 2일부터 7월 13일까지 이에 따른 시행령과 시행규칙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시행령은 10월 8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피해배상 결정은 환경부의 피해구제위원회가 아니라 국무총리 소속의 배상심의위원회가 담당한다. 신청인은 6개월 이내에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심의위는 6개월 내에 지급 결정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피해자 단체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가장 큰 피해자 단체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연대’의 서영철 대표는 정부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게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올해 특별법의 개정안 국회 통과에도 소수의 단체 관련자에게만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대다수 피해자들은 정부와 소통이 단절된 상태다. 피해자 배상을 위한 기금 규모도, 새로운 배상심의위원회의 구성도 오리무중이다. 오히려 배상 기간을 한정해 이 문제를 끝내려는 ‘종국성’이 정부의 숨은 의도일 것이라는 의구심이 크다. 서 대표는 새 정부의 정책도 실질적으로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그는 국가살인죄에 대한 소송 등 연이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이 기억하고 지켜봐야
196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저서 『침묵의 봄』에서 농토에 뿌려진 화학물질이 각종 암과 간 질환, 배아세포의 변이 등을 일으킨다고 폭로했다. 이로 인해 환경문제에 대한 대규모 여론이 형성됐고, DDT와 같은 살충제가 사용 금지되는 등 각종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정책이 시행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2016년이 되어서야 우리나라에도 유럽 수준의 살생물 제품 안전관리시스템이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의 도입으로만 앞으로의 참사에 대한 예방이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 결국은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변화해야 하고, 그 사람들의 관점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문명이 낳은 위험들은 분명히 인지되지 않으며 물리-화학적 공식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다. 즉 “새로운 위험의 대다수는 인간의 직접적인 지각능력을 완전히 벗어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문명이 낳은 위험은 언제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중 누구에게라도 다가올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업, 행정부처,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전문가와 담당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위험에 각성돼 있지 않으면 참사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대처 수준은 우리 사회가 미래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볼 수 있다. 미래의 참사에 대한 예방은 이번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확히 기록하고, 명백하게 책임을 묻고, 철저히 피해배상을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위험에 대한 시스템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그 담당자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시민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억하고 그 해결 과정을 지켜봐야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 
           숨; X - 4흉, 류이 저, 아나야, 2025
           숨; X - 죽음은 하얗게 다가왔다, 류이 저, 아나야, 2025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저, 에코리브르, 2011
           위험사회, 울리히 벡 저, 새물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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