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연구원 '폭염 취약지역 진단 및 대응' 보고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 중심 열섬현상 뚜렷
성사1·2, 능곡, 일산1·2, 대표적 고위험 지역
지자체 획일적 폭염 대책 한계 드러나
빅데이터 활용, 유욯한 안전망 구축 필요
[고양신문] 연일 40도에 육박하며 맹위를 떨쳤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 하지만 세계기상기구(WMO)가 선언한 ‘글로벌 보일링(Global Boiling)’ 시대에 접어들며, 고양시 역시 극한 기후재난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기후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기존 폭염 대응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경기연구원이 발간한 ‘경기도 생활권 폭염 취약지역 정밀 진단 및 맞춤형 대응방안 연구’는 기존 지자체가 추진해온 폭염 대책의 한계를 짚어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군 단위의 거시적 평균값과 행정 편의주의적 시설 통계에 의존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실제 시민들이 생활에서 체감하는 폭염 위험을 예방하기 어렵다. 특히 고양시는 107만 인구와 44개 행정동을 품은 거대 도시로 도농복합지역과 1기 신도시, 신규 택지지구가 혼재돼 동별 기후 노출도와 사회적 민감도가 크게 갈린다.
그동안 고양시의 폭염 대책은 주로 독거노인 안부 확인, 무더위쉼터 운영, 일부 취약가구 에어컨 지원 등 복지적 관점의 사후 대응에 머물렀다. 하지만 단일 기상관측소가 측정한 고양시 평균 기온만으로는 인공열 배출이 많은 일산 구도심과 고령 인구가 밀집한 덕양구 외곽 지역의 위험도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다 세밀한 분석을 통해 고양시 44개 동의 폭염 취약성을 정밀 진단하고 맞춤형 적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세대 주택 밀집, 녹지인프라 부족
해당 보고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양시 행정동별 폭염 취약성을 교차 분석한 결과, 기후 노출과 민감도가 동시에 높은 ‘고위험 지역’은 주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덕양구 성사1·2동, 능곡동(행주동 일원), 일산서구 일산1·2동 등 1기 신도시 개발 이전 형성된 구도심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들은 다세대 주택 밀집으로 인공열 배출이 많고 대형 공원 등 녹지 인프라가 부족해 야간 열대야 현상에 취약하다.
여기에 사회적 민감도 지표인 ‘인구 구조’와 ‘건물 노후도’를 대입하면 위험도는 더욱 높아진다. 덕양구 고양동, 관산동 등 도농복합지역과 능곡동 일대는 65세 이상 독거노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30년 이상 경과한 노후 주택은 단열 성능이 떨어져 외부의 열기가 실내로 직접 유입된다. 고양시가 올해 폭염 취약 어르신 가구에 에어컨을 선제적으로 지원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전기요금 부담으로 인한 ‘에너지 빈곤’ 문제를 고려할 때 노후 주거지 밀집 동에 대한 건축물 단열 보강(그린 리모델링) 사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쉼터 10곳 중 3곳은 보행 접근성 취약
가정 내 냉방이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무더위쉼터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도시 폭염 대응을 위한 무더위쉼터 서비스 사각지대 및 취약성 분석’을 보면, 폭염 취약계층 밀집 지역 10곳 중 약 3곳(28%)은 도보 5분 이내에 무더위쉼터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고양시 또한 덕양구 관산동·고양동, 일산동구 식사동 등 면적이 넓은 행정동은 지정된 무더위쉼터까지의 거리가 멀어 도보 접근권에서 벗어난 노인 가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송1·2동이나 탄현동 등 인구 과대 동은 쉼터의 ‘수용 용량’ 부족이 맹점으로 지적된다. 제대로 된 폭염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취약계층의 실제 보행 동선과 거주지 기반 접근성을 평가하고, 사각지대에 스마트 그늘막이나 임시 쿨링센터를 핀셋 배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탄소중립 넘어 기후 회복력 도시로 가야
민선 9기 고양시는 지난달 ‘2026년 탄소중립 시민참여단 발대식’을 시작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탄소중립 실천 활동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민경선 시장의 주요 공약인 ‘기후시민회의’를 통해 탄소중립 선도 도시로 나아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장기적 과제와 더불어, 당장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기후 회복력(Climate Resilience)’ 강화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고양시 탄소중립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기후위기 및 기후재난 대응전략 정책토론회’에서도 현재의 재난 예방 기준이 심화된 기상이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회성 물품 지급이나 전화 안부 확인을 넘어, 데이터 기반의 ‘행정동별 폭염 위험 지도’를 구축하고 취약 지역 특성에 맞춘 통합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녹색전환연구소도 올해 초 기후돌봄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현행 조치가 기후 위기를 예방하거나 기후 재난으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소 측은 기상이변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단편적인 재난 예방 기준이나 일회성 지원만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비판하며, 보다 촘촘하고 체계적인 ‘기후 돌봄(Climate Care)’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 내 기후 전문가들은 “열섬현상이 심각한 구도심은 쿨루프와 투수성 포장 확대 등 공간 개선 사업을, 도농복합지역은 이동형 무더위쉼터 등 맞춤형 행정을 추진해야 한다”며 “고양시가 진정한 ‘안전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생활권 단위의 폭염 방어선을 당장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