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작은 변화
결국 사람과 사람이 이웃이 되는 일

최정우 탄현마을1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최정우 탄현마을1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고양신문] 저는 1986년생입니다. 그리고 7살과 9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이자, 탄현마을1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탄현마을1단지는 어느덧 오래된 아파트가 됐습니다. 고양시 곳곳에도 우리 단지처럼 오랜 세월을 지나온 공동주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깨끗한 외관과 새로운 시설, 잘 갖춰진 커뮤니티 공간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된 아파트라고 해서 반드시 낡은 아파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공동체까지 함께 낡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파트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시설을 고치고 새로운 것을 들여놓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안전을 지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춘 아파트라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아이들이 함께 놀 친구가 없고, 주민들이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곳을 ‘살기 좋은 아파트’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래서 공동주택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에서 ‘이웃’을 다시 만나는 일

입주자대표회의 일을 하다 보면 공사나 시설, 관리비처럼 눈에 보이는 문제를 많이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서로를 가장 모르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고, 같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아도 부모들은 서로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관계를 조금씩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자리를 하나 만들고,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기회를 하나 만들고, 이웃에게 먼저 인사할 수 있는 계기를 하나 만드는 것. 그런 작은 일들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입주민’이 ‘이웃’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숲으로 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밤의 숲으로 가서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등 딱정벌레를 관찰하는 체험행사였습니다.

사실 이 행사는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평소 7살, 9살 두 아이와 함께 밤에 숲을 찾아다니며 곤충을 관찰하고 먹이를 주는 시간을 종종 보냅니다. 아이와 손전등 하나 들고 숲을 걷다 보면 참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나무를 살펴보고, 곤충을 찾고, 작은 생명 하나를 발견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놀라워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파트 아이들도 이런 경험을 함께하면 좋겠다.’ 그래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단지 아이들만 참여하는 것보다 인근 단지 아이들도 함께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탄현마을1단지 아이들과 인근 단지 어린이들이 함께 숲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손전등을 들고 나무를 살피며 곤충을 찾아다녔습니다.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발견하면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작은 곤충 하나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날 밤의 숲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놀이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됐습니다. 공동체는 거창한 사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웃는 순간에서 시작되는구나.

최정우 독자 제공
최정우 독자 제공

관리주체도 함께할 때 공동체는 더 단단해진다

이번 행사에는 우리 단지 관리주체인 세화종합관리 장정옥 소장도 함께했습니다. 장 소장은 평소에도 주민들의 생활과 단지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고 있습니다. 장 소장은 이번 행사에서 “공동주택 관리가 시설을 관리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아이들이 이웃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주민들에게 더 좋은 공동체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간다면, 관리주체는 그 활동이 안전하고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두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주민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파트를 만드는 것.

공동체 활성화에 꼭 큰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활동이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것입니다.  한 번 만난 사람이 다음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를 하고, 또 어느 날에는 서로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공동체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정우 독자 제공
최정우 독자 제공

오래된 아파트의 경쟁력은 ‘정’

고양시에는 오래된 공동주택이 많습니다. 새로운 아파트와 비교하면 시설이나 외관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오래된 아파트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이 있고, 함께 아이를 키우고, 함께 계절을 보내고, 함께 아파트의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관계를 다시 연결한다면 그것 역시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파트가 신축 아파트처럼 새롭고 화려한 아파트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시설은 계속 개선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아파트.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어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웃이 관심을 가져주는 아파트. 주민들이 ‘내 아파트’라고 생각하고 직접 참여하는 아파트. 저는 그런 아파트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생각이 공동체의 시작이 되기를

제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된 뒤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아파트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회장이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공동체가 완성될 수도 없습니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꼭 성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행사를 열었는데 참여자가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시원찮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이라도 웃고 돌아간다면, 아이 한 명이라도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은 경험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우리 아파트의 문화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문화는 결국 아파트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고양시의 공동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딱정벌레 관찰행사는 그저 아이들과 곤충을 찾아 나선 하루의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어떤 곳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작은 실험이었습니다. 아파트는 시간이 지나면 늙습니다. 하지만 공동체까지 늙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면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주민들과 함께 그런 작은 변화를 계속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신축 아파트만큼은 못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만큼은 더 따뜻한 아파트. 그것이 제가 꿈꾸는 탄현마을1단지의 모습이고, 나아가 고양시의 오래된 공동주택들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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