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북한을 ‘북한’이라 불러야 하나, 아니면 ‘조선’이라 불러야 하나. 요즈음 북한에 대한 호칭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북한을 ‘조선’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사람들의 논지는 북한과 대화가 필요한 우리의 입장에서 호칭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를 비판하는 측은 ‘조선’이란 용어를 쓰는 사람들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의 ‘두 국가론’에 동조하는 종북 행위로서 헌법 제3조를 위반하는 위헌적 행태이며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어느 쪽이 맞는 걸까?
북한을 ‘조선’으로 바꿔 부르면 위헌 행위일까
사실관계부터 확인해 보자. 헌법 제3조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조항은 1948년 제정 당시 대한민국이 한반도 내 유일의 정부로서 향후 한국 중심의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승만 정부에서 북한의 실체를 부정하고 무력으로 북진 통일을 하겠다는 입장에서 만들어졌던 조항이다. 하지만 1970년대 남북 대화의 필요성이 생기며 변화가 생겼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북한과 회담을 통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서명 주체를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 김영주’로 했다. 과도기였다.
이후 1987년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집권했던 노태우 정부는 1991년 9월 남북한 UN 동시 가입과 그해 12월 남북 간 ‘남북기본합의서’를 타결시켰다. 남북한의 UN 동시 가입은 한반도 내에 두 개의 합법 정부가 존재함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아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역대 정부의 의지였다. 또한 남북한 당국이 회담을 통해 이끌어 낸 ‘남북기본합의서’는 이후 남북 관계를 규정하는 초석이 됐는데, 그 서명 주체가 상대방의 정식 국호를 사용한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 연형묵이다. 보수 정부였던 노태우 정부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조선’이라고 호칭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남북한 정부는 접촉 시 상대방의 국호를 정식으로 불렀고 각종 합의문에도 반영했다.
가장 최근의 남북 합의서인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의 서명 주체도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위원장 김정은이고, 그해 9월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서명 주체도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송명무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상 노광철이다.
한편 법률적으로도 위 논란은 이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로 해결된 상태이다. 헌법재판소가 1993년 7월 북한의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고, 2000년 7월 남북교류협력법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대법원 또한 2003년 9월 북한의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을 ‘조선’이라 부르는 건 역사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위헌이 아니다.
‘조선’ 호칭이 통일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주장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면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포기하는 행위일까? 노태우 정부 이래 우리 정부의 공식적 통일정책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의하면 통일은 3단계로 추진된다. 무력으로 통일하는 게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판단 하에 ‘화해협력–남북연합–완전통일’의 단계적 통일 방안이다. 이에 근거한다면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는 것은 권장해야 할 행위이다. 통일의 1단계로서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 협력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칭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은 관계 정상화의 선결 조건이다. 통일부, 외교부 등 북한과 접촉하는 당국자들이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는 행위인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남북이 별개의 두 국가로 공인되면 유사시 남한이 북한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가 취약하다. 국제법상 만일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는 등 변고가 발생한다 해도 이후 북한의 운명은 북한 주민들이 결정하게끔 되어 있다. 남한이 연고권을 내세워 무력으로 밀고 올라가는 시나리오는 환상에 불과하다.
남북 관계는 ‘두 국가’관계이며 동시에 ‘특수관계’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서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고 한 것이다. 또한 제15조에서도 남북 간의 물자 거래를 국가 간 무역이 아닌 ‘내부 거래’로 규정했다. 이러한 특수관계 규정은 남북 간 거래를 민족 내부거래로 함으로써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법적 근거로 활용됐다. 또한 개성 공단 제품의 수출 과정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됐다. 이처럼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에 두 개의 정부가 실재하는 현실과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지향하려는 당위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한 민족이 분단돼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별도의 정부를 구성해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제법상 별개의 두 국가이지만, 통일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특수관계이다. 남북관계는 별개의 ‘두 국가’라는 위상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위상이 삐걱거리며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북한과 조선, 상황 따라 달리 사용해야
그럼 북한을 ‘북한’으로 부르면 상대를 부인하고 무시하는 행위일까? 우리 말은 청자(audience)에 따라 어휘를 다르게 사용한다. 아버지를 타인에게는 ‘아버님’으로 높여 부르지만 할아버지 앞에서는 그냥 아버지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쪽 사람들끼리 남북한, 북쪽 사람들끼리 남북조선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쩌면 남북한, 남북조선 이란 용어는 본래 하나인데 둘로 쪼개졌기에 언젠가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겨레의 염원이 담겨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혼란스럽지만 북한에 대한 호칭은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할 수밖에 없다. 칼로 무 자르듯 언론, 교육 현장에서 단번에 북한을 ‘조선’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은 과하다. 필자는 남쪽 사람들을 상대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 때 북한을 ‘북한’으로 부르는 게 수용성도 높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